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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야고보서 1:1-18, 시련(trial)과 유혹(temptation)
오늘부터는 야고보서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야고보서의 헬라어 원전 제목은 야고보의 서신입니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이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적 인물이었던 야고보로 확실시 됩니다.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예수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엔 그를 믿지 않았으나 예수님의 부활 직후에 개종하여 나중에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사도행전 15장 13절 이하를 보면 예루살렘 공의회의 의장 역할을 하는 등 초대교회 시대에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교회의 기둥과 같은 중요한 인물로 널리 인정받게 됩니다.
또한 다른 어떤 서신보다 예수님의 교훈을 연상케 하는 말이 본서에 많이 수록되어 있고, 특히 산상수훈과 공통점이 현저하다는 점에서 본서의 저자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를 신학자들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AD 62년경 당시 사독 계열 대제사장 아나니우스(Ananus)에 의해 돌매질를 당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서의 기록 연대는 그 요세푸스의 자료에 의하면 AD 62년을 상한선으로 잡을 수 있습니다. AD 62년 이전 어느 때에 본서가 기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예루살렘 공의회 기독교 1차 총회였던 이 예루살렘 공의회는 AD 49년경에 있었습니다.
이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 기록설과 순교 직전 곧 AD 60년 초반 기록설 두 가지 견해로 나뉘고 있는데, 아마도 본서의 기록 연대는 AD 60년 초반으로 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본서의 수신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리고 본서의 주제는 시험에 대한 인내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참된 믿음이 주제입니다. 야고보는 믿음의 실천과 믿음의 행함을 한 성도의 믿음이 살았는가 죽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108절 중 54절이나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가 보기에 당시 수신자들 디아스포라 유대인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입술로 고백하기는 하였으나, 그에 합당한 신앙의 열매들을 맺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행위가 결여된 당시 유대인 성도들의 믿음이란 공허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에 야고보는 신랄하고도 직설적인 어조로 수신자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더 나아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라고 하여 바울의 이신득의 구원 교리와 상충되는 듯한 선언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야고보의 선언은 혹자들이 주장하듯 이신득의 교리와의 충돌이 전혀 아닙니다.
본서 2장 24절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이 야고보의 진술은 하나의 역설입니다. 야고보는 이신득의 교리를 부인하고 이행득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믿음을 지적하며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과 행위는 마치 나무와 열매의 관계처럼 밀접히 연관된 하나이며, 참된 믿음이란 입술의 공허한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행함으로 입증될 수밖에 없음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자들은 많으나 삶 속에서 그 믿음을 실천하는 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이처럼 통탄스러운 상황에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장로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서론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이제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아마 오늘 본문을 집에서 미리 읽어온 분들이 계실 텐데 아마 대부분의 내용이 읽을 때에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역시 인도자의 설명이 없이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본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주보 교안을 보시면 먼저 1장 1절은 송수신자 표기 및 문안한 인사입니다.
Jam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절 다시 한 번 보시면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세계의 흩어져 있는 12지파 곧 디아스포라 유대인 성도들에게 문안하노라. 이렇게 저자 야고보는 1절을 통해 송수신자를 표기하며 문안 인사를 간략히 언급합니다.
2절에서 12절 단락은 하나님의 시험, 다른 말로 시련 또는 테스트에 대하여 논증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믿음의 선조들이 경험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시험은 피할 수가 없고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과정은 필수적인 과정인데, 이 하나님의 시험을 어떤 자세로 맞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성도가 하나님의 시험을 당할 때 가져야 할 자세를 여러 측면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하나님의 시험이 성도에게 진정한 복을 경험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편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당할 그때에는 어렵지만 믿음의 선진들이 통과하여 경험했던 것처럼 매우 긍정적인 시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Jam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2절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여러 가지 시험 시험에 동그라미 합니다.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서 시험은 내적인 욕심으로 인한 시험이 아니라 외적인 고난으로 인한 시험을 의미합니다. 내적인 욕심으로 인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시험이 닥쳤다면 슬퍼하며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내적인 욕심과는 상관없이 외적인 고난으로 인해 시험이 닥쳤다면 그것은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 시간 요한복음 15장 18절, 19절을 통해 살펴봤던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며 치욕을 짊어지는 삶,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삶이 바로 이 하나님의 시험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살펴보았던 것처럼 당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은 과격하고 선동적이며 폭력적인 유대주의자 유대교인들로부터 끊임없는 박해와 위협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유대교가 로마 정부로부터 집회와 활동이 허락된 종교였던 것에 비해 그리스도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당시 사회에서 불법 종교였습니다. 당시 디아스포라 유대인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각 지역에서 불법 종교인 그리스도 교회 진리를 믿는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시련과 고난과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Jam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3절 말씀 이는 왜냐 하면 너희의 아주 중요한 표현도 나옵니다. 믿음의 시련, 시련 강조 표시합니다. 믿음의 시련과 고난이 인내심을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 왜냐하면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심을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알기 때문이라
Jam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인내를 강조 표시합니다. 온전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완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성숙, 성화하게 하려 함이라.
이처럼 야고보는 2~4절을 통해 외적인 시련과 고난의 때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성장과 성화의 과정이므로 기쁨으로 인내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Jam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5절 말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외적인 시련과 고난을 극복할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그리하면 그 시련과 고난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리라.
Jam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6절 말씀 오직 믿음으로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라. 야고보는 의심하는 자의 모습을 바람이 부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다 물결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Jam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7절 말씀 이런 의심하면서 기도하는 무엇이든지 주님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Jam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8절 의심하면서 기도하는 자는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모든 행동의 일관성이 없는 자로다.
5절에서 8절을 통해 야고보는 외적인 시련과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그 시련과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하며, 그 문제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함을 교훈합니다.
9절에서 11절은 외적인 시련과 고난의 때에 가난한 자는 당당하고 부자는 겸손해야 함을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Jam 1:9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9절 외적인 시련과 고난의 때에 그 시련과 고난의 때에 낮은 형제, 가난한 성도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번역이 좋지 않습니다. 가난한 성도는 영적으로 높은 자신에 대해 긍지를 가지고,
저와 여러분이 가난과 부에 관하여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을 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서를 통해 반복적으로 배운 적이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제는 진정한 부유함이 무엇인지를, 진정한 부자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Jam 1:10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10절 말씀 보십시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역시 번역이 좋지 않습니다.
부한 성도는 영적으로 낮은 자신을 생각하고 겸손해야 할지니, 이는 그 부자가 풀의 꽃과 같이 순식간에 사라짐이라 그 부유함은 찰나적이고 일시적임이라.
Jam 1:11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11절 해가 떠서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이처럼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 결국은 시들어 버리리라. 그래서 지혜로운 천국 백성은 보물을 이 땅에 쌓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19절 20절 예수님의 말씀 우리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깁니다.
(마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19절 보시면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그래서 여러분 집을 위해서 대출받고 그러면 안 됩니다. 막 좋은 차타고 다니려고 막 물질을 투자하고 힘을 쓰는 모습은 세속적인 모습입니다.
(마6:20)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로 못하느니라.
이처럼 9절에서 11절을 통해 야고보는 외적인 시련과 고난의 때에 가난한 자는 영적으로 당당하고, 부자는 영적으로 겸손해야 함을 교훈합니다. 시대정신, 세상의 사상과는 전혀 다른 역설적인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제 12절을 통해 야고보는 외적인 시련과 고난을 참고 이겨낸 자가(승리자가) 복이 있음을 피력합니다.
Jam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2절 시험, 외적인 시련과 고난을 참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러한 복을 추구할 수 있는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뎌낸 자,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자가 주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누가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된다 라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증가하고 있습니까?
고난을 참는 자입니다. 그 시련과 고난을 이겨낸 자가 바로 이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1:12, 새번역) 시험(외적인 시련과 고난)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된 믿음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성도)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이처럼 2절에서 12절 단락에서 야고보가 제시하는 외적인 실현과 고통의 때에 성도가 가져야 할 자세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시련이 성장의 과정이므로 기쁨으로 인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해야 하며,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충분한 지혜를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가난한 성도는 영적으로 당당하고 부한 성도는 영적으로 낮아져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적인 시련과 고난 중에 성도가 취해야 할 신앙 자세를 언급한 야고보는 12절에서는 시련과 고난을 이긴 자에게는 복, 곧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게 될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시험 중에 있는 유대인 성도들로 하여금 끝까지 인내로 시험을 참고 견디어 내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13절에서 18절 단락은 사탄의 시험 다른 말로 유혹에 대하여 논증하는 내용입니다.
13절에서 18절 단락에서 우리가 주의하여 살필 것은 여기에 사용된 시험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2절에서 12절 단락에서 사용된 시험의 의미와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즉 저자 야고보는 비록 2절에서 12절 단락과 13절에서 18절 단락에서 헬라어상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야고보는 시험이라는 헬라어 단어를 앞 문단에서는 실현(trial 또는 test)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본 문단에서는 유혹(temptation)의 의미로 중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Jam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3절 사람이 시험 다른 의미라고 말씀드렸죠. 시험 유혹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라. 본문은 사람이 사탄의 유혹을 받을 때에 그것을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입니다.
오늘날에도 성경을 정확하게 배워본 적이 없으므로 많은 성도들이 사탄의 유혹을 하나님의 시험으로 추론하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고 그 죄의 책임을 회피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그러한 오류를 반복적으로 범하고 있습니다.
13절 중반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유혹)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유혹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죄에 빠지도록 유혹하는 분이 아닙니다. 죄에 빠지게 하는 유혹은 마귀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귀의 유혹에 성도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그 마귀의 유혹에 걸려드는 원인은 14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내적인 욕심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자신에게 발생한 마귀의 유혹적 시험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며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그런 악한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Jam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사탄의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오직 각 사람이 시험 사탄의 유혹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 내적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본문은 사탄의 유혹적 시험의 출처에 대한 언급입니다.
저자는 그 사탄의 시험의 출처가 하나님이 아니요 자기 자신이며, 밖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밝혀 자신에게 발생한 사탄의 유혹적 시험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며 자신의 유혹을 받아 죄 지은 것을 합리화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의 불량한 태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예외 없이 자기의 욕심에 의해서 사탄의 유혹적 시험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므로, 죄에 빠진 원인을 하나님께나 제3자에게나 배경에 결코 돌릴 수 없는 것입니다.
Jam 1:15 (마음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마음에 아주 유명한 구절이죠. 마음의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그 죄가 장성한즉 사망(영원한 죽음)을 낳느니라.
마음의 욕심에서 비롯된 죄의 최종 결과인 영원한 죽음은 12절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과 반대 개념을 이룹니다.
Jam 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16절은 13절 상반절에 인간의 그릇된 추론, 잘못된 해석을 다시 한 번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는 인간이 자기 욕심으로 인해 스스로 사탄의 유혹에 빠져 시험에 들게 되는 것임을 앞선 13절에서 16절를 통해 명확히 밝혔습니다.
스스로 사탄의 유혹에 빠져 시험에 들게 되는 것인데, 바로 자기의 내면적 욕심으로 인해 그러한 일이 발생하게 됨을 명백하게 밝혔습니다.
Jam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이제 야고보는 17절에서 하나님은 성도에게 모든 좋은 은사와 완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심을 밝힙니다. 즉 하나님은 성도를 죄에 빠지도록 시험하는 분이 아니라 모든 선한 것들만 내려주시는 분이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7절 말씀 보십시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17절 온갖 좋은 은사, 모든 좋은 은사가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완전한 선물이 모두 다 어디로부터 옵니까?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이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로써 야고보는 인간을 시험하여 죄에 빠지게 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분이 결코 하나님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라 언제나 변함없이 선한 것만을 내려주시는 분이심을 피력하고 있습니다.
17절 하반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아침에 해가 동쪽에 있을 때는 그림자가 서쪽으로 길게 드리워지고, 정오 12시가 되면 그림자가 극히 짧아지며 저녁에는 그림자의 위치가 아침과 정반대로 바뀝니다.
야고보는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쉽게 알 수 있는 천체의 현상을 들어 모든 만물은 이와 같이 변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야고보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온갖 좋은 은사와 완전한 선물을 주시는 선한 분이심을 밝혀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사모하고, 인간 내면의 욕심, 즉 인간의 욕망을 버려야 함을 교훈하고 있는 것입니다.
Jam 1:18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18절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강조 표시합니다. 아주 중요한 표현이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약 1:18, 새번역) 그는 뜻을 정하셔서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아주셨습니다.(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중생시켜 주셨습니다.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거듭나게 하신 목적, 중생의 목적은) 그는 우리를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방법은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진리의 말씀만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리의 말씀이란 직접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의 복음을 가르키고 좀 더 넓게는 우리의 유일한 진리의 말씀인 성경 66권을 가르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허락된 야고보서 1장 1절에서 18절의 말씀을 골방에서 상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진리의 성삼위 하나님 주일 예배를 통해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저희를 복된 주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고 야고보서의 말씀을 새롭게 배우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장로를 통해 증거되는 이 귀중한 야고보서 1장 1절에서 18절의 말씀이 우리의 발에 등이 되고 우리의 길에 빛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모든 것을 감사드리며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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