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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상
2. 화엄경
『화엄경』은 『성경(聖經)』보다도 더 방대한데 그 이름만으로는 하나의 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인하기 쉽다.
사실 이 경전은 독립적으로 유통되던 경전들을 모아 편찬한 이질적인 경전이다. 따라서 어떤 부분들은 그
독립된 경전들 사이에 보이는 명백한 차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이 경전들을 편집하던 당시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산스크리트어본으로 현존하는 부분은 두 개의 품(品)인데, 이 둘은 의심할 여지없이 독립적인 경전이었다.
그 중 하나는 깨달음을 얻기 위한 보살도를 10단계로 서술한 『십지경(十地經, Da?abh?mika S?tra)』이고,
다른 하나는 『화엄경』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입법계품(入法界品, Ga??avy?ha S?tra)」 이다.
3세기에 『십지경』이 먼저 한역되었다.
불타발타라(佛陀跋陀羅, Buddhabhadra; 원문에서는 ‘Bodhibhadra’로되어 있으나
산스크리트어 오기로 보인다. -역자)가 418-21년에 『화엄경』을 처음 완역하였고,
코탄출신의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 ?ik?ananda)가 7세기 말엽에 다시 한역했다.
실차난타의 한역은 불타발타라의한역본보다 약 10분의 1가량이 더 많았다.
이러한 사실은 대승경전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교정과 증광,축약을 거듭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화엄경』은 편집되었다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화엄경』의 원전은 중앙아시아의 코탄(Khotan)에서 중국으로 흘러 들어왔다.
중국이나 카슈가르를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도 적어도 경전의 일부가 편집되었거나
또는 저자가 인도문화권 내에있었던 중앙아시아, 아마도 코탄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화엄경』은 붓다나 수승한 보살이 바라본 세계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점에서 『화엄경』은비록 철학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철학적인 경전 자체라고 할 수는 없다.
고메즈(Gómez)는 이 경전의절정이라 할 수 있는 「입법계품」을
‘장엄한 신비주의(speculative mysticism)’의 하나로 보고 있다(Gómez1967: lxxxi).
불교의 교학파들이 대부분 중관파와 유식파를 대립적인 구도로 그리고 있다면 「입법계품」에서는 모든
존재에 자성이 없다는 것과 모든 현상의 근거로서 때묻지 않은 청정심(淸淨心)을 말하고있다.
끝없는 행위는 마음에서 비롯되며 이 행위에서 다양한 세계가 (일어난다). 세계의 참다운 본성이 마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세계와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된다. 이 세계가 한낱 꿈에 지 나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함으로써, 모든 붓다들이 단지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며 또 다르마들이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대는 걸림 없는 자유를 누릴 것이다. (Gómez 1967: lxxxi)
모든 존재들은 자성이 없으므로 보살들의 마음은 선정을 통해서
모든 존재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거나‘충만할’ 수 있고, 그 보살들은 ‘걸림없는’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입법계품」에서는 세계를 존재론적 관점에서보지 않고
붓다 혹은 수승한 보살이 내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본다.
이처럼 「입법계품」의세계는 마술과 환상의 세계이다(Beyer 1977).
그 세계는 모든 것이 단지 마음대로 만들어지는 세계이다.
왜냐하면 존재에는 자성이 없고 고정된 분별이 없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아마 철학적으로는다르겠지만 경전과는 다르지 않은)
존재는 보살의 의지에 따라 곧바로 생성될 수 있고 보살은 벽도 통과할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의식의 연속에 불과하므로 견고한 벽도 거리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선정을 통해서 경험된다.
『화엄경』의 세계인 불국토는 환상, 마술, 기적의 세계이다.
죠지 타나베(George J. Tanabe)는 『화엄경』에 대해 말하고 있다(1992: 11).
[그것은] 많은 난해한 교리를 지니고 있다고 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또한 기억해야만 한다. … 그것은
주로 석가모니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고대 유산을 뒷받침하는 엄청난 환상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화엄경』]은 이해되지 않는 환상의 기록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해석학적 논의와 환상적인 비전들을 혼합한
정교한 작품이다. 경전들의 한 특징인 이 교리와 환상의 복합적인 구성은 해석을 위한 자체 코드의 시작과
함께 하는 환상적인 주장의 결과이다.
사마디[三昧]의 결과로 모든 붓다와 보살들은 창조할 수 있는 힘, 신통력을 지니게 된다. 그들이 창조 행위를
하는 동기는 커다란 자비심 때문이다. 환상을 통해 마음은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낸다. 모든 것에 자성이
없다면, 모든 것은 꿈과 같거나 환상이다. 게다가 (불교도들이 항상 믿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마음의 작용에
따른다면, 즉 마음에 따라 세계가 만들어진다면 붓다가 선정 속에서 창조한 영상들은 다른 것들처럼 실체를
가질 것이다(Gómez 1967: lxxix; lxxxv 참조).
모든 것에 자성이 없거나 모든 것이 마음이라면 이 영상들, 이 환상들은 다른 것만큼 실재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마음처럼 자성이 없기 때문에 다른것들 만큼이나 존재들의 본성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붓다는 오로지
일체 유정의 이익을 위해서 그의 화신들, 그의 환상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은 다른 어떤 것들보다 더
생생하고 분명하게 존재의 본성을 드러낼 것이다.
붓다가 보는 세계에서 ‘허상’은 ‘실재’가 되고, ‘실재’는‘허상’ 이 된다.
불국토는 무엇인가? 그런점에서 붓다는 누구인가?
화엄의 붓다는 이른바 인도에서 살다가 열반한 역사적붓다인 석가모니가 아니다.
그 붓다는 실로 화신,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화엄의 붓다는 바로 대광명의붓다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Vairocana)
혹은 대비로자나불(大 毘盧遮那佛)이다.
경전에서비로자나불은 가르침을 베풀지 않고 법회에 참석한 수승한 보살들이 설하는 가르침을 인정할 뿐이다.
비로자나 불은 단지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존재이다.
붓다의 영역은 인식할 수 없으니 어떤 중생도 헤아릴 수 없네. 붓다는 거대한 광명을 끊임없이 비추며
각각의 광명 속에는 수많은 붓다들이 있네. 불신(佛身)은 청정하고 항상 적정하며 빛의 광채는 온 우주에
충만하네. 붓다의 자유는 헤아릴 수 없으니 우주와 모든 공간을 가득 채우네. 붓다는 모두에게 응답하네
그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없네. 붓다는 다양한 방편들로 생명들을 가르치네, 천둥 같은 소리로, 진리의
감로를 뿌리며, 세상의 모든 공덕은 그 붓다의 광명에서 나오네. (Cleary 1984-7: I, 제1권)
붓다의 행위와 환상도 똑같이 거대하고 놀라운 것이다
붓다는 모든 국토의 모든 미진(微塵) 속에 그 하나하나에 모두 들어가고
중생들을 위해 기적을 만드니이것은 모두 비로자나불의 방편이네.
붓다의 방편은 인식할 수 없으며 모든 중생들의 마음에 따라 나타나고
각각의 미진 속에 삼세(三世)의 붓다가 바라는 바에 따라 나타나네.
붓다들의 본성은 오는 것도 가는 것도아니지만
서원의 힘에 의해 그들은 세계에 충만하네. (앞의 책: I, 제4권)
여기서 붓다에 대한 이중적인 접근법을 엿볼 수 있다.
우선 붓다는 본질적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또한 붓다자신과 다른 중생들을 위해서 화신으로도 존재한다.
붓다는 이 방대하고 이질적인 경전 곳곳에서
우주자체,무자성(無自性),
혹은 공성과 같은 존재,
또는 편만하고 전지 전능한
붓다의 의식이라고 언급되거나
혹은그런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경전의 환상적이고 경험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것들은 반드시 모순되지는 않는다.
『화엄경』의 우주는법계라고 한다. 그러나 이 법계는 우리들에게 보이는 우주는 아니다.
오히려 이 법계는 모든 것이 공한 환상의관점에서 유동하는 것으로 나타난 우주이고,
그러므로 고립된 경계없는 흐름으로 나타난 우주이다.
경전은이를 광명의 우주, 그림자 없는 광명으로 묘사한다.
선정 수행자는 그와 같은 경지를 경험한다.
그의 마음은 확장되어 “나라는 고정된 경계를 녹이고 유한성의감정이
더 이상 (그를) 억압하지 않는다”(Suzuki 1968: 149-50). 「입법계품」에서
주인공인선재(善財)동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완전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는 모든 생각들이자신의 의식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마음에 아무런 장애도 없고
모든 중독이 사라져버렸음을 보았다”(앞의 책: 199n.).
이 우주가 붓다이다.
동시에 이 우주를 형성하고 이 우주의 흐름을 제공하는 것은 공성이다. 그것은 진리의우주이다.
그러므로 모든 다르마에 자성이 없음을 명확하게 알고
이렇게 다르마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비로자나불을 보는 것이다.
게다가 모든 것을 여실하게 인식하는 이와 같은 상태에서 모든 것은 마음이 창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수행자의 마음은 모든 존재들에 즉입(卽入)할 수 있고, 붓다는 이 모든 것에 즉입하고
모든 변화를자각한다. 이 즉입하는 자각은 다른 중생들을 도울 수 있는 많은 능력들을 갖고,
일체에 즉입한 것으로서모든 중생 속에 존재한다.
『화엄경』에서 끊임없이 강조되고 또 『화엄경』을 유명하게 만든 것이 하나 있는데
붓다가 바라보는 독특한세계의 모습이 그것이다. 그것은 상즉상입(相卽相入)이다.
뚜렷한 경계가 없는 세계에서,
그림자 없는광명의 흐름인 세계에서 모든 존재들은 끊임없이 상즉상입한다.
그들은 … 티끌만큼 많은 부분, 많은 존재, 영겁의 시간들로 가득찬 많은 국토들이 티끌 하나하나마다에
모두존재함을 안다. 그들은 그 많은 국토, 부분들,
존재와 영겁의 시간이 티끌 하나하나마다에 모두 투영됨을 안다.(Gómez 1967: lxxxviii)
붓다가 보는 세계, 즉 법계는 무한한 상즉상입의 하나에 불과하다.
모든 것 안에 다른 모든 것이 있다.그렇지만 모든 것이 뒤섞여 있지는 않다.
깨닫지 못한 세계에서는 이 법계에 대한 묘사를 믿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계는 선정에서 보이는 것과 구분되는 (객관적으로 실재 세계 ‘밖의 그곳’)
세계에 대한 의문이 없는붓다가 보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이 경전에서는 그러한 관점에서 세계를 볼 수 있는 보살의 선정과,
고정된 경계가 없는 이 세계에환상을 개입시켜서 존재에 즉입할 수 있는
보살의 신통력을 묘사하는 데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붓다는작은 먼지 조각 하나에 법계의 모든 영상들을 현현하는 신통력을 갖는다.
붓다의 단 하나의 털구멍 속에 모든과거불들의 연속적인 행위가 나타나고 …
단 하나의 털구멍 속에 수많은 화신이 전개된다. 붓다는 그들이모든 불국토에 가득차게 하고 …
자신의 단 하나의 털구멍 속에 모든 시방세계의 전 역사를 최초의
모습에서부터 최후의 소멸까지 나타내는 신통력을 갖는다. (Suzuki 1968: 157)
「입법계품」은 이 비범한 이야기의 정점이다. 그것은 선재동자(善財, Sudhana)가 문수보살의 조언에 따라
여러 스승을 찾아 인도 전역을 여행하면서 점차 영적인 성장을 이루는 순례기이다.
『화엄경』이 영적인체험의 경전이므로
「입법계품」에서는 선재동자의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계속 장면이 바뀌면서 전개된다.
그의 영적인 벗, 스승(그들은 모두 53명이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신분으로 보면 모두 재가신자
들이다. 가장 흥미로운 사람은 창녀인 바수밀다(婆須蜜多, Vasumitr?)이다. 그녀는 결코 높은 경지에 있는
보살이 아니다.
방편의 가르침에는 한계가 없다. 고통받는 중생이 붓다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의
바수밀다의 포옹과 입맞춤을 통해서이다. “어떤 사람은 포옹만 해도 … 어떤 사람은 입맞춤만 해도 …
갈애를 포기하고 보살의 선정에 들어간다”(Paul 1979에 있는 Wilson: 161). 마치 종교가 쾌락이 될 수 있을
것 같이 보인다.
마침내 선재는 미륵보살을 만난다. 미륵은 그에게 붓다의 눈으로 보면 우주 자체인 법계를 나타내는
비로자나불의 거대한 탑을 보여 준다. 선재는 그 탑에 들어간다. 그것은 놀라운 경험이다.
놀라움에 가득차 바라보는 선재에게 탑의 내부는 허공처럼 넓어 보인다. … 게다가 탑 안에 수십만 개의
탑이 있고 그것들은 아주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 그 각각의 탑은 자기 존재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나머지 다른 모든 탑을 방해하지 않는다. …
선재는 미륵과 다른 보살들이 삼매에 들어서, 그들의 털구멍에서 수많은 종류의 화신들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본다. 또한 그는 모든 보살들의 털구멍 하나하나에서 음악처럼 샘솟아 오르는 붓다의 모든
가르침을 듣는다.
그는 모든 붓다들이 법회에서 그 붓다들을 친견하고, 그들의 다른 행위들도 본다. 아주 높고, 넓고, 매우
아름답게 장식되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하나의 탑에서 그는 한 눈에 삼계를 본다. … 그리고
이 세계 곳곳에서 그는 미륵이 지상으로 강림하고, 탄생하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을 본다. … 게다가 그는 수많은 기둥들이 갖가지 색의 빛을 내는 것을 본다. …
선재는 각각의 탑에서 자신과 자신의 여정을 본다.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경험이
가능하리라고 상상하기는 분명히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미 법계인 이 단계에서 『화엄경』의 모든 보살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보살을 소개하겠다.
그는 보현(普賢, Samantabhadra) 보살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현의 생애, 경험, 그 존재는 이 방대한 경전전체의 기초가 되는 주제이다.
보현은 경전에서 하나의 모델이며 방법 이자 목표로 제시된 보살
또는붓다(그런 청정한 단계에서는 보살과 붓다의 구별이 흐려지는 경향이 있다)이다.
「입법계품」에 나타난보현에 대한 찬탄은 ‘7대 서원(誓願)’으로 시작되는 찬가인데
이것은 자주 암송되는 보살의 서원이되었다.
1) 예찬(禮讚)
저는 승리자인 모든 붓다 앞에 경건하게 귀의합니다. 먼지같이 셀 수 없는 몸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저는전 우주에 승리자인 붓다들이 가득차 계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한 개의 작은 모래
위에도 먼지만큼이나 수많은 붓다들이 계시며, 그들 각각은 수많은 보살들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de Bary et al. 1972: 173)
2) 무량한 마음과 진실한 공양을 드림
3) 참회
4) 자신과 다른 이들이 가진 좋은 점을 기뻐함
5) 깨달은 이들에게 법륜을 굴려줄 것을 요청함
6) 또한 그들이 일체 중생들을 외면하고 자신만의 열반인 유여열반 (有餘涅槃)에 들지 않기를 요청함
7) 마지막으로 이 일곱 가지 서원의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공덕을 모든 중생들의 이익을 위한 깨달음의
도를 얻는 데 회향함
수행자인 보현은 수많은 대보살의 서원을 세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시방세계의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고 건강하기를,
그들에게 믿음의 공덕이 생기기를,
그들이 성공하고 소원이 성취되기를…
시방세계에 국토와 땅이 존재하는 한 중생의 이익을 위해 탐욕을 제거하고 고통을 멸할 수 있기를…
마지막 시간까지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에 순응하고, 깨달음의 삶을 성취하게 되기를…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동안 붓다를 볼 수 있기를
하나의 작은 티끌 속에도 수많은 티끌들이 가득하고,
이 티끌들 각각에 수많은 붓다들 이 있음을 볼 수있기를… (앞의 책: 174 이하)
순례자인 선재는
보현보살을 친견하기를 갈망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우주만큼 넓은 마음,
집착을여의고
모든 세계를 버리는 구속되지 않는 마음,
걸림 없는 마음 …
장애 없는 마음’으로
스스로를연마해야 한다.
그리고 그는 열 가지 상서로운 징후와 열 가지 빛을 보고 보현보살이 붓다의 법회에 앉아 있는 것을 본다.
보현보살을 보면서 그는 모든 털구멍에서 속세와 정신세계의 모습을 다 본다. 마침내 그는 자신이 본래
보현 보살 안에 있음을 알고 무한한 영토를 가로지르고 무한한 공간을 지나 다함 없는 지혜를 지니고
궁극적으로 보현보살과 붓다와 같은 존재가 되어 우주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본다. (Cleary 1983: 9)
그리고 토마스 클리어리(Thomas Cleary)는 자신의 글을 이렇게 마친다.
‘많은 이들이 이것을 불경중에서
가장 숭고하고
가장 포괄적이며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경전으로 결론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