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말씀(요한계시록 20장 1-15절)은
우리가 잘 아는 최후의 심판입니다.
드디어 사탄이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집니다.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한 뱀이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뱀이 흙을 먹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하늘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땅에 속한 것들만 취하여 살기에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사는 것이 저주라는 말입니다.
‘저주’란 땅만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면서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한다’고 합니다.
저주를 받은 ‘땅에서 떨어져 나오는 자들’이 여인의 후손이며,
‘그 땅에서 권세를 잡고 살려고 하는 자들’이 뱀의 후손입니다.
그러므로 뱀의 후손이 먼저 여인의 후손을 공격합니다.
뱀의 후손이 먼저 여인의 후손 발꿈치를 상하게 합니다.
창세기 3:15절의 이 말씀도 십자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용, 곧 옛 뱀 마귀 사탄이라고 하는 자가
바다의 짐승과 땅의 짐승을 동원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입니다.
겉으로는 유대 종교의 권력자들이 로마의 정치 권력을 끌어들여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만
그 배후는 바로 용 곧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옛 뱀 마귀 사탄입니다.
사탄이 예수님을 공격하여 죽일 기회는
성자 하나님께서 육체로 오셨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15 절을 이들도 알고 있기에
공격하면 패배할 것을 알 텐데 어떻게 공격합니까?
그들의 본능이 공격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불나방이 불에 타더라도 불로 달려들 듯이
이들은 죽을 줄 알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들은 십자가 사건으로 영원한 멸망을 받습니다.
그렇게 말씀의 성취가 일어납니다.
마귀는 오늘도 세상과 벗 되라고 성도를 유혹합니다.
그러나 성도란 말씀을 통하여
‘마귀가 이미 십자가로 심판을 받았음’을 아는 자들이기에
마귀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십자가로 사탄의 머리가 깨어졌고 결박 당하였기에
사탄은 성도를 결코 집어삼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사탄을 이기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셔서 인을 친 자들은
묵시적으로 이미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기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광의 날을 소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승리하신 주님을 가까이함이 마귀를 대적하는 길입니다.
‘주님을 가까이함’이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더욱 알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무엇이 다 이루어졌는지 알면 알수록
참된 자유가 주어집니다.
“예수 결박 푸셨도다!”
천지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다 이루시면
천지는 없어집니다.
마치 옷이 낡아지면 버리고 새 옷을 입듯이
지금 보이는 옛 하늘과 옛 땅은 낡아지는 옷과 같습니다.
그래서 새 옷을 입듯이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십니다(사65:17, 66:22).
새 하늘과 새 땅은 쇠하거나 더럽혀지지 아니하는
예수님의 피로 만들어지는 영원한 나라입니다(벧전1:4,19).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입니다(고후5:17).
그래서 주님은 한결같고 영원하시기에
그 안에 거하는 자들도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이 다 이루어지면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을 순간에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천지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만들어진다는
이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됩니다.
이 말씀이 정말로 믿어진다면
눈에 보이는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결코 두려운 소식이 아닙니다.
눈에 보에는 이 하늘과 땅이 사라져도 겁이 없는 사람이 성도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기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 받은 자들입니다.
성도는 그 생명이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하늘 보좌에 앉혀진 자들이기에 위의 것을 찾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날에 영광 중에 나타날 것입니다(골3:1~4).
그러므로 성도는 천지가 사라져도 두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설렘으로 그날을 기다립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없더라”
이 말씀이 성도에게는 기쁨의 소식이 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역사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말은
내가 묵시적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를 믿지 않고 하나님을 아들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에
이들은 최후의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의 길은
묵시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었고
역사 속에서는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확인 사살당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되는 둘째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고
‘책들’에 기록된 자들은 ‘자기 행위를 의지한 자들’이기에
이들은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율법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갈3:10).
그러므로 누구든지 자기 행위를 의지하면
모두가 둘째 사망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둘째 사망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 복이 얼마나 엄청난지 아는 자들은
이 하늘과 땅이 이미 멸망받아 없어진 세상임을 알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오늘도 믿음으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