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닥친 습격, 커다란 날개를 여전히
비틀거리는 여인 위에 퍼덕이며, 그녀 허벅지를
검은 물갈퀴로 쓰다듬고, 부리로 목덜미를 물어
내맡겨진 그녀 젖가슴을 그의 가슴에 껴안네.
겁에 질려 당황한 손가락들이 어찌 밀어낼 수 있으랴,
느슨해 가는 허벅지로부터 그 깃털에 쌓인 영광을?
어떻게 몸이, 저 하얀색의 습격에 압도된 채 누워,
가슴 위에 놓인 낯선 심장의 고동을 느끼지 않을 수 있으랴?
허리 부분의 전율에서 태어나네,
무너진 성벽, 불타는 지붕과 탑,
그리고 아가멤논의 죽음이.
하늘의 폭력적인 피에
그처럼 붙잡혀, 그처럼 정복당하였으니,
그녀는 그의 힘과 함께 그의 지식도 얻었을까,
무관심해진 부리가 그녀를 내려놓기 전에?
(번역 / 필자)
H. D. (힐다 둘리틀)의 시 "헬렌" (Helen)에서 헬렌의 어머니 레다(Leda) 이야기를 하였다. 스파르타의 왕비였으나, 그녀에게 반한 제우스가 백조로 변신하여, 그녀를 유혹하여, 그 사이에 난 딸이 헬렌이라고 하였다.
제우스가 유혹을 하였다고 듣기 좋게 이야기하였지만, 사실은 강제로 폭행한 능욕이다.
이 사건으로 레다는 두 딸을 낳았는데, 헬렌과 클리템네스트라(Clytemnestra)이다. 헬렌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와 사랑의 도피를 하여 트로이 전쟁을 야기했다.
클리템네스트라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Agamemnon)의 왕비이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아가멤논을 애인과 공모하여 살해했다.
클리템네스트라의 아가멤논 살해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가멤논이 딸을 죽여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친 것이다.
트로이를 공략하러 갈 때, 바람이 불지 않아 배를 띄울 수가 없게 되자, 신전의 예언자가 아가멤논의 딸을 희생시키면 바람이 불 것이라고 하였다.
아가멤논은 딸을 아킬레스에게 결혼시킨다고 속여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에게 딸을 보내라고 하였다.
제우스의 레다 능욕은 신화 이야기이지만, 예술가의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하여 수많은 시가 쓰이고 그림들이 그려졌다. 미켈란젤로(위 그림),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벤스가 그림을 그렸으며, 폴 세잔,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도 있다.
이 이야기를 소재로 1923년 쓰인 이 시는 예이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예이츠는 이 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비평가 카밀 팔리아(Camille Paglia)는 이 시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 라고까지 극찬했다.
이 시는 신화 속의 사건을 옮기면서, 선명하고, 생동적이고, 대담한 시각적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첫째 연에서, '갑작스러운 습격' (A sudden blow)이라고 말을 끊음으로써, 레다에 대한 습격이 불시이고 전격적임을 보여준다.
'날개를 퍼덕거리는' (wings beating),
'비틀거리는' (staggering),
허벅지를 쓰다듬는' (thighs caressed),
'목덜미를 물린' (nape caught),
'무력한 가슴' (helpless breast)
등의 묘사는 폭력적인 상황이 눈앞에서 일어나듯이 생생하게 전달되어 온다.
레다의 처지는 신의 폭압 아래 '무력할' (helpless) 뿐이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신의 뜻 - 운명 - 에 대해 무기력한 인간의 상황을 상징한다.
둘째 연에서, 레다의 상황을 부연 설명하기 위해 수사적 질문을 하고 있다.
공포 상황(terrified)에 있는 레다는 무기력하고 정신이 혼란스럽다.
제우스를 밀쳐내어야 하는데, 그녀의 손가락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vague). 그녀의 허벅지는 힘을 잃고 느슨해지고 있다.
어떻게 그녀가 이 '깃털의 영광' (feathered glory)을 뿌리칠 수가 있겠는가? 라고 묻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그녀의 몸이 그 하얀 것의 급습 속에, 자신의 가슴 위에 있는 '이상한' (strange) 가슴의 고동을 느끼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레다가 능욕을 무기력하게 당하는 가운데, 자신의 몸이 반응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역시 신의 폭압과 운명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무기력한 인간의 상황을 암시한다.
셋째 연에서, 제우스가 레다에게 사정하며, 레다를 임신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일어날 역사적 사실을 말하고 있다.
'무너진 성벽, 불타는 지붕과 탑'
(The broken wall, the burning roof and tower)
은 헬렌의 탄생과 트로이 전쟁을 말하며,
'아가멤논의 죽음'
(And Agamemnon dead)
은 클리템네스트라의 탄생과 그녀의 아가멤논의 살해를 말한다.
레다가 제우스에게 능욕을 당하면서, 그의 막강한 '힘' (power)뿐만 아니라, 앞날에 일어날 그 중대한 사건들에 대한 '지식' (knowledge)도 함께 알게 되었는지 묻고 있다.
'무관심한 부리' (indifferent beak)라고 한 것은 제우스가 야욕을 채운 후에 레다에게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스의 신들이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만,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는가는 관심 밖임을 상징한다.
이러한 '신정정치' 가 끝나는 것은 '인간 중심' 의 그리스 문명이 황금시대를 맞는 트로이 전쟁 이후라고 예이츠는 보았다. 이 시는 이러한 문명사적 순환을 상징하고 있다.
제우스에 능욕되는 레다는 신의 폭압 앞에 힘없는 존재였지만, 제우스의 만용은 헬렌과 클리템네스트라를 낳았다.
헬렌은 트로이 전쟁을 야기하여 신화적 고대 문명을 종결시키고, 클리템네스트라는 신의 보호를 받는 트로이의 영웅 아가멤논을 죽임으로써, '신정시대' 를 끝내고 있다.
제우스의 폭거에 대한 인간의 위대한 '보복' 이라고 할 수 있다.
제우스에 의해 수태되는 레다의 상황은, 마리아의 수태를 알리는 '수태고지' (Annunciation)에 비유되고 있다.
천사 가브리엘에 의해 통보받은 마리아의 수태가 인류 문명을 바뀌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듯이, 레다의 수태로 인한 헬렌의 탄생과 트로이 전쟁이 그리스 문명을 변화시켰다고 보고 있다.
시에서 레다가 그의 힘과 함께 그의 '지식' (knowledge)도 얻었을까 묻는 부분이 '수태고지' 를 연상시킨다. 동시에, 향후 인간의 지혜가 신들의 영역을 잠입하고 종국에는 그리스 신화의 세계를 붕괴시킬 것을 암시하고 있다.
예이츠의 문명사적 순환론은 그의 시 "재림" (The Second Coming)에서도 단편적으로 읽을 수 있다.
예이츠의 이 시는 한편으로는 영국의 지배하에 있던 당시 아일랜드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쓴 것으로도 종종 해석되고 있다.
※ 위 그림은 이탈리아의 조각가, 화가인 미켈란젤로(Michelangelo, 1475-1564)의 "레다와 백조" (Leda and the Swan)이다. 원본은 분실되고 16세기 모사본이며 영국 내셔널 갤러리(National Gallery)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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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a and the Swan
By William Butler Yeats
A sudden blow: the great wings beating still
Above the staggering girl, her thighs caressed
By the dark webs, her nape caught in his bill,
He holds her helpless breast upon his breast.
How can those terrified vague fingers push
The feathered glory from her loosening thighs?
And how can body, laid in that white rush,
But feel the strange heart beating where it lies?
A shudder in the loins engenders there
The broken wall, the burning roof and tower
And Agamemnon dead.
Being so caught up,
So mastered by the brute blood of the air,
Did she put on his knowledge with his power
Before the indifferent beak could let her dr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