기아의 첫 중형 승용차 콩코드의 디자인
구상입력 2022. 11. 16. 15:00수정 2022. 11. 16. 15:30
기아자동차가 기아 브랜드로 내놓은 첫 중형 승용차는 1987년에 프라이드 발매 이후 내놓은 콩코드였다. 콩코드는 그 당시에 ‘기아산업’의 기술 제휴 업체였던 일본 마쓰다의 3세대 카펠라(Capella)를 도입한 것이었다. 마쓰다의 카펠라는 1980년대 일본제 차들의 북미와 유럽 진출이 러시를 이루던 때에 일본 메이커 중 비교적 군소 업체였던 마쓰다 역시 글로벌 메이커로 도약을 목표로 개발했던 모델이었다.
물론 기아는 콩코드 생산 이전에 이탈리아의 피아트로부터 부품을 들여와 1979년부터 조립 생산했던 중형 세단 피아트 132가 있었고, 그 이전에 1978년부터 조립 생산했던 대형 승용차 푸조604도 있었다. 그렇지만 피아트 132와 푸조 604는 기아 브랜드가 아닌 피아트와 푸조 브랜드를 그대로 붙여 판 모델들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콩코드는 기아 브랜드의 첫 중형 세단 모델이었다.
이들 중 피아트 132는 2,000cc배기량에 차체 크기는 중형급 이었지만, 당시에 의사와 같은 전문직 소비자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던 차였고, 1980년대에는 지금의 제네시스 G80정도의 포지셔닝이었다. 필자가 기아에 입사했던 1988년에 기아의 중역들 중에는 피아트 132를 여전히 타는 경우가 있었다. 출시 10년차였음에도.
콩코드의 차종 코드는 NB-5였고, 소형차 프라이드에 이은 승용차 생산 재개의 두번째 차종이었다. 마쓰다의 3세대 카펠라를 바탕으로 했지만, 1987년에 마쓰다는 카펠라의 4세대 모델(P141)을 유럽과 미국에 출시한 때였기 때문에, 마쓰다 입장에서는 구형 모델의 금형을 기아에게 넘겨준 것이었으므로, 기아는 한 세대 전의 모델을 받은 것이었다.
사실 자동차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제품이든 간에 오리지널 업체가 기술제휴 업체에게 기술을 알려주는 것에 극도로 인색한 게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이겠지만, 독자 개발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구형 모델을 받아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미 마쓰다는 카펠라를 글로벌 미국 브랜드 포드에서 텔스타(Telsta) 라는 이름으로 세단과 쿠페, 5도어 해치백으로도 판매하는 등 연산 100만대 규모의 기업이었으므로, 승용차 생산을 다시 시작하면서 비로소 연산 30만대를 넘길 걸 기대하고 있던 ‘기아산업’의 관점에서는 마쓰다는 ‘넘사벽’의 경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비록 금형을 일본에서 들여오는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부품을 국산화시키는 개발 이었으므로, 일부 기술 이전도 이루어졌다. 카펠라를 국산화 시켜 개발하면서 기아는 앞 모습을 약간 손보는데, 카펠라의 헤드램프보다 그릴이 좀 더 슬림한 디자인을 이전에 기아가 라이선스 생산했던 고급승용차 푸조604처럼 일직선으로 후드 끝을 마무리해서 모던한 인상을 더했다.
카펠라는 1980년대 초반의 세계적인 유행이었던 쐐기형 차체, 즉 후드는 낮고 트렁크는 높은 형태의 차체 디자인을 가지고 있으면서 볼륨감보다는 약간 마른 체형 같은 느낌의 스키니 한 차체 조형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쐐기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앞 오버행을 늘려서 슬림 헤드램프 디자인을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지금은 앞 오버행이 짧을수록 더 좋은 비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 시기에는 앞 오버행의 길이는 그다지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콩코드의 차체 크기는 길이, 너비, 높이가 각각 4,570, 1,720, 1,405(mm)에 휠베이스는 2,520mm로서, 지금의 준중형 승용차 크기이다. 그런데 이 크기의 차체에 14인치 휠을 적용하니 바퀴가 상대적으로 커 보이는 인상이 들었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14인치 휠을 크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 당시에는 현대자동차의 중형 승용차 스텔라도 13인치 휠을 달던 때였으므로, 사람들은 14인치 휠을 단 콩코드를 가리켜 바퀴만 보인다고 할 정도였다.
실제로 콩코드는 바퀴만 커 보인 것이 아니라, 고속주행성능도 뛰어나 그 당시에 고속도로에서 잘 달리는 중형 승용차라고 알려지기도 했고, 국내 레이싱 선수들은 콩코드를 가지고 경주에 출전하는 일이 많았다.
초기의 콩코드는 앞 뒤 범퍼는 미국 사양의 커다란 5마일 범퍼이긴 했지만, 범퍼 윗면은 검은색 PP재질로 마무리된 디자인이었고, 스티어링 휠은 프라이드의 것과 같은 2스포크의 것에 콩코드 로고를 인쇄해서 붙여서 중형 승용차로서의 차별성은 사실 부족했다.
아마도 양산 일정에 쫓긴 결과였던 것 같다. 그리하여 약 1년이 지난 뒤인 1988년 가을에 범퍼 윗면에도 차체 색을 적용하고 크롬 라디에이터 그릴과 3스포크 스티어링 휠, 디지털 계기판 등을 적용해 고급감을 높인 DGT 모델을 내놓는다. DGT라는 이름은 디지털 계기판을 의미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당시의 공식 홍보물에서는 갖추어 준비한다는 의미의 ‘dight’ 를 의미한다고 설명되기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 콩코드는 1991년에 보수적인 이미지의 라디에이터 그릴과 휠로 바꾼 1992년형 모델을 출시하는데, 이것은 그 시기에 현대 쏘나타(Y-II)와 대우 로얄 시리즈(V-II) 등이 더 큰 차체로 나오면서 콩코드가 중형 승용차 시장에서 고전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부분적인 디자인 수정이 더해진 콩코드는 초기의 날렵한 디자인에서 완성도가 오히려 후퇴한 인상도 주게 된다.
이 시기 1991년에 기아는 콩코드 후속 모델로 G-car 프로젝트(크레도스)를 시작한다. 사실상 1987년에 콩코드 출시 당시에 후속 모델 개발을 시작 했어야 했지만, 기아는 이때 이미 세피아(S-car), 스포티지(NB-7) 등의 고유모델 개발이 시작된 때였기에 새로운 고유모델 차종 개발을 추가할 여력이 충분치 않았다.
한편 콩코드를 바탕으로 1,500cc 엔진을 탑재하고 차체 길이를 약간 줄이면서 13인치 휠을 단 준중형 승용차로 K-car가 개발되어 1989년에 캐피탈(Capital) 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캐피탈은 후드와 펜더에 곡면을 더해서 콩코드보다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휠이 13인치로 줄어들면서 콩코드에서와 같은 건장함은 없었으나, 슬림한 비례의 라디에이터 그릴로 도시적인 이미지를 강조한 디자인이었다.
기아의 승용차 생산 복귀의 두번째 차종 이자 기아 브랜드의 첫 중형 승용차 콩코드는 기아의 고유모델 중형 승용차 크레도스 개발의 발판이 된 모델인 동시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 중형 승용차의 주행 성능의 개념을 일깨워준 모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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