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나부끼며 나비가 날갯짓하던 속도는 언제였었나. 쌩쌩 달리는 세상 속도에 편승한 삶이 애달프다. 초고속에 따르지 못한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설 자리를 잃어 길모퉁이로 내몰린 사람들이 눈에 맺힌다. 속도에 떠밀려 잊혀 가는 것들이 아프고, 급속히 변화되는 것들은 당황스럽다. 친구 사이도 그렇다.
한 바구니의 햇살같은 소식이 당도했다. 전화기를 타고 온 특유의 메조소프라노 음색이 귓가에 닿자 화들짝 꽃으로 핀다. 따습고 나긋한 목소리로 미루어 J는 이제 어둠의 터널을 통과한 것일까. 그녀와 소식이 끊기고 내가 합창단을 떠나온 지도 한참이나 되었다. 반가움으로 보송해진 마음이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J가 자취를 감춘 건 오 년 전쯤의 일이다. 시쳇말로, 잘나가던 사장님의 사모님이었던 그녀다. 남편의 사업 부도라는 폭풍에 집이며 값나가는 세간까지 말짱 날려 버릴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전셋집으로 옮겨 갔을 적에도 꼿꼿한 자세만은 잃지 않았었다.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엔 내 옆자리에 앉아 뛰어난 가창력을 발휘하며 몸에 밴 세련됨으로 우아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었다. 하지만 불행은 겹치기를 즐기는 듯했다. 재기(再起)를 위해 동분서주하던 그의 남편에게 덜컥 암이란 멍에를 씌웠고 곧이어 이승의 소풍을 거두어 가 버렸다. 모든 것이 갑작스레 휘몰아친 일이다. 운명이란 때로 거센 회오리바람일 수도 있는 걸 알려 주는 것 같았다.
연이은 돌풍에 그녀라고 어찌 더 버틸 수 있었으리, 가슴속이 하얗게 재가 되어 버렸을 J는 어느 날 합창단에서 가뭇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둘이서 손잡고 거닐던 은행나무 가로수 길이 슬픔으로 노랗게 내 속을, 물들이던 가을이었다.
친구는 지난 시간과 추억을 함께 간직한 사람이기에 이름만 들어도 옛날이 떠올려진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 풍경까지도…….
약속 장소에 들어서는 J를 보며 우선 마음이 놓인다. 그녀의 얼굴이 제 모습을 찾아서다. 변함없이 단정한 헤어스타일도 반갑고 얌전한 매무새도 흐뭇하다. 그런데 조금은 허전하다. 오늘 같은 날엔 L도 왔어야 했다. 셋이 모이면 분위기를 띄워 주던, 희고 동글동글한 얼굴 하나가 떠오르는데, 그녀가 내 마음을 모를 리 없다. 전화를 해 봤으나 ‘없는 번호’였다고 말해 준다.
“번호는 왜 숨기는지 모르겠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거지.” “?”
잠시 어리둥절해진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겠으나 J에게서는 처음 처음 듣는 두루뭉술한 어휘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고 그런?’ 왜 가슴이 먹먹할까.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인가. 크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차분한 어투와 아무하고나 쉽게 어울리지 않는 새침한 성격과 도도함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다. 긴장감 없이 느슨한 주부의 모습과 다른 J가 좋았던 나다. 삶에 긍정적인 것도 같고 냉소적인지도 애매한 그녀의 낯선 언어에 혼자 당혹스럽다. 세월이 다녀간 자리엔 풍경도 흐르고 사람도 흐른다는 이치를 깜빡한 내 아둔함인지 모르겠다.
나무도 병을 앓고 난 후엔 겹, 나이테가 생긴다고 한다.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견뎌낸 흔적일 테다. 날마다 소용돌이인 세상에서 J는 스스로 현실과 타협한 것인지, 혹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 것인지. 웃는 얼굴로 툭툭 던지는 그녀의 짤막한 어휘에 시간 저쪽으로 사라져 간 무엇이 내 안에서 욱신거린다. 숱한 이야기 대신 가벼운 식사만으로 서로의 안부만 확인하며 헤어진 상황은 차라리 어이없다. 사람 사이에 나타나는 세월의 자취가 자꾸 아린 나는, 바야흐로 속도에 숨죽이는 세대다.
“익숙한 건 가치 없다 / 비슷한 건 부끄럽다 / 모방은 비겁하다 / 신(新)차에 신났다.
젊은 카피라이터가 만들어 내었을 자동차 회사 광고 문구가 스프링처럼 튀어 오른다. 금방이라도 달려나갈 태세다. 첨단의 과학으로 달려가는 세상은 행복한 삶으로까지 이어지는 곳인가. 튀는 디자인과 탁월한 성능 더하기로 시장을 공략하는 광고, 카피 앞에서도 울렁증이 인다. 세상과 맞장 뜰 팽팽한 패기나 정열도 수그러들고 삶의 의욕마저 곧잘 가라앉는 나이, 요란한 신(新)문화에 신바람 나기보다 주눅이 드는 쪽이다. 변화무쌍함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그리워지고, 나무가 어떻게 신고(辛苦)의 나이테를 살 속에 새겼는지 알 것 같다.
시간의 속도를 능란하게 조절할 수 있다면 행복할까. 찬란한 꽃의 계절과 환희의 빛깔을 내 것이라 여긴 적도 있었다. 철없이 마음을 앓고 있을 수만 없는 일, 이젠 깊어져야 할 시간이겠다. 인생의 빛과 어둠이 녹아든 만큼 너와 내가 꼭꼭 손잡고 ‘우리’가 된다면, 향이 더 깊어질 수도 있으리라. 함께인 우리란 끈끈함, 따뜻함으로 그러할 것이다. 잔잔하고 깊숙한 양기가 그리운 나는, 어떻게 살뜰히 J와 손을 잡아야 할지를 생각해 본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 고은 ‘그 꽃’
시인의 짧은 시 한 수가 긴 여운을 남기는 요즈음엔 사물을 보는 마음도 달라진다. 질주하는 순간엔 눈치챌 수 없었던 것들이다. 속도가 마냥 신나는 것이 아니며 나무의 나이테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맵찬 바람과 날비를 맞으며 극한 고열에 부대끼고 개성인 줄 알았던 가시들을 삭혀서야 둥글게 말아 가는 나이테를 읽는다. 서둘러 알고 미리 철든다면야 젊음이 아닐 터이지. 오랜 세월 숲을 이룬 나무들이 넉넉하고 의연한 까닭은, 속 깊이 둥근 나이테를 새겼기 때문일 게다. 그런 나이테 하나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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