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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4일 성탄절 후 셋째 주일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9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7:1-8절(신405)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인 침을 받은 144,000
성도 여러분, 계6장은 ‘여호와의 날’에 누가 그의 최후 심판을 능히 견딜 수 있겠는가의 질문으로 끝납니다(6:17). “그들(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여섯째 인(6:12-17)과 일곱째 인(8:1-5) 사이에 막간(삽입구)의 역할을 하는 7장은 두 개의 환상으로 이 질문에 답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첫째 환상(7:1-8)은 하나님의 인침을 받은 144,000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에 능히 설 수 있다고 답합니다. 그래서 144,000이 아주 중요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단은 자기들만이 144,000이라고 주장합니다. 현재 여호와 증인이나 신천지도 이것을 주장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인 침의 144,000’이 진정으로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인 침은 언제일까?
1-2절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여기서 ‘이 일 후에’(1)라는 말은 연대순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환상을 소개하는 말입니다. 여섯째 인의 환상대로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최후의 심판으로 해 받을 땅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인데, 땅의 심판 권세를 받은 네 천사에게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를 해하지 말라”(3)는 명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7장의 환상은 6장의 환상들의 이전이나 동시적인 환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네 천사’는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2)이며, ‘땅의 사방의 바람’은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렘4:11-12).
성도 여러분, 네 천사가 그것들이 불지 못하게 붙잡고 있는 이유는 3절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여기서 ‘인’은 일반적으로 소유권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인’은 ‘그의 소유’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22:3-4절에서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의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으로도 표현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과 ‘그의 이름’을 동일시하는 것은 13:16-17절에서 불신자들의 이마에 있는 ‘짐승의 표’가 ‘짐승의 이름’이라는 사실(14:9-11)에 의해서 확증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소유인 ‘하나님의 종들’만이 그의 인침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은 그것을 받는 자가 그의 소유이기에 결과적으로 ‘그의 보호’를 의미합니다. 겔9:4-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하지 말라.”
또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사람의 문설주와 안방에 발라진 유월절 어린 양의 피의 표식도 같은 기능을 하였습니다(출12:7, 13).
그러나 ‘하나님의 인’은 고난과 육체적 죽음에서 보호가 아니라 영적인 보호를 의미합니다. 이는 다섯째 인의 환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하늘)에 있기’(6:9)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인’은 고난과 육체적 죽임을 당하게 하지만, ‘하나님과 어린 양의 큰 노(심판)’(6:16-17)에서 영적으로 능히 설 수 있게 하며, 처음 네 인으로 인한 환란(6:1-8)에서도 영적으로 보호를 받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에게 그의 인을 치는 일은 네 천사에 의하여 땅에 심판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기 전에, 최소한 하나님의 최후 심판(6;17)이 이르기 전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땅의 사방의 바람이 강하게 불겠지만, 그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은 그의 진노의 환란(심판)들에 능히 설 수 있으며, 오히려 새 언약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성화와 영화의 구원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2. 인 침의 144,000은 누구일까?
4절입니다.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여기서 인침을 어떻게 받은 지에 대한 언급은 없고, 단지 인침을 받은 자의 수가 ‘144,000’이며,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면, 인 침의 144,000은 누구일까요? 여러 의견이 있지만, 크게 두 개의 해석으로 요약됩니다. 첫째는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144,000이 이스라엘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세대주의자들이며, 요한계시록을 극단적으로 미래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입니다.
이 해석이 옳다면, 이스라엘 중에서 인침을 받아 구원받은 자는 문자적으로 144,000이어야 할 것이며, 특히 각 지파에서 정확하게 12,000만이 구원받아야 하며, 단 지파에게 종말론적으로 회복될 땅의 분배의 예언(겔48:1)에도 불구하고, 단 지파에는 하나도 구원을 받은 자가 하나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이방인)’(9)와도 구별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인 침의 144,000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약성경 저자들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구성된 교회를 ‘참 유대인’(롬2:28-29), ‘하나님의 이스라엘’(갈6:16), ‘이스라엘’(롬9:6), ‘할례파’(빌3:3), ‘열두 지파’(약1:1, 5:14)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로 이방인인 갈라디아 교회를 여종(하갈)의 자녀로서 땅의 예루살렘이 아니라, 자유있는 여자(사라)의 자녀로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에 속하였기(갈4:26)에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은 약속의 자녀라”(갈4:28)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도 이러한 신약성경의 보편적 이해에 따라 ‘자칭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사탄의 회당이라’(2:9, 3:9)고 하였고,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의 12개 문 위에 열두 지파의 이름(21:12), 그리고 그 성벽의 열두 기초석 위에 열두 사도의 이름(21:14)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144,000’(4)을 문자적으로가 아니라, 영적으로 해석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인 침의 144,000이 ‘하나님의 종들’(3)인데,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종들’은 유대 그리스도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2:20, 19:5, 22:3). 1:1절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것은 사단이 그를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 인을 친다면(13:16-17, 14:9-11), 하나님도 구원받을 일부가 모두에게 그의 인을 치시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것의 이유는 14:1-4절입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이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여기서 어린 양과 하나님의 이름을 이마에 쓴 144,000(14:1)은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언급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144,000은 땅(14:3)의 사람 가운데서 속량함을 받아 어린 양에게 순종하는 자이며,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14:4), 즉 그들의 종들(7:3)입니다. 여기 ‘속량(구속)’(14:3, 4)은 계약(언약)에 따라 값을 주고 포로를 해방하는 것 또는 값을 주고 물건을 사서 자기 소유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로나 노예 해방의 이미지로서 속량은 1:5-6절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그리고 시장의 이미지로서 속량은 5:9절입니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결국, 어린 양의 피를 통한 속량은 우리(모든 성도)의 죄 사함입니다. 엡1:7절입니다.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으느니라.”
이처럼 14:3-4절이 1:5-6절과 5:9절이 같은 의미라면, 14:1-4절의 144,000은 문자적인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땅의 사람(이스라엘을 포함) 가운데 속량함을 받아 새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모든 성도, 즉 그들의 종들입니다.
그러므로 14:1-4절의 144,000은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144,000’(4)과 같으며,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있는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9)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인 144,000’(4)은 영적 이스라엘로서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 ‘인 침의 144,000’을 ‘능히 셀 수 없는 무리’(9)와 일치하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신천지 이단과 같이 어떤 기준에 의하여 이 둘을 구별하는 것은 우리를 대표하신 어린 양이 우리를 위하여 그의 죽음으로 창조(율법) 언약을 다 이루신 것(복음)의 완전함을 부인하는 율법주의의 이단이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성도 여러분, 인 침의 144,000(4)을 이스라엘 지파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설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이유는 이스라엘에게 주신 아브라함 언약과 다윗 언약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남은 자(참 이스라엘)이신 어린 양을 통하여 성취됨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종들’(3)에서 ‘우리 하나님’이라는 언약적 표현과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이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7)라는 언약적 표현은 이것을 암시합니다.
둘째 이유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험과 영적 이스라엘(인침을 받은 144,000)의 출애굽 경험 사이에 유사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 양의 피의 표를 가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이 애굽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재앙)로부터 그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여호와께 ‘모세의 노래’(출15장)를 불렀던 것같이,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인 침을 받은 144,000)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9-10). 즉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15:3)를 불렀습니다.
여기서 ‘큰 무리가 나와 흰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9)는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14)라고 설명하는데, 그들이 어린 양의 피로 그들의 죄에서 해방(1:5)인 출애굽을 의미합니다.
이런 이유로 요한은 이스라엘 지파의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과 어린 양의 진노(환란)에서 능히 설 수 있는 ‘인 침의 144,000’(4)을 설명하였을 것입니다.
3. 왜 열두 각 지파에서 인 침의 12,000일까?
5-8절입니다.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이 특정한 이스라엘의 지파들의 목록은 성경의 다른 곳에 나오지 않습니다(창49장, 민1:20-43, 26:5-51). 이스라엘 지파들의 다른 목록은 야곱의 장자인 루우벤이 먼저 나오는데, 여기서는 유다가 먼저 나오며, 단 지파는 생략됩니다. 그리고 므낫세가 포함되지만, 에브라임은 아니며, 요셉이 에브라함을 대신합니다.
바벨론 포로의 말기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한 이스라엘의 재건 이후, 유다 지파, 베냐민 지파, 그리고 레위 제사장들만 유지되었고, 나머지 지파들은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사라졌기에 열두 지파의 이름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열두 각 지파에서 인 침의 12,000일까요? ‘열둘(12)’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율법 언약(출19:6)에 따라 이스라엘 중에 유일하게 남은 자이신 어린 양(새 이스라엘)에게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출19:5)을 위한 이스라엘의 제사장(선교) 나라 사명(출19:6)에 따라 열두 제자를 불러 열두 사도로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천(1,000)’은 이스라엘에서 군대 용어(민31:4)로서 가장 기본적인 군대 단위였습니다(대상27:1-5). 열둘(12)과 천(1,000)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각 지파에서 ‘인 침의 12,000’은 세상을 위한 구약의 이스라엘의 제사장 나라(선교)의 사명과 같이 ‘땅에서 전투(선교)하여 이기는 영적 이스라엘(하나님 백성)의 군단’입니다. 성도 여러분, ‘144,000’(4)은 전투(선교)하여 이기는 자들의 합(12,000x12)의 수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과 어린 양의 큰 진노의 큰 날’(6:17)에 능히 설 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144,000’(4)이요, 그의 소유된 그의 종들(3)입니다. 그리고 ‘144,000’(4)은 ‘땅에서 전투(선교)하여 이기는 하나님의 군대’입니다(5-8).
우리는 ‘144,000’(4)을 영적 이스라엘로서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9)와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특히, 우리와 같이 ‘144,000’(4)을 영적 이스라엘로 이해하면서, 신천지 이단처럼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9)와 구별하는 것은 주 예수의 복음을 흔드는 율법주의의 이단입니다. 이것은 둘을 구별하는 기준을 우리의 주관적인 행위에 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만인 제사장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 침의 144,000에 들어있을까요? 들어있지 않다면, 정말 큰 일입니다. 하나님의 인은 눈에 보이지 않은데, 우리가 ‘144,000’에 속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엡1:13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인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복음(진리의 말씀)을 알고 믿는다면, 성령으로 인침을 받아 144,000(교회), 즉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복음에 대한 믿음, 즉 그리스도 안에 자신이 있는가를 시험하시고 자신을 확증하시기 바랍니다(고후13:5).
성도 여러분, 주 예수의 복음을 알고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환란이나 육체의 죽음에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령으로 우리를 인 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의 소유(아들)인 우리를 보호하시고 승리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에 따른 우리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의 책임입니다.
성도 여러분, 땅의 하나님 군대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셔서 승리의 열매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우리에게 새 언약대로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약속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갈4:28).
찬송 196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