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교저수지(土橋貯水池) 와 철원 평야. 철원평야의 농수공급을 위하여 축조한 저수지가 이곳에는 3군데가 있는데 그중 토교저수지가 가장 크다고 한다. 겨울이면 철새때들로 가득하다는 물반 고기반의 저수지.
전망대에서 맨 왼쪽에 자리잡고 있는 곳이 백마고지다. 넓은 철원평야에 기댄 채 해발 395m에 불과한 야트막한 고지였고 평범한 야산이었다. 하지만 한국전쟁 발발 후 철의 삼각지대 가운데 철원 꼭지점의 어깨부에 해당되는 요충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이 야산을 빼앗기면 2억평에 달하는 철원평야는 순식간에 적의 감제 아래 놓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1952년 10월6일부터 백마고지를 둘러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열흘간 12차례의 쟁탈전 끝에 고지의 주인이 7번이나 바뀌었다. 피아간 1만7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고지에 쏟아진 포탄만 27만5000발에 이르렀다. 고지는 벌집이 되었다. 마침내 한국군 9사단의 승리로 끝났다.
북한 땅의 산에는 나무들이 없다'
피의능선 500 과 김일성 고지
오른쪽 산 정상의 건물은 UN군 GP. 희미한 왼쪽산의 정상에 있는 건물은 북한군 GP.
검은 철색선은 비무장지대 남방 한계선.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들은 북한.
성탄 점등행사용 철탑이 강화 애기봉과 철원 평화전망대 그리고 고성 통일전망대 3개소가 있다.
평화 전망대 내에 설치 해놓은 제2땅굴 모형.
모노레일 카
모노레일.
월정리역 바로 옆에 철원 두루미관이 있다. 두루미관에는 각종 철새와 텃새를 박재로 만들어 전시 해놓았다.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옛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 건물이다. 2002년 5월 31일 등록문화재 제22호로 지정. 1946년 초 북한 땅이였을때 철원군 조선노동당에서 시공하여 그해 말에 완공한 러시아식 건물이다. 이 건물을 지을 때 성금으로 1개 리당 쌀 200가마씩 거두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제 모금과 노동력을 동원 하였다고도 한다. 또한 내부 작업은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었다고도 한다. (3층 건물인데 철근을 사용 하자 얺었음)
월정리역은 서울에서 원산으로 달리던 경원선 철마가 잠시 쉬어가던 곳으로 현재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철책에 근접한 최북단 종착지점에 위치하고 있다.역의 바로 맞은 편에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 는 간판아래 6.25 동란 당시 이역에 마지막 기적을 울렸던 객차의 잔해와 UN군의 폭격으로 부숴진 인민군의 화물열차가 앙상한 골격을 드러낸 채 누워 있어 분단의 한을 실감케한다.
첫댓글사진 감사함니다. 대략 10 년전 아들이 gop 에있을때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 그때는 모노렐이 없었는데 새로 생겼나요? 노동당사 건물이 흉물스럽고 건물 형무소안의 화장실 도 그대로 남아있는지궁금하네요.토교 저수지 는 그대로인듯 그땐 겨울이었나 정말 새가 엄청 많았거든요 감회가새롭네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사진 감사함니다. 대략 10 년전 아들이 gop 에있을때 다녀온 기억이 납니다 .
그때는 모노렐이 없었는데 새로 생겼나요? 노동당사 건물이 흉물스럽고 건물 형무소안의 화장실 도 그대로 남아있는지궁금하네요.토교 저수지 는 그대로인듯 그땐 겨울이었나 정말 새가 엄청 많았거든요 감회가새롭네요
사진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