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혁거세의 죽음...
그냥 편안하게 죽은 거 아니야? 라고 질문 할 수도 있다.
국사에 있어서 미스터리는 굉장히 많다. 물론 언제나 미스테리는 이야기 꾼들이 만들어낸 허무맹랑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사실 정조의 독살 사건도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미스테리가 판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당시의 상황이 매우 불안정 하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마 표현하는 계기가 되어진다고 보여진다.
미스테리는 특이한 현상을 계기로 하게 되는데 이러한 특이한 현상도 증거와 함께 해야 그 믿음이 증폭되고. 사람들의 관심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박혁거세의 죽음이 미스테리라는 사실은 약간 의문이 함께 할 수도 있다. 개국왕으로써 그는 민중을 사랑하는 정책을 펼친 것으로 알고 있으면 알에서 태어나 영웅적인 면도 지닌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그에 반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문이고 또한 그가 어떻게 죽었는 지에 관한 사료는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금 이야기 하려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기는 다소 부족하다. 또한 이것이 굉장히 근거 있는 이야기라고 나는 말하지 않겠다.
이 사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있으며 더불어 이 이야기는 어쩜 이야기꾼들의 장난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면에서 나도 이야기 꾼 이므로 이렇게 작성해볼까 한다.
박혁거세가 암살 당했다는 이야기는 삼국사기의 내용을 보면 어느정도 짐작하게 만들어준다.
" 두 마리의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났다. 우레와 비가 심하고 성의 남문이 벼락을 맞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박혁거세 거서간 60년 9월조
바로 이 부분인데.
본래 용은 대다수 왕을 빗대어 하는 문구인 경우가 많다. 솔직히 용이 어떻게 금성 우물에 나타나겠는 가?
어쨋든 그런 용이 2마리가 나타났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게다가 우물은 박혁거세의 부인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곳이기도 하다. 그 만큼 신라는 우물을 신성시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2마리의 용이 나타났다는 것은 간단히 지나가기엔 아쉬운 부분이다.
게다가 우레와 비가 내리며 성의 남문에 벼락이 쳤다는 부분 또한 반란을 암시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는데, 이레 뒤에 유해가 땅에 떨어졌으며 왕후도 역시 죽었다고 한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을 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와서 못 하도록 방해를 하므로 다섯 동강 난 몸뚱어리를 다섯 능에 각각 장사하고 이름을 사릉이라 하니, 담엄사 북쪽 왕릉이 이것이다." 『삼국유사』
더불어 삼국유사의 부분에서도 왕이 다섯동강으로 났다는 부분을 보면 박혁거세의 죽음이 그다지 편하지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반란의 주동자는 누구인가?
결국 답은 하나이다. 다음 왕위에 오른 남해 차차웅.
물론 제 3자의 주도하에 남해차차웅이 동조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란의 우두머리는 남해차차웅이라고 보는 것이 어울릴 것이다.
거서간에서 차차웅으로 왕호도 바뀌었으며
남해차차웅이 왕위에 오른 다음의 행보 또한 의심을 받기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남해차차웅은 적자이다. 왕위를 물려 받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왕이 되었다는 사실도 꽤나 의심 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가 없다. 뿐만 아니라 남해 차차웅이 본래 태자라는 기록은 없다. 그렇다면 장남이 태자였을 텐데.. 장남이 왕위를 계승하지 않고 오히려 차남인 남해가 그 뒤를 계승하게 된다.
게다가 남해 차차웅은 즉위 후 그 해를 바로 원년으로 삼을 정도로 왕위에 욕심이 많았던 것으로 사료되어진다. 그리고 왕위를 노리고 있었다는 이야기로 변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사실 관례상 즉위 그 다음해를 원년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지만 남해 차차웅은 그러지 않았다. 이는 그가 얼마나 의욕적인지... 그리고 그가 자신의 자리에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남해 차차웅의 그 뒤 행보들도 대다수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자신의 입지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 지.
3년 봄 정월에 시조묘를 세웠다. 겨울 10월 초하루 병진에 일식이 있었다.
5년 봄 정월에 왕이 탈해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맏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7년 가을 7월에 탈해를 대보로 삼아 군사와 국정에 관한 일을 맡겼다.
<삼국사기>
위 내용처럼 3년에 와서야 시조묘를 세우고, 5년과 7년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듯 석탈해를 중용하기 시작한다. 이는 흩어진 민심을 회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그의 왕권이 꽤 불안정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심이 왕에게 향하지 않고 석탈해라는 인물에게 향했다는 것은 남해 차차웅이 전통성면에서도 부족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간단히 말해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인하여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고자 새로운 인물을 데려다가 쓰는 어떻게 보면 눈가리고 아웅 하는 정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박혁거세의 죽음은 편치 않았다.
그리고 남해 차차웅의 행보도 그렇게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 내용은 전설로 경남 문천군에 나오는 전설이 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전적으로 밑기엔 무리가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 부분을 가지고 설명을 할려고 했지만.....
그부분은 제외하기로 하였다. 이왕이면 사료를 가지고 설명하자는 그런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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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박혁거세가 밤란에 의하여 비참하게 죽음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잔인한 내용이나 끔직스러운 장면에 대한 소개는 그러한 반란에서 나오는 끔직스러운 일들을 연상하기게 충분하다는 점에서 그럴듯 하다.
그런데 다음의 해석은 매우 긍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으로서 묘사에서 끔직한 장면들이 ㅡㅇ장하는데 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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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혁거세 기이한 죽음의 비밀
△경북 경주시 탑동에 있는 박혁거세 왕릉의 모습. 다섯개의 봉분이 모여있어 ‘오릉’으로 불리는 이 무덤에는 혁거세왕을 비롯해 그 왕후와 남해왕·유리왕·파사왕 등이 묻혀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또다른 전설에서는 승천하면서 흩어진 박혁거세왕의 다섯개 유체를 따로 묻었다고 전한다. 이 무덤을 뱀이 지켰다고 해서 ‘사릉(巳陵)’이라고도 한다.
천상에서 찢어진 몸 오곡을 전하다
우리는 건국신화 주인공들의 성스러운 탄생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단군·주몽·혁거세·수로…. 모두 위대한 최고신의 혈통을 타고나지 않았는가. 그러나 정작 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지상을 떠나는 모습에 대해서는 잘 모르거나 관심이 덜한 것 같다. 고대 국가를 세운 왕들이 지상을 떠나는 모습에는 세 가지가 있다. 이들은 대개 최고신인 천신의 자손들이라 지상의 과업을 마치면 하늘로 돌아간다. 그게 신화의 논리다. 주몽의 승천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건국 신화는 고대사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에 건국주의 죽음도 역사화되어 지상에 무덤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그렇다. 지상과 천상의 중간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는데 백악산 아사달에 들어가 산신이 된 단군이 그런 경우다. 이는 아마도 고조선 멸망 후 단군을 산신으로 모시는 문화가 후대의 전승과 기록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하늘로 올라간지 이레만에
다섯 몸뚱이 흩어져 지상으로
합장하려 했으나
큰 뱀이 막았다니 이 무슨 조화?
그런데 이상한 것이 신라의 첫 왕 박혁거세의 죽음이다. “나라를 다스린 지 61년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갔다. 이레 뒤 유해가 흩어져 땅에 떨어졌으며 왕후도 또한 죽었다. 나라 사람들이 합장을 하려고 했더니 큰 뱀이 나와 못하도록 막았다. 다섯 덩이의 몸을 다섯 능에 각각 장사했다. 이름을 사릉(蛇陵)이라고 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편의 기록인데 그야말로 기이(奇異)하다. 주몽왕처럼 승천했다가 수로왕처럼 지상에 묻히긴 했는데 다섯 동강이로 묻혔다? 몸을 소중히 여기는 우리의 매장문화에서 보면 불행도 이런 불행이 없다. 대체 무슨 영문인가?
혁거세의 죽음과 능묘 만들기를 둘러싼 이 사건에서 우리가 포착해야할 단서는 둘이다. 하나가 다섯 덩이로 해체된 신체라면 다른 하나는 신체의 합체를 막은 큰 뱀이다. 먼저 승천 뒤 이레만에 다섯 토막으로 떨어져 내린 몸. 좀 끔찍한 느낌은 들지만 죽음과 생명의 영원한 순환이라는 신화적 사유가 여기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면 그런 느낌이 조금은 덜할 것이다. 천지를 개벽한 창조신 미륵의 사체에서 우주만물이 생성되는 우리의 창조신화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허쩌족의 시조모인 곰은 아이를 반으로 찢어 허쩌족을 만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혁거세의 죽음에도 뭔가 새로운 생명의 창조라는 상징적 의미가 숨어 있지 않겠는가?
여기서 신의 주검에서 곡물이 생겨났다고 하는 하이누벨레 유형의 신화를 불러낼 필요가 있다. 1940년대에 옌젠이라는 독일 학자가 인도네시아 벨마레 족의 신화를 조사해 보고하면서 붙인 이름인데 아메타란 남자의 피가 야자나무 꽃에 떨어진 후 거기서 태어난 처녀가 하이누벨레이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간추려보면 이렇다. 이 처녀가 축제 때 남자들에 의해 구덩이에 생매장된다. 아버지는 딸의 시체를 파내 잘게 잘라 축제 마당 여기저기에 묻는다. 그랬더니 사체가 묻힌 곳마다 서로 다른 모양과 종류의 감자가 열렸다는 것이다.
야자나무 꽃에서 태어난 처녀가 평범한 사람일 리는 없다. 틀림없이 야자나무 신의 딸일 것이다. 그런데 신의 딸을 죽이다니? 신화학에서는 이를 제의적 살해라고 한다. 신 혹은 신을 대신하는 제물의 죽음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마련하는…. 그런데 감자라니? 여기에는 벨마레 족이 사는 세람 섬에 감자가 유입되어 이들의 주식으로 자리잡게 된 내력이 스며 있다. 이제 이들에게는 야자의 기원만이 아니라 감자의 기원을 설명해주는 신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우리는 하이누벨레 신화에서 신의 사체에서 우주가 생성되었다고 하는 창조신화와 동일한 신화적 사유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런 유형의 신화가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른 유형의 신화나 전설 속에 한 조각 한 조각 자취를 남겨 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특히 우리의 구미를 당기는 것이 양평 지역에서 채집된 밀 기원 전설이다. 근래에는 구경하기도 어려워진 밀이 어떻게 우리 땅에 생겨났는가 잠시 들어보자.
경기도 양평 땅에 늙고 병든 아버지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고 좋다는 약을 다 써보았지만 효험을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중국 북경에 명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병 증세를 이야기했지만 대답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소실을 통해 청을 넣어 사람의 생간 셋을 고아 먹어야 나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아들은 처음에는 의기소침했지만 아버지를 위해 약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아들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집에서 멀리 떨어진 의주 근처 고갯마루로 가서 기다렸다. 처음에는 선비가 글을 중얼거리며, 다음에는 중이 염불을 하며, 세 번째는 미친놈이 낄낄거리고 춤을 추며 올라왔다. 세 사람의 배를 갈라 간을 꺼낸 뒤 시체는 합장하고 돌아왔다. 약의 효력으로 아버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다. 그 후 아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사죄하는 제사를 올리려고 기일에 찾아갔다. 그런데 무덤 위에 전에 보지 못한 풀이 많이 자라 있었고 어떤 것은 누렇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들은 그 씨앗을 받아와 두어 해 되풀이 심었더니 한 섬이나 되었다. 일부는 빻아 가루를 만들어 먹고 잘 빻아지지 않는 것은 쌓아두었는데 장마가 지난 후 썩어 술이 되었다. 밀에 칼자국이 있는 것은 배가 갈라져 죽은 사람들의 원혼 때문이다. 또 이렇게 술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술을 마시면 세 사람의 혼이 차례로 나온다. 그래서 처음에는 예의바르다가, 다음에는 불공드리는 중처럼 술을 억지로 권하고, 마지막에는 미친놈처럼 애 어른도 못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감자 남긴 하이누벨레에서 보듯
곡물기원 신화와 깊은 연관
신성한 건국신화 이야기에
하찮은 곡물담을 담기 어려웠을까
밀의 기원에 술의 기원까지, 거기다가 취중 행태의 기원까지 덧보태져 심각한 이야기인데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 신화의 지문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것은 바로 세 사람의 사체에서 밀이라는 새로운 곡물이 탄생했다는 신화소(神話素)이다. 하이누벨레의 주검에서 감자가 생성되었다는 벨마레 족의 신화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양평 밀 기원전설을 보면 우리에게도 신의 죽음에서 곡물이 비롯되었다는 신화가 없었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토막 난 혁거세의 사체에서 하이누벨레처럼 곡물이 생성되었다는 말이 어디에도 없다는 데 있다. 물론 혁거세 신화는 기록된 건국신화이기 때문에 곡물기원담을 거기 덧붙기는 어렵다. 건국신화가 보여줘야 할 것은 왕의 신성한 탄생과 죽음의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승천 뒤 벌어진 주검의 해체와 지상 하강은 건국신화의 논리를 벗어난다. 혁거세의 토막난 사체를 사체화생(死體化生) 유형의 곡물기원신화와 연관짓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이쯤에서 결정적인 두 번째 단서를 꺼낼 때가 되었다. 큰 뱀(大蛇)이 토막 난 사체의 합체를 막았다! 이브를 유혹한 뱀 때문에 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만연해 있지만 뱀이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신화적 동물이라는 것은 신화학의 상식이다. 대지를 기어다니고 허물을 벗어놓는 뱀, 무척이나 남근을 닮은 뱀의 모습이 그런 상상을 낳고 상징을 마련했을 것이다. 이런 상징을 지닌 큰 뱀이 합체를 막았다면 혁거세의 분해된 사체에서 뭔가 풍요로운 생명이 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흩어져 여러 곳에 뿌려질수록 풍요로운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농업 재배민들의 곡물이다.
그렇다면 하필 다섯 덩이인 까닭은? 이는 물론 사방과 중앙이라는 동아시아의 오방(五方) 관념과 무관치 않을 테지만 더 직접적으로는 모든 곡물을 상징하는 오곡(五穀) 관념의 소산일 것이다. 곡모신(穀母神)의 성격을 지닌 어머니가 날려보낸 비둘기를 쏘아 주몽이 얻은 것이 오곡의 종자가 아니었던가.
단군이 죽은 뒤 국조신(國祖神)이면서 산신으로 모셔졌듯이 혁거세는 죽은 뒤 국조신이면서 농경신으로 모셔졌던 것이다. 오곡을 마련해주고 풍농을 가져다주는 농경신. 이것이 바로 혁거세의 기이한 죽음에 얽힌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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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를 수학적인 관점에서 해석해보자
우선 천부경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이 3라는 숫자는 원이을 의미하고 원이란 단순히 동그라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원이란 정사각형을 제하고 남은 부분이다. 3의 수가 만들어지는 원리이다.
즉 해석을 천부경 이나 금척 혹은 부도지의 수학적인 관점을 이해하게 되면 그 의미하늠 바를 쉽게 짐작할 수가 있다.
첮째로 죽은 지 하늘에 올라가 7일만에 땅에 유해가 떨어진 부분에 대한 해석에서 이는 영혼이 무사하게 하능세상에 올라갔다는 의미가된다.
그리고 유해란 땅의 것이기에 다시 땅의 것으로 내려온 것이다. 이를 다섯동강이 난것은 완성의 수를 의미한다. 5라는 수는 천부경에서 완성의 수가된다. 예부터 황금율의 수로 이해하였다.
운삼사 성환571이라는 문귀가 있듯이 천지인의 3요소가 운동을 하여 5의 완성을 이룩한다.
뱀은 지혜로움을 상징한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는 자연의 아름다음의 이면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자연의 경치는 매우 아른답다. 그러나 그내면의 세계를 보자면 치열한 적자 생존경쟁을 하고 있음을 으 ㅣ미한다. 지혜란 바로 그러한 징그러운 을 직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본질이 태양의 빛을 같이 아름답지만 그러나 그러한 빛을 내기위해서는 매일 먹을 것을 구해먹고 각가지이 ㅅㅇ명체를 잡아먹어야 한다. 지혜란 그러한 것이다.
합장을 하려는 순진무구한 사고방식에 대한 경고를 의미한다.
천부경에서는 성환571일인데 단지 순서를 뒤집는 것이다. 시종이 돌고돌아서 종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