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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다시 한번…….
화면 F.I 되면
교양 모던 댄스를 추는 초등학생들.
영새는 그룹으로 춤을 추는 아이들 사이를 지나가는데 약간 다리가 불편해 보인다. 그러던 중에 자세가 매우 틀려 보이는 민철이와 희연이를 보고는
영새: 민철이 넌 리버스 턴만 돌아가면 지구가 돌아 간 것처럼 허둥거리는구나.
민철:…….
영새: 희연아 리버스 턴 일땐, 니가 민철이 리드 좀 해줘라.
희연: 네.
초등학생인 민철과 희연은 계속 춤을 추고
영새는 아이들을 빠져 나와 조회대 앞에서 담배를 피며 어딘가를 보면서 뭔가를 생각한다.
앞에 있는 종이컵에 담배 재를 턴다.
이때, 영새의 어깨 너머로 춤추던 아이들 춤을 끝내가면서 음악이 끝난다. 그러나 영새는 그것도 모르고 계속 담배를 핀다.
이때, 들리는 희연의 소리.
(희연): 선생님 음악 끝났는데요.
영새 아이들을 귀찮은 듯 쳐다본다.
희연: 선생님 음악 끝났어요.
아이1: 선생님 다른 거 가르쳐 주세요.
영새: (담배를 끄며 귀찮은 듯 CD 플레이어에 같은 곡을 누르며) 야! 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방금 한거나 한번 더하고 있어.
그리고 영새는 다른 곳으로 간다.
아이들 서로들 눈치만 보고 있는데 아이2가
아이2: 우리가 몸친가? 한달동안 이 춤만 가르쳐 주게?
음악이 나오자 마지 못해서 춤추는 아이들.
영새는 춤추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불편한 다리로 어딘가로 걸어간다.
영 새 의 집. / 밤
벌써 재건축 되었어도 하나도 억울할 것 같지 않은 건물 삼층.
불이 켜지면 부식된 기둥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실내.
제법 넓은 플로어가 마련되어 있고, 한 쪽 구석은 커튼이 드리워져 실내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한 쪽 벽면엔 거울이 붙여져 있다.
여기저기 거미줄이 쳐져있고, 부서진 유리에선 바람이 들어온다.
파르스름한 형광등 불빛에 더욱 추워 보이는 실내.
오래된 댄스 대회 수상 트로피가 있고 상장들이 벽에 걸려 있다.
영새가 대회에서 우승한 사진들에 먼지가 낀 상태로 벽에 걸려있다.
TV에서는 댄스 스포츠가 나오고, 얼굴이 꺼칠하고 수염이 제법 자라 있는 영새는 라면을 먹으며 발의 스텝을 맞추고 있다.
이때 들리는 상두의 소리.
상두: 개 버릇 남주냐? 춤꾼이면 춤을 춰야지 뭐 하는 짓이냐? 다린 좀 괜찮아졌냐?
우두커니 영새를 보고 있는 상두.
뭔가 서류뭉치가 든 봉투를 툭 던져준다.
영새, 보면…….
상두: 너만한 춤꾼은 대한민국에 없어. 웬만하면 우리 다시 시작하자.
영새: (피식 웃는다.)
상두: 다시 춤 출 수 있겠지?
영새:……. (말없이 라면만 먹는다.)
상두: 내일 중국에서 괜찮은 애가 하나 온다. 조선족 자치주대회에서 몇 번 우승한 애니까 너랑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다
영새: 관심 없어.
상두: 야 임마~ 현수 그 자식은 떵떵거리며 사는데, 넌 자존심도 없어? 지금 이렇게 사는 게 쪽팔리지도 않냐고?
영새: (짜증을 내며) 아! 싫다니까 왜 자꾸 그래!
상두: (피식 웃으며) 너 혹시, 세영이 일 때문에 그런 거야? 맞아? 야! 임마 그깟 일 때문에…….
영새: (라면을 먹다가 말을 자르며) 형!……. 형한테 그깟 일 일지 모르지만 난 평생 잊을 수 없어. 알았어!!
상두: 야! 그러니까 중국에서 새로 오는 애로 파트너 하자는 거잖아. 게네들이 뭘 알겠니? 도망가지 않게 돈만 조금씩, 조금씩 쥐어주면 지들은 좋다고 해요. 그리고 솔직히 걔네들이 한국물정에 대해서 뭘 알겠냐? 그런 면에선 순진한 얘들이니까 사람 뒤통수 깔 일은 없다니까.
영새: (라면만 먹으며 다리에는 여전히 리듬감으로 춤추는 흉내를 낸다.)
상두: 아무튼 내일 가서 데리고 와. 봉투 안에 사진 있으니까
상두 나가면서 중얼거린다.
“아~ 자식……. 시키는 대로만 하면 지 좋고 나 좋고 얼마나 좋아. 병신새끼”
문을 닫고 나가는 상두.
잠시 정적이 흐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영새 라면을 후루룩 먹다가 봉투를 쳐다본다.
영새 봉투를 보고는 다시 라면을 먹으려다가 젓가락을 놓고는 다시 봉투를 집는다.
선 박. 오 후 / 낮
멀리 육지가 보이는 갑판.
갑판에는 작은 눈송이들이 내린다.
칼바람이 깃발을 온몸으로 부대끼게 불어 젖히고 시퍼런 바닷물이 선수에 부딪쳐 일으키는 물보라가 더욱 차갑게 느껴진다.
낡고 칠이 벗겨진 갑판에 바다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배 보다 낡은 사람들의 모습들.
짧은 생머리에 하얀색 긴 패딩바바리 옷차림의 여자 뒷모습이 보인다.
작은 눈송이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쏟아지고 있다.
여자의 머리에 감싼 스카프에 하얗게 쌓이는 눈.
여전히 갑판 앞에 서서 가까워지는 인천항을 보고 있는 여자.
스카프를 감싼 얼굴이 채 보이지 않는다.
입김만 허옇게 바다바람에 날리며 (상두소리) 미친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그 여자랑 위장결혼을 해야 된다.
정상적인 루트로는 초청이 불가능해,
영 새 차 안. / 낮
와이퍼가 하나밖에 없는 낡은 영새의 차가 덜덜거리며 도로를 달리고 있다.
창유리로 날리는 송이 눈들.
묵묵히 운전을 하는 영새.
영새: (읊조리듯) 다시 시작한다. (헛웃음을 흘린다.)
글러브 박스 위로 붙여진.
강아지 두 마리가 고개를 까불까불하며 끄덕인다.
인 천 항 앞. / 낮
눈들이 어느새 제법 쌓여 인천항 부두의 더러움을 더러는 덮고, 더러는 탈색시키고 있다.
끼익 멈춰서는 자동차.
라면박스 크기만 한 흰 판지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영새.
문을 닫고 돌아서다가, 미끈 바닥에 넘어진다.
손에 들고 있던 판지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눈이 녹은 자리에 떨어진다.
영새: 어휴 시팔……. 진짜!
영새, 일어나 눈을 턴다. 허리를 펴며 인상을 찡그리는 영새.
들고 있던 판지에 ‘장채민’이라는 글씨에 물기가 번지고 있다.
길게 기적을 울리며 들어오는 선박을 물끄러미 보는 영새.
입 국 장. / 낮
낡고 빈티 나는 복장에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눈을 굴리며
입국장에 하나 둘씩 들어오는 사람들.
보따리며, 낡은 가방들 행렬이 이어진다.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채린 잔뜩 멋을 부렸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린 티가 난다.
채린의 시선으로 한 남자가 보인다.
판지를 들고 서 있으나 뭐라고 썼는지 알 수가 없다.
무심코 그 남자 앞을 스쳐가는 채린.
성의 없이 판지를 들고 있는 영새.
수성매직으로 쓴 글씨가 물기에 번져 줄줄 흘러내린다.
글씨가 번진 줄도 모르고 서 있는 영새.
아무도 자신 앞에 멈춰서질 않자, 판지를 뒤집어 본다.
판지를 바닥에 내던지는 영새.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낸다.
눈이 녹아들어 갔는지 젖어 있는 봉투.
호주머니를 까뒤집어 물기를 빼내는 영새.
젖은 봉투가 찢기며 드러나는 사진.
폴라로이드 뒤편이 젖어서 사진 속의 그림이 흐릿하게 뭉개져 있다.
당황스러운 영새는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젊은 여자 몇몇이 나오다가, 기다리던 짝들을 만나 빠져나간다.
입국장을 빠져 나오는 스카프의 여자. 채린의 모습이 주변의 꿀꿀한 모습과 대비되어 깨끗한 느낌이다.
주변을 훑어보는 채린.
20대 후반의 사내가 입구 쪽에서 부지런하게 달려오며 손을 번쩍 든다.
채린, 반갑게 다가가려고 가방을 든다.
사내, 채린을 지나쳐, 뒤편의 여자의 손을 잡는다.
실망하는 채린.
둘러보지만 낯선 풍경들, 문득 두려워 지는 채린.
입 국 장 앞. / 낮
기둥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는 채린과 영새.
영새는 담배를 한대 피면서 라이터로 폴라로이드 사진을 말리고 있다.
입국 장 앞은 텅 비어 있고, 혼자 서 있는 흰색 패딩바바리의 채린만 우두커니 앉아 있다.
채린의 사진을 보는 영새.
사진을 보면, 윤곽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채린과는 전혀 딴 판인 얼굴이다.
이때, 울리는 핸드폰.
영새: 예……. 형? (짜증을 내듯) 오늘 오는 거 맞아? 아~ 글쎄, 장채민인지, 자장면인지 없다니까.
채린, 영새의 핸드폰 대화를 듣더니 고개를 돌린다.
영새는 통화를 하다가 고개를 뒤로 돌리자
채린이가 영새의 뒤에 있다.
영새 뭐 볼일 있냐는 듯이 채린을 보면
채린: 혹시……. 장채민씨 찾습네까?
영새: (핸드폰에 대고) 잠깐만요. 형!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지만 아직 흐릿하다.) 장채민?~씨
채린: (고개 끄덕끄덕) 제가.
영새: (채린을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어~ 형, 찾았어! 내가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
영새는 전화를 끊고, 사진을 주머니에 넣고 채린을 훑어보면 너무 앳되고 순진한 표정의 채린이다.
영새: 근데~ 정말 장채민씨 맞아요?
채린: (어색하게) 네…….
영 새 차 안. / 낮
강아지 두 마리가 자동차 진동에 따라 연신 까닥대고 폴라로이드 사진이 난방기 구멍 앞에 클립으로 고정되어 있다.
채린의 시선이 폴라로이드로 가 있자 운전하는 영새는 흘낏 채린을 보더니
영새: 거, 그건 금방 마르니까 젖었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쇼.
채린: 네?
영새: (사진을 가리키며) 그게 그쪽 사진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젖었네. 물기만 마르면 거 금방 깨끗해질꺼유.
사진 형상이 흘낏 드러나기 시작하자 조바심이 나는 채린.
머플러를 벗고, 손바닥으로 부채질을 한다.
영새: 더워요?
난방기를 끄는 영새.
사진에 시선을 두고 있는 채린.
영새: 근데, 그쪽은 춤 춘 진 얼마나 됐수?
채린: 쪼……. 쪼금 밖에 안 됐습네다.
영새: 듣기론 꽤 춘다고 그러던데…….
채린: (뜨끔)
영새: 주 종목이 뭐요? 모던이요? 라틴이요? 난 원래는 라틴 이였는데 이번엔 모던으로 한번 바꿔볼라 그러는데…….
영새는 채린을 슬쩍 보고는 테이프를 꺼내 데크에 끼워 넣는다.
사랑의 테마 음악(모던댄스 왈츠에 관련된)이 흘러나온다.
음을 따라 허밍을 하면서, 가볍게 운전대를 두들기는 영새.
그런 영새를 물끄러미 보는 채린.
INSERT
온통 하얗게 눈에 덮인 서울의 모습이 차창 옆으로 천천히 흘러가고 하얀 눈길을 달리는 차들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인다.
영 새 의 집. / 밤
지저분한 영새의 집을 보고 입이 떠억 벌어지는 채린.
속옷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다.
영새: (발바닥으로 속옷을 눌러 질질 끌면서 먼지를 닦으며 앞으로 가며) 오늘 따라 집이 좀 더럽네.
영새는 앞으로 가다가 채린을 돌아보고 어색하게 웃자 채린은 영새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 겨우겨우 디디며 따라간다.
영새, 냉장고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간다.
영새: 뭐 좀 먹을게 있으려나?
영새 냉장고 문을 열면 곰팡이 낀 김치와 반찬들.
영새: (급히 냉장고 문을 닫으며) 없네.
채린,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
손을 쓱쓱 비벼 닦더니
영새: 춥죠?
채린: 아……. 아넵네다. 료 정도 날씬 우리 련변에선 가을 날씨밖에 안 됍네다.
영새: (손짓으로 가리키며) 저긴 화장실하고 세면장. 그리고 (손짓) 이쪽은 침실.
채린, 건성으로 듣는다.
채린은 가방을 든 채, 벽에 걸린 액자들을 신기한 듯 본다.
액자에는 연미복을 입고,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왈츠를 추는 영새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사진에 담겨 있다.
채린: 요기 사진에 있는 사람이 아즈바이입니까?
영새는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딴 짓을 하는 채린에게
영새: (연변 사투리로) 고저 거 한번 말 할 때 제대로 들으시라요.
채린: (뻘줌해져서) 미안합네다.
영새: (한 번 피식 웃고는 커튼 쪽을 가리키며) 그리고 침댄 안쪽에 있고
채린: 아……. 아즈바이는요?
영새: (옆 소파를 가리키며) 난 여기서 자면 되니까 걱정 말고 그쪽이나 침대에서 자요.
채린: 그래도 어떻게 그럽니까? 아저씬 주인이고 또……. 고긴 되기 추울 텐데요.
영새: 그런 걱정 하덜 말고, 잠이나 자요. 그리고 거……. 자꾸 아즈바이라고 부르지 좀 마쇼. 거……. 듣기 좀 그러네.
채린, 고개를 끄덕인다.
영 새 의 집 - 커 튼 안. / 밤
퀸 사이즈의 침대 위에 어지러이 널려있는 이불뭉치며, 옷가지들.
침대 옆으론 담배꽁초가 재떨이에 수북하다.
행거에는 연미복이며, 잡다구레한 옷들이 한 가득 이다.
코를 쥐어 잡는 채린.
한쪽 벽 장식장엔 트로피들이 진열되어 있다.
한국댄스스포츠경연대회 대상’등의 트로피들.
트로피에 손을 뻗어 보는 채린.
먼지가 쓰윽 닦인다.
(영새소리): 불 끕니다.
순간, 틱 하고 꺼지는 실내등.
침대에 눕지 못하고 모서리에 앉는 채린.
창 밖에서 흘러 들어오는 야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릎을 당겨 두 손을 잡고 몸을 모은다.
불안한 눈빛이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리는 채린.
이불 속에서 카세트 레코더기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노래 소리가 들린다.
(※중국노래 夜來香 같은 노래가 은은히 흘러나온다.)
연변에 있을 때 언니(채민)와 채린이 같이 불렀던 게 녹음되어 있다.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글썽이는 채린.
녹음된 노래가 끝나고 빨간 녹음버튼을 누르는 채린.
채린: 채민 언니 나 꼭 성공해서 돌아갈게. 나 다시 돌아가면 우리 예전처럼 엄마랑 언니랑 행복하게 사는 거야. 여기 창문 너머로 가로등 불빛이 꼭 고향집 창문에서 반딧불 보는 거 같아.
창문 밖으로 보이는 야경 불빛들.
화면 오버랩 되면 야경 불빛이 흐릿해지며, 파란 새벽이 온다.
영 새 의 집. / 아침
소파에 누워 몸을 웅크리고 새우잠을 자고 있는 영새.
추운 지, 담요를 깊게 뒤집어쓴다.
쓱쓱 소리에 슬그머니 담요를 내리는 영새.
어느새, 깔끔하게 청소가 되어 있는 실내.
벌떡 일어나 앉는 영새.
커튼이 묶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는 영새.
트로피를 닦고 있던 채린 돌아보며
채린: 안녕히 주무셨습네까?
영새: 거 뭐 하는 거요?
채린: 예? 청소합네다.
트로피를 빼앗는 영새.
영새: 누가 내 허락 없이 내 물건에 손대래?
채린: 그저……. 전 그냥. (고개를 푹 수그린다.)
트로피를 아무렇게나 구석에 처박아 버리는 영새.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복 도. / 낮
복도 길을 따라 걸어가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
그 뒤를 따라 걸어가는 김 과장과 은혜.
김 과장: 은혜씨라고 했나요?
은혜: 네.
김 과장: 위장결혼 수사는 이번이 처음이시라고요?
은혜: 네. 잘 부탁드릴게요.
김 과장: 그런 사람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은혜: 예?
김 과장 시야로 영새와 채린이가 유심히 보인다.
김 과장과 은혜는 영새와 채린이 앉아 있는 의자를 지나간다.
김 과장: 이 바닥 10년이면 인상만 봐도 딱! 알 수 있습(갑자기 멈춰서 뒤 돌아 채린과 영새가 앉아 있는 곳을 가리키며) 저기 앉아 있는 남자 중에 어린 여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저 남자 보이죠.
은혜: 네.
김 과장: 허우대는 멀쩡하고 제비같이 생겼죠? 저런 사람들이 뭐가 부족해서 중국에서 배우자를 데리고 오겠습니까? 바로 위장결혼이죠. 잘 봐 두세요.
은혜: 네~에.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김 과장은 영새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은혜도 영새를 바라본다.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대 기 실. / 낮
몇몇 어수룩한 농촌 총각들이, 촌스러워 보이는 조선족 여자들과 짝을 지어 대기석에 앉아 있다.
대기석 한 쪽에 앉아있는 채린이 두 손을 맞잡은 채, 꼬물꼬물 만지고 있다.
채린 불안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런 채린의 손을 잡아 주는 영새.
영새: 너무 걱정 마쇼. 금방 끝날 테니까.
채린: (끄덕인다.)
영새: 우습죠?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이렇게 만나서 결혼신고 한다는 게.
채린: 시, 신고만 하면 끝나는 겁니까?
영새: 왜? 신혼여행이라도 가게요?
채린, 얼굴이 벌게진다. 피식 웃는 영새.
이때, 들리는
(소리): 나영새씨, 장채민씨.
일어서는 영새와, 뒤따라 걷는 채린.
출 입 국 관 리 사 무 소 - 창 구 앞. / 낮
수속을 밟고 서 있는 영새와 채린.
비자를 받고, 막 돌아 설려고 하는데
이때, 김 과장이 어느새 영새의 뒤에서 쓰윽 몸을 내민다.
영새, 뭐냐는 듯 보지만, 김 과장은 신경도 쓰지 않고 서류를 흘낏 보더니
김 과장: 나영새씨?
영새: 예.
김 과장: 주민증은 이년 후에 발급됩니다.
영새: (정체가 뭔지 몰라) 그런데요?
김 과장: 물론 위장결혼이 아닌 것이 밝혀진 후에 일이겠지만
영새, 뜨끔하지만, 걸어간다. 채린 영새 뒤를 따른다.
김 과장: 나영새씨!
영새: (멈춰서면)
김 과장: 위장결혼이 발각되는 즉시, 여자는 영구추방이고, 당신은 실형에 처해진다는 것쯤은 아시겠죠?
영새: !!!
하얗게 질리는 채린의 어깨를 의도적으로 감싸 안고 가는 영새.
김 과장, 두 사람의 뒷모습을 실눈을 뜨고 본다.
미소가 씨익 번지는 김 과장의 얼굴.
김 과장: 니들 얼마나 버티나 보자.
영새 쪽을 바라보는 김 과장의 눈빛이 빛나고
김 과장을 보는 은혜의 표정도 예사롭지 않다.
주 차 장. / 낮
차에 오르는 영새와 채린.
채린: 일……. 일 없겠습네까?
영새: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앞에서만 똥 폼 잡지 다 게을러터진 인간들인 게 감시 한 번 안 나올게 뻔하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거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는 듯한 채린.
영새, 차를 후진시키며
영새: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
채린: 예?
영새: 뭘 그렇게 놀래나? 춤 말이에요. 춤! 채민씨 슈즈는 무슨 종류로 신죠? 000?
채린: …….
영새: 음악은? 음악은 어떤 종류를 좋아하나? 아~ 그럴 것 없이 지금 곧 레코드 가게로 가면 되겠네.
영새, 관리소 입구를 향해 차를 급하게 회전시킨다.
휘청 어지러운 채린.
휘파람을 불면서 운전을 하는 영새는 히터를 켜려고 손을 뻗는다.
슬로우 모션으로 보이는 영새의 손이 히터에 뻗혀지고 채린의 시선도 몰린다.
히터 열기에 몸을 흔드는 폴라로이드 사진.
얼굴 표정이 굳어지는 영새.
채린의 표정도 급작스레 절망으로 무너진다.
끼이익 ~ 하는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멈춰서는 자동차.
채린을 보는 영새의 눈. 분노와 원망의 느낌이 얽혀있다.
체념 어린 시선으로 끔벅이는 채린의 눈.
클립에 끼워진 사진이 펄렁 하고 날아가 떨어진다.
영 새 의 집. / 낮
정물처럼 고요히 앉아 있는 영새와 채린.
영새 화를 누르고 있다.
영새: 왜 그랬니?
채린: 미안합네다.
영새: 왜 그랬냐고?!
채린: (더듬더듬) 어, 언닌. 결혼할 남자가 있었슴네다. 형부 될 사람이 남조선은 무서운 나라라고, 언닐 보내면 파혼하겠다고 해서……. 아즈바이, 저 어릴 적에 어린이 가무단에 있었슴아즈바이가 가르쳐주시면, 저도 잘 출 수 있슴저한테 춤 배워주십시오. 예?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며 들어오는 상두와 상두부하 선규, 영준.
매우 차가운 느낌으로 채린에게 다가오는 상두와 상두 뒤를 따라오는 선규, 영준.
상두는 겁에 질려 있는 채린 앞에 서서 따귀를 한 대 때린다.
채린은 상두에게 따귀를 맞고는 매우 겁에 질
려 있다.
다시 채린의 따귀를 때리는 상두.
채린 상두에게 따귀를 맞고 휘청거린다,
상두는 그런 채린을 째려보면서 잠시 사이를 두고 다시 채린의 따귀를 매우 세게 갈긴다.
그런 모습을 보고 놀라는 영새.
채린은 상두에게 따귀를 맞고 머리가 헝클어지며 바닥에 터엉 쓰러진다.
채린의 입가에서 주르르 흘러나오는 피.
걷어 찰 기세의 상두를 막는 영새.
영새: 형! 그만하구 데리구 나가.
상두: 뭘 그만해, 새꺄! 저년 데리고 올라고 날린 돈이 얼만 대! 저런 년은 그냥 콱.
영새: 그냥 데리구 나가라니까.
상두, 씨근대지만, 영새 눈이 말린다.
상두: 끌고 가!
채린을 매몰차게 끌고 가는 선규와 영준.
채린: 아즈바이~ 죄송합네다. 정말로 죄송합네다.
문이 닫히면 기분 더럽다.
담배를 물어 피우는 영새.
상두: 너한텐 미안하게 됐다. (문 쪽으로 나가면서 혼잣말로 궁시렁 거리며)
어디 술집에라도 넘겨 버리던가 해야지…….
상두, 담배를 바닥에 던져 비벼 끄고는 나가 버린다.
깨끗한 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물끄러미 보는 영새는 담배꽁초를 집어서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 시간경과 -
해가 설핏 지며 어둠이 깔린다.
창가에 서 소주병을 통째로 마시며
영새: (자조적으로) 병신 같은 놈. 무슨 춤을 다시 추겠다고 흐흥
영 새 의 집. / 낮
소파 주변에는 술병이 몇 개 뒹굴어져 있고 영새는 소파에 몸을 걸친 채 잠들어 있다.
이때, 울리는 전화기. 영새는 잠결에 전화를 받는다.
영새: 여보세요.
(소리): 안녕하십니까? 저……. 저 채린이에요.
영새: 누구? (귀찮다는 듯이) 무슨 일이야.
(채린): 저 취직 됐습네다.
영새: 그 말하려고 전화했냐! 거기 뭐하는 덴데?
공 중 전 화 박 스 안 / 낮
수화기를 들고 있는 채린.
채린: 요기는요……. 가리봉동이라 그러는데요. 사람들이 꽃마차라고 부르는 것 같습네다.
채린, 뒤편으로 보이는 낡은 매미집 같은 분위기 간판에 적힌‘꽃마차’
채린: (정말 밝은 얼굴로) 놀라지 마시래요. 매일 춤도 배워주구요. 침식 제공에 이백 만원이래요. 아주 좋습네다.
영 새 의 집. / 낮
영새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지만 다시 늘어지며
영새: (귀찮은 듯) 그래……. 그래……. 좋은데 취직했구나. (할 말이 없다.)
전 화 박 스 안. / 낮
채린: 아즈바이 전 괜찮습네다. 제가 뭐 어린앤가요? 저 데려간 그 아즈바이가 소개시켜 줬슴네다. 여기 사장님이랑 사모님이 너무 좋으신 분들 같슴네다. (사이) 아저씨……. 저 춤 열심히 배우겠슴네다. 저 춤 다 배우면 그 때 아즈바이 찾아가겠습네다. 그리고요 제가 깜박하고 아즈바이 침대 베개 밑에 다가 제 물건 하나 놓고 왔습네다. 조만간 찾으러 갈 테니까요. 챙겨주시면 고맙겠습네다.
영 새 의 집. / 낮
영새 전화 소리를 듣고 있는데
이때, 들리는 동전이 떨어지는 신호음이 띠띠 울리며
(채린): 이제 들어가 봐야 될 것 같슴네다. 오늘 저녁부터 일하기로 했거든요. 안녕히 계세……. (띠띠띠띠)
영새: …….
끊긴 전화신호음이 들려오고, 수화기를 내려놓고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소파에 눕는다.
천장을 물끄러미 보는 영새. 다시 벌떡 몸을 일으켜 채린이 자던 침대 쪽으로 걸어가 침대위에 베개를 들자 카세트 레코더가 놓여있다.
레코더기를 손으로 집어 보는 영새.
물끄러미 보다가 플레이 버튼을 발견하고 눌러보는 영새.
버튼을 누르자 애절한 내용이 담긴 채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영새: (스톱 버튼을 누르고) 병신 같은 게 진짜.
베개 밑에 다시 카세트 레코더를 넣고는
일어나, 웃옷을 신경질적으로 주워들고, 나간다.
몽 타 주. / 밤
가리봉동 밤.
술집 네온불빛 간판들이 즐비한 골목을 헤매는 영새.
더운지, 옷깃도 풀고, 소매도 걷어 올렸다.
간판들이 계속적으로 오버랩 되고 점차 조바심이 나는 영새의 얼굴.
지친 다리에 통증이 오는지, 무릎을 만지는 영새.
다시 술집들을 찾기 시작한다.
꽃 마 차. / 밤
어설픈 화장기를 세운 얼굴에, 눈물이 범벅이 된 채린.
반짝이가 붙은 야한 띠 원피스를 입은 채 무릎을 꿇고 빌고 있다.
엉엉 울며
채린: 아즈바이. 잘못했습네다. 제발 저 좀 보내 주십시오.
양아치 놈 하나와 마담인 듯한 여자가 독기선 눈으로 채린을 보고 있다.
양아치: 니 손으로 직접 계약 했잖아.
채린: 손님 접대하란 말은 없지 않았습니까? 제발 저 좀 보내 주십시오. 엉~엉~.
양아치: (어이가 없어) 이 계집애 멍청한 거야, 순진한 거야? 이게 맛 좀 봐야 알겠나? (혁대를 푸른다.)
양아치, 씨익 웃더니 혁대를 푼다.
채린,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난다.
맥주병을 들어, 양아치에게 겨눈다.
채린: 가, 가까이 오지 마십시오.
피식 웃는 양아치.
맥주병을 주먹으로 퍼억 갈긴다.
와장창 나가떨어지는 파편들.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 채린.
양아치, 혁대를 푼다.
체념한 듯, 눈을 감는 채린.
이때, 와당탕 문이 부서지며, 바닥에 나뒹구는 종업원1.
양아치, 흠칫 놀라 돌아서면 눈에 불을 켠 영새. 땀이 범벅된 얼굴로 양아치를 노려보고 있다.
채린: 영새 아즈바이!
양아치: 이건 또 뭐야!
영새: 그 아이 놔 줘.
양아치: 놀구 있네. 야, 새꺄. 니가 이 년 남편이라도 되냐?
영새: 그래, 내가 남편이다!
양아치: (어이가 없는 지) 참내, 별 거지같은
영새, 양아치를 향해 분노의 주먹을 쉬웅 날린다.
가볍게 피하는 양아치.
영새,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덤비지만, 양아치 주먹이 영새의 면상과 복부를 퍽퍽 갈긴다.
바닥에 주저앉는 영새. 욱욱~ 마른침을 토해낸다.
벽을 짚고 일어나는 영새.
순간, 옆 옷걸이를 들어 양아치를 내려찍는 영새.
비명을 지르며 나뒹구는 양아치.
분이 안 풀리는 지, 쓰러진 양아치의 옆구리를 미친 듯이 걷어차는 영새.
도리어, 놀라서 영새를 붙드는 채린.
채린: 그만 하십시오. 아즈바이. 그만 하십시오. (영새의 얼굴을 붙들고 눈물이 범벅된 눈으로 애원하며) 그만 하세요. 제가 잘못했습네다. 아저씨 제발요~
영새, 그제야 숨을 몰아쉬며 발길질을 멈춘다.
채린을 노려보며 확 내쳐질 듯이 손을 치켜 올리다가
영새: 이런 병신 같은 게 그냥 꽉!
훌쩍대는 채린.
큰 길. / 밤
도시의 네온사인이 보이는 큰길을 걸어가는 영새와 채린.
채린은 영새보다 뒤에 쳐져서 걸어오고 있다.
채린은 높은 힐을 신어서 그런지 매우 불편하게 걸어오고 있다.
채린은 한 손에는 여행용 가방을 들고 오고 있다.
영새는 채린보다 앞으로 걸어가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뒤돌아 채린을 향해
영새: 야, 너 진짜 이름이 뭐라고?
채린: 채린입네다. 장채린.
영새: 몇 살이냐?
채린: 스……. 물 둘입네다.
영새: (멈춰서) 너 진짜 거짓말하면 버리고 간다.
채린: 여……. 열아홉입네다.
영새: (기가 막히듯이 다시 앞으로 걸어가며) 참나, 나이도 어린 기집 애가 간도 두껍다.
채린: 사, 삼월생이라서요. 요번 겨울 지나면 스물이 됩진짜 에요.
영새 피식 웃으며 앞으로 걸어가는데 갑자기 뒤에서 채린의 “아!” 소리가 난다.
영새 돌아보면 채린의 하이힐이 보도블록 틈새에 껴서 넘어졌다.
영새: (한숨을 쉬며 채린에게 간다.) 아주 그냥 여러 가지 한다. 응!
- 시간경과 -
채린은 영새의 등에 업혀 있다.
영새는 채린을 업고 길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영새: 야, 이 바보야 거긴 왜 간 거야?
채린: 나 데려간 아즈바이가요. 춤도 배워주고, 돈도 준다고 해서 갔습니다.
영새: 미친년, 거기서 추는 게 춤인지 알어? 몸 팔려고 쇼하는 거지. 그리고 화장은 그게 또 뭐냐? 귀신 코딱지같이 해가지고, 마! 니 나이 땐 화장 안 한 맨 얼굴이 더 이쁜거야. 알어?
채린: ……. 아즈바이.
영새: (뚝뚝하게) 또 왜?!
채린: 고맙습네다.
영새: 미친 년.
채린: (웃는다.)
영새: 너 그리고 말이야 그 “고맙습네다 죄송합네다.” 그 말투 좀 안 고칠래?
채린: 알겠습네다.
영새: 또 그러네.
채린 움찔하며, 영새의 목을 살며시 감싸고 얼굴을 기댄다.
채린의 숨결을 느끼는 영새는 묵묵히 걷는다.
채린의 시선으로 보이는, 서울의 밤 풍경.
대형 크리스마스 추리며, 나무에 걸쳐놓은 작은 반짝이 전구들이 영롱하다.
영 새 의 집 - 침 대 앞. / 밤
침대 모서리에 기대앉아 있는 채린.
방을 열어, 솜뭉치를 꺼내 펼쳐본다.
대야에 펄펄 끓는 물을 담아 오는 영새.
솜뭉치를 둘둘 말아 놓는 채린.
채린 앞에 대야를 놓고, 팔에 걸린 수건을 툭 던져주며
:
영새: 찜질해.
:
채린, 수건을 물에 담근다.
뜨거운 지, 수건 끝을 잡고 물에 담가 적시기만 하고 있다.
한심하다는 듯이 보는 영새.
앞에 주저앉더니 수건을 물에 푹 담그며
영새: 잘 봐. 응~ 찜질은 수건을 뜨거운 물에 팍팍 담갔다가 (뜨겁다!)
(입에서 스으스~ 하는 소리를 낸다.) 꽉꽉 짜서 채린의 부은 발목에 철썩 올려놓는 영새.
채린 인상이 찡그려지며, 손을 후후 저으며, 말은 못하고
채린: 아, 아저씨. 아저씨…….
눈물이 핑 도는 채린의 눈자위.
영새: 참아! 부기가 빠져야 금방 났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채린의 머리카락을 젖히는 영새.
벌게져 있는 채린의 눈자위가 클로즈업된다.
맑고 빠져들어 갈 듯한 눈이 하늘을 향해 있고 약을 묻힌 영새의 손이, 눈자위에 닿을락말락한다.
뚫어질 듯, 채린을 보는 영새의 눈.
눈을 깜박거리는 영새.
연고를 채린의 무릎에 던져준다.
영문을 몰라 바라보는 채린.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는 영새.
소염제를 채린의 발목에 발라준다.
퉁퉁 부운 발을 이리저리 돌려, 약을 바르는 영새.
발바닥을 문지르며 바르자,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는 채린.
영새가 고개를 들어 휙 노려보면 입을 꾹 다물고 웃음을 참는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바르면, 입을 가리고 킥킥대는 채린.
붕대를 감아주는 영새.
능숙하게 반창고를 붙이고, 가위질을 한다.
영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채린.
아이의 시선이 아니다.
채린: 아저씨 꼭 그러니까……. 의사 같습네다.
영새: 이게 알랑방구 끼고 있네. 그리고 너, 그 말투 고치라고 했지.
채린: 진짜에요. (표준말을 쓸려는 듯) 진짜로 의. 사. 같. 아. 요.
영새 채린의 서울 말투에 웃으며,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채린의 발을 휙 바닥에 놓는다.
비명을 지르는 채린.
영새: 치료비 대신이다.
영새, 남은 붕대며, 반창고 등을 긁어모은다.
침대 옆에 있는 솜뭉치를 보더니, 뭔가 하며 펼쳐 본다.
누에꼬치 같은 것이 보이자, 인상을 찌푸리며 구긴다.
비닐봉투에 넣어 버리려 하면
채린: 버리지 마십시오!
영새: (보면)
채린: 제가 키우는 겁네다.
영새: (솜뭉치를 툭 떨어뜨리며) 벌……. 레 키우는 게 취미냐?
채린: (웃으며 솜뭉치를 집어 든다.) 반딧불이에요.
영새: 반딧불?
채린: 우리 고향엔 초여름 밤이 되면 반딧불이 지천으로 날아다니거든요. 제 짝을 찾기 위해 초록색 불을 켜고, 밤새 사랑의 빛을 밝히는 겁네다. 서울엔 반딧불이 없다고 들어서……. 이 고치가 애벌레가 되고, 성충이 되어서 날기 시작하면 그 때쯤이면 고향에 돌아갈 수도 있습네다.
영새: (묵묵히 듣고 있다.)
채린: 영새 아저씨
영새: (보면)
채린: 나, 춤 배워주면 안 되겠습니까? 저 지금 돌아가면, 우리 식구들이랑, 언닌 어떻합니까?
영새: 어떻하긴 뭘 어떡해? 고향엘 가든 지, 다른 일자릴 찾든지 해야지. 그만 잠이나 자라.
주섬주섬 비닐봉투를 들고일어나는 영새.
커튼을 휘익 치면서 나간다.
솜뭉치를 만지작거리는 채린.
솜뭉치를 만지작거리다 베개 밑에 손을 넣어보는 채린.
배게 밑에 그대로 있는 채린의 카세트 레코더기.
INSERT
영새의 집 불이 꺼지는 전경.
영 새 의 집. / 새 벽
소파에 누운 채 잠이 든 영새는 열에 들떠 신음소리를 낸다.
무릎을 끌어안고, 끄응 끄응 앓는 영새의 얼굴에 식은땀이 온 얼굴에 가득 배어 나온다.
영 새 의 집 - 침 실. / 새 벽
불편하게 모로 누워 선잠이 든 채린. 슬그머니 눈을 뜬다.
절뚝대며 일어나, 커튼을 슬며시 젖혀 본다.
열에 들 떠 신음하는 영새가 안쓰럽다.
영 새 의 집 - 소 파 앞. / 새 벽
영새의 바지를 치켜올리는 채린.
영새, 잠결에 신음만 내고 있다.
모락모락 솟아오르는 김이 달빛에 반사되어 보인다.
수건을 짜면서. 스으스~ 소리를 내는 채린.
영새의 무릎을 수건으로 감싼다.
‘으윽~’ 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실눈을 뜨는 영새.
지치는지, 눈이 다시 감긴다.
수건을 손으로 꼬옥 감싸는 채린.
영새의 신음소리도 점차 가라앉는다.
영 새 의 집 - 소 파, / 아 침.
문을 탕탕 두들기는 소리에 찡그리다가 담요를 휙 던지고 일어나는 영새.
바지가 걷힌 무릎 위에 파스가 붙여져 있다.
파스를 내려보는 영새. ‘무슨 파스지’ 하는 느낌의 영새.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자, 신경질적으로
영새: 어떤 새끼가 아침부터!
문을 왈칵 여는 영새.
출입국 관리소의 김 과장과 경찰청 직원 최은혜다.
김 과장은 막무가내로 영새를 지나 집안으로 들어온다.
영새는 문 앞에서 김 과장의 출현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김 과장과 은혜는 꼬투리 잡을 게 없나 집안을 살피며
김 과장: (문 쪽에 있는 영새를 안 보면서 날카롭게 집안을 살피며) 저 기억하시죠? 출입국 관리소 조사 3과 김치성입니다.
영새: (당황) 아, 예……. 근데 무슨 일로…….
김 과장: 위장결혼 집중감시 기간이거든요. (집안을 둘러보다가) 근데 부인은 안 계시나요?
영새: 부인요? 아…….(두리번거리다가)아……. 예……. 부인요……. 채……. 채민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영새는 아무 소리가 들리자 않자 긴장한다.
김 과장: 나영새씨! 장채민씨는 어떻게 만났죠?
영새: 예?
김 과장: (주위를 둘러보다가 영새를 보며) 나영새씬 일정한 직업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리고 들어오는 수입도 일정치가 않을 테고…….
영새: (영새 김 과장의 눈을 바라보면서) 수입은 일정치 않지만 전 댄스 스포츠 선수입
김 과장: 아~ 제 말이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근데 결혼한 부부가 손에 반지도 없고, 결혼식 사진도 없고……. 특히 여자가 사는 집에 화장품이 없는 것도 이상하군요.
긴장하는 영새
김 과장: 그리고 부인 되시는 분의 가방이 아직도 그대로이군요. 최은혜 씨!
은혜: 네!
김 과장: (화장실 쪽으로 가며) 잘 보세요. 대개의 위장 결혼을 한 부부가 같이 사는지 안 사는지 알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는 아주 사소한데서 알 수가 있습가령 예를 들면 화장실에 있는 칫솔이라든지…….
화장실 쪽으로 가는 김 과장
긴장하는 영새.
이때, 화장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쏴아~ 하고 들린다.
멈칫하는 김 과장.
화장실 문이 열리면서 고개만 쏘옥 내미는 채
린이가 칫솔질을 하고 있다.
채린: (칫솔질을 하면서 표준말로) 영새씨 누가 왔어요?
영새: (채린이가 화장실에 있자 안심이 되서) 어~ 출입국 관리 직원이 오셨어.
김 과장: (화장실에서 칫솔질 하고 있는 채린을 보고는 당황해서) 실례했습니다.
영새: (김 과장을 약 올리는 듯) 그 분이 채민이 너 이빨 잘 닦나 안 닦나 보고 싶으신가봐.
채린: (김 과장에게 보란 듯이 더욱 강렬하게 칫솔질을 하며) 저 잘 닦고 있어요. ‘치카치카’
김 과장: (겸연쩍어서) 아~네 잘 닦고 계셨군요. 실례했습그럼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김 과장 황급히 은혜와 같이 나간다.
영새: 예~ 안녕히 가세요.
문이 닫히면 후우~ 한 숨을 내쉬는 영새.
욕실 문이 열리면서 입안에 거품을 가득 물고 나오는 채린.
한손엔 칫솔을 들고 있다.
채린: 갔습네까?
고개를 끄덕이는 영새.
채린: (나오면서) 앞으로 또 오면 어떻게 합네까?
영새: (채린의 등을 치며) 의례적인 거니까, 신경 쓰지 마.
영새가 채린의 등을 치자 채린은 입안의 거품을 자신도 모르게 삼킨다.
울상이 되는 채린의 모습.
건 너 편 옥 상. / 아침
영새의 집 앞 상가 옥상에 놓여 있는 천체 망원경.
삼각대를 조정해 균형을 잡는 김 과장.
옆에 있는 은혜는 줌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함인지 모자까지 눌러썼다.
김 과장: 의례적인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할 테고, (망원경 초점을 조절하며) 공무원들은 앞에서만 똥 폼 잡는그런 놈들이라고 그르겠지. 두고 봅시다. 나영새~씨~
천체 망원경 초점을 조절하면, 영새의 집 모습이 보이고 망원경 안으로 초조하게 왔다 갔다 하는 영새와 채린의 모습이 뚜렷하게 보인다.
김 과장: 최은혜씨. 준비됐습니까?
은혜: (카메라를 들어 눈앞으로 가져다대며) 예! 준비 됐습니다.
김 과장: 좋습니다, 건국 56년, 준비된 공무원의 무서움을 보여줍시다.
상 두 사 무 실. / 낮
정통 볼륨댄스 간판이 붙은 낡은 건물 삼층.
상두 낡은 교습소에 40대 중년 아주머니를 상대로 춤을 가르쳐 주고 있다.
통유리 너머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영새.
상두 사무실로 들어온다.
상두: 미친 새끼, 내가 무슨 자선 사업간 줄 알아?! 그 계집애 어딨어? 당장 데려 와!
영새: 출입국 관리소에서 나왔는데 위장결혼 집중감시 기간이래.
창문을 통해 보이는 상두와 마주앉는 영새.
끄응 소파에 앉는 상두.
상두: 시팔~ 미치겠구먼.
영새: 형.
상두: (본다.)
영새: 다시 시작하라고 했지?
상두: 임마, 그런 초짜가 올 줄 누가 알았어?
영새: 세영 이도 처음엔 스텝 밟을 줄도 몰랐었잖아.
상두: 대회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어? 고작 석 달이야. 석 달……. 석 달 동안 뭘 얼마나. (제 풀에…….) 너 혹시……. 그 계집애가 맘에 들디?
영새: (피식 웃는다.) 형! 나나 형이나 이게 마지막 기회잖아.
상두: …….
영새: (일어서며) 형! 나한테 한 번만 맡겨줘봐.
상 두 무 도 연 습 장. / 낮
텅 빈 플로어에 한 쌍의 커플이 춤을 추고 있다.
빠르고 경쾌한 라틴음악에 맞춰, 스퀘어 룸바를 추고 있다.
문을 열고 나오던 영새. 문득, 발걸음을 멈춰서 본다.
커플(철용과 미수) 열심히 턴을 하고, 박자를 맞춘다.
턴을 하는 미수.
다시 걷는 영새를 보는 철용.
철용: 영새형!
턴을 하며, 몸을 뒤로 젖히던 미수, 꽈당 바닥에 떨어진다.
철용, 영새 손을 덥석 잡으며
철용: 형. 이게 얼마만 이오?
영새: (말을 끊으며) 웬일이냐?
철용: (미수, 허리가 아픈 지 받치며 다가오자) 야, 인사해. 내가 얘기했지? 국가대표 선발전서 떨어졌던 나영새 형이라고…….
영새, 미수를 보면 맹한 스타일이다.
미수: (속없이 허리를 돌리면서, 흐흥하고 바보처럼 헤프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오빠 오. 미. 수. 라고 합잘 부탁합니다.
영새: 아……. 예……. (떱더름)
철용: (미수를 자제 시키면서) 형, 얜 내가 재즈댄스 학원 수십 군데 뒤져서 스카웃한 애거든. 예전엔 치어리더도 했었어. 그래서 그런지 기본기는 있는 얘야. 이번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얘랑 자이브로 한 번 멋지게 흔들어 볼 라고
영새: 한번 잘해 봐라.
나가는 영새.
철용: 형. 우리 지도해 줘야 돼! 알았지! 대한민국에선 형이 최고잖아!
문이 닫힌다.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철용.
미수: (영새 쪽을 보며) 어머 괜찮다아~
철용: 너, 한 눈 팔면 죽음이야.
삐죽대는 미수.
영 새 의 집 - 욕 실. / 밤
치카치카 양치질을 하는 채린의 손.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갑자기 양치질하는 손이 느려진다.
이때, 들리는 상두의 소리.
(상두off): 만일 이번에도 엉뚱한 일 저지르면, 가만히 안 있을 줄 알어. 너한테 마지막 기회니까 진짜 부부처럼 행동해. 알았어?!
두의 소리가 끝나자 느려진 양치질을 매우 빠르게 한다. 이윽고, 샤워꼭지의 물줄기가 쏟아지자 뭔가를 결심한 듯 단추를 푸는 채린.
샤워 물줄기에 몸을 맡기는 채린.
하얗게 김이 서린 유리를 뽀드득 손으로 닦아내면 결의에 찬 표정의 채린.
영 새 의 집. / 밤
붙박이장을 열어, 자신의 깨끗한 잠옷을 꺼내본다.
거울 앞에 서서 대보는 채린.
다른 옷들을 비춰보지만 난감하기만 하다.
손톱을 깨물며 불안하게 거실을 왔다 갔다 하는 채린은 침대에 털썩 앉는다.
수화기를 드는 채린. 버튼을 누르며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채린: 엄마? 나, 채린이. 응. 갑자기 일이 생겨서 전활 못했어. 응? 응. 괜찮타니까. 언니가 온 거 보다 훨씬 낫대. 내가 언니 보다 더 이쁘잖아, 헤헤. 걱정 하지말고……. 엄마, 내가 누구 딸인데…….언니는 괜찮아? 응. 응……. 엄마두 일 쉬엄쉬엄 하구……. 아프면 안돼……. 엄마 전화비 많이 나오니까, 끊을게. 응, 엄마 안녕~
버튼을 누르는 채린의 얼굴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찰하듯이 마구 비비는 채린.
기지개를 켠다. 애써 낮아지는 기분을 풀려는 듯이 혼자서 ‘헤헤~’ 웃어 본다.
채린: 장채린, 뭐 하는 거니, 바보같이……. 잘 할 수 있것지?! 그래야지. 닌 잘 할 수 있어!
자기최면을 걸며 고개를 끄덕하는 채린.
이때, 밖에서 들리는 벨소리.
순식간에 굳센 표정이 풀어지며, 공포에 질려…….
채린: (울먹이는 목소리로) 엄마, 나 어떡해?
영 새 의 집 - 현 관. / 밤
밖에선 벨을 누르다가, 쾅쾅쾅 발로 문을 걷어차는 소리가 들리고, 잠옷 단추를 잠그느라 허둥대는 채린.
거울을 한 번 보고, 옷매무새를 매만지더니, 현관문 잠금 장치를 푼다.
왈칵 열리는 문.
뒷걸음질로 후다닥 물러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