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모 토요 칼럼 2026.1.3)
<2026년 병오년의 새해를 맞이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재조명해 봅니다 >
( 새해 복많이 받으십시오)
1.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적 영웅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5월 16일 군사혁명에 성공하여 한국민의 영도자로 등장하여 18년 6개월간 재임하셨습니다.
박정희는 60,70년대의 임기중 단군시조가 한반도에 나라를 세운이래 가장 못 사는 나라에서 잘 사는 나라로 만들어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켜 놨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 6개월의 통치기간 중 그의 특출한 혜안과 비전으로 조국 근대화라는 보따리를 조국과 국민에게 선물하셨습니다.
대한민국을 세계 2차 대전 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만든 유일한 나라를 창조한 것입니다.
한국이 선진국임을 증명하는 인구 5천만이 넘는 국가가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이 넘는 세계 7위의 50: 30 회원국이 되어 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세계 5위의 공업강국으로 선진국의 대명사인 잉글랜드와 프랑스를 앞서는 국가로서 방산물자로써 육해공에 필요한 지상에 전차, 자주포, 다연장 로켓포를, 하늘에는 전투기와 미사일, 바다에는 구축함, 잠수함등 전 세계적으로 품질이 우수하고 염가의 방방산 제품을 선진국에 수출하고 있는 강국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반도체와 조선 일등국이며 가장 효율적인 원전 건설 국가이며 조선 일등국으로 MASGA를 위하여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내일 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바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출발하였습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고 시대에 맞는 영웅을 탄생시킵니다. 소셜이즘에서는 영웅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아무나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닌 것은 맞지만 영웅 더우면 영웅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처칠이나 루스벨트가 제2차 대전의 전쟁 영웅이라면 박정희 대통령은 전후 한국이 낳은 오직 한 사람의 선진국 영웅입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타피, 쿠바의 카스트로와 필리핀의 마르코스는 그들의 장기집권으로 무엇을 남겼습니까! 자기 자신은 치부와 권력을 누리고 국민에게는 좌절과 기근을 남겼습니다. 악덕 지도자들입니다.
세계의 유명인사 모두는 박정희 대통령을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경제와 산업 그리고 사회와 문화등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형으로 만든 지도자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악덕부류의 지도자와는 달리 사후에 조국읕 선진국으로 남겼기 때문에 선진국 영웅으로 추대되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동시대의 인물인 싱가포르의 리콴유 수상은 30여 년간을 수상으로 근무하면서 말레이 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섬나라를 전 세계의 선진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장기집권자였지만 국민으로부터 국부로서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만은 싱가포르란 나라는 1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된 인구 6백여만 명의 소국입니다.
만약 "한국에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히지 않으셨다면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신 1961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82불로서
세계 최빈국 국가에 속하여 아시아의 필리핀, 말레이시아나 북한이 230 달러 수준으로 한국보다 3배나 더 잘 살았습니다.
한국이 1인당 GNP가 3만 불이 되었을때 필리핀은 3천 달러, 말레이시아가 1만 불 수준이었으며 인도는 GDP는 높으나 1인당 GNP는 2천 달러 수준이었습니다. 좌경 정부뿐만 아니라 아무도 이를 치하하지 않았습니다.
인구 5천만이 넘는 국가로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이 넘는 30 - 50 클럽 국가는 한국을 포함 7개국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국은 중화학으로 후진국에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지만 여타 후진국은 중진국 내지 후진국의 대열에 눌러앉아 있는 것입니다.
61년 박정희가 등장할 때
한국은 보리고개로 대변되는 기근과 빈곤에서 허덕이는 국가로서 박정희 장군의 혁명공약 4항에서 국민을 빈곤과 기근에서 탈피시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자주자립 경제를 구축한다고 했습니다.
이리하여 62년도부터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서 1) 공업입국과 2) 수출제일주의를 근간으로 하여 농본지 국가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공산품으로 수출품을 만들어 "수출이 살길이다" 하고 맨발로 뛰고 뛰어 경제개발을 성공시켰습니다.
60년대의 10년대의 연평균 성장률은 8.8%이며 수출은 61년 4만 달러에서 64년 1억 불을 거쳐 70년에 10억 불의 고지를 점령하여 연평균 41.3 %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절망감에 빠져있던 한국민은 스스로 일궈낸 실적에 놀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고 희망의 70년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을 동아시아의 발전하는 "네 마리 용 "즉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포함시켰습니다.( 한강의 기적이 아니며 76년에 Newsweek 지에서 한강의 기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음)
박정희 대통령은 이것만 하더라도
한국민에게 경제개발에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위대한 영도자"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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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부의 경제개발 계획과 5개년 계획과 중화학의 추진의 당위성
72년 정부(EPB)는 70년대를 향하여 81년도듵 목표로 한 10년간의 "신장기 경제개발 계획"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경제 발전도를 표시하는 수출계획에서 3차 5개년 계획으로 76년에 35억 불을 달 성한 후 4차 계획의 종착역인 81년에 53억불읕 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10년간의 연평균 상장률 8%를 기준으로 계획한 것이었고 1인당 국민소득 목표는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정부의 경제기획 당국에서는 장밋빛 전망이라고 자화자찬하고 일부 매스컴도 의욕적인 10개년 계획이라고 대서특필하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승인하셨습니다.
72년 16.7억 불을 달성한 국가가 10년 후에 53억 불의 수출을 달성한다는 것만도 놀라운 성장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처한 국내외적 정치사회 경제구도로 보아 70년대라는 미래 개척을 위한 좋은 timing에 대폭적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었습니다.
호경기의 70년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운명이란 하늘이 내려 주시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만드는 것으로 운명을 개척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하늘에서 스스로 떨어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박정희 대통령은 70년대에 선진국이 되는 개혁적인 경제개발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를 또다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가 70년대에 "기록적 성장" Epoch- making growth를 하지않으면 안 될 운명이었습니다. 70년대에 도약하지 않고 낙방하면 영원한 개도국의 신세라는 것입니다.
(둘째 ) 60년대의 경제개발은 경공업만이므로 공업구조상으로 중공업에 착수하지 않으면 이 이상의 발전은 없습니다.
(셋째 ) 공업구조상 노동집약 조립산업이 저렴한 인건비로 경쟁하는 판국에 후진국이 따라오지 못하게 하려면 부가가치가 높은 중화학 공업으로 진출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습니다.
(넷째 ) 71년에 착수한 방위산업의 본격적 추진을 위하여 중화학 공업으로 가지 않으면 부국강병의 안보도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내각 마저 망국으로 간다고 반대하던 것을 중화학이란 선진국으로 가는 오직 하나의 길이라고 설득하여 추진하였습니다.
선진 외국으로부터의 원조 하나 없이😏우리들 자신이 설계하여 추진하여 중화학 공업공장을 건설하였습니다. 수출할 수 있는 국제경쟁력 있는 세계일류의 생산공장을 건설 한것입니다
결과적으로 81년도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