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갈아 생리를 맞는 딸들이 이렇게나 힘드니 처음 시작하는 날 가족들이 그런 축하를 해주나 보다며 "울 엄마는 통 관심이 없었지만요."라며 비아냥거린다. 어떻게 처리하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였지 장미꽃이며 케익을 사 준 기억은 없다. 내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축하해 줄만한 여건이 되는데도 이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더 쑥스러워 쉬이 그런 자리를 만들지 못한다.
한때 사는 게 각박해 눈물 흘릴 틈도 없던 시절이 있었다.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가 자존심을 지키느라 집안 살림을 나몰라라 하는 통에 엄마 혼자 아둥바둥하는데도 기어이 욕심을 부려 대학에 입학했다. 이런 형편이니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건 다 해 보고 싶은 시절이었지만 가끔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치인 듯싶어 학교 끝나기가 무섭게 집으로 내달리곤 했다. 가정형편이 이러니 내 욕심만 차릴 수 없어 방학 동안에는 공장에 다니기도 하고 시험 기간에는 친구 자취집에서 신세를 졌다. 점점 나아지면 좋으련만 날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집안 형편에 원망만 가득했다.
그 시절은 과외도 금지됐던 때라 입주해서 아이를 지도하며 다니는 친구 ㅈ이 부럽기만 했다. 나보다 더한 이들도 많으련만 ㅈ만큼의 행운도 주어지지 않는 세상이 야속했다. 잠시도 옆을 볼 여유가 없던 때라 가슴은 바스러질 듯 메마르고 각박했다. 울고 싶은 일이 생겨도 좀체 눈물이 나지 않았다. 아니 울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으리라.
여전히 힘든 가정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 사이 언니가 시집가서 조카를 낳았다. 참 신기했다. 피를 나눴다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울 일이 아닌 데도 제어하지 못하고 남몰래 눈을 훔치느라 난감했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막힌 감정이 봇물처럼 흘러내린 그날 이후, 심경의 변화가 생긴 듯하다.
눈이 쌓여 엄두도 내지 않은 무등산을 얇은 누비 점퍼에 운동화도 아닌 터덕거리는 가죽신발을 신고도 기꺼이 오르고, 돈 한 푼 없어도 벚꽃 피는 거리를 걸으며 나름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되었다. 주변이 변한 건 하나도 없었지만 아이의 탄생으로 환경을 탓하며 강퍅스레 굴던 내 태도도 누그러졌다. 첫사랑도 그리 강열하지는 않았을 성싶다. 강의 마치기가 무섭게 달려가 아이를 들쳐 없고 온종일 쏘다녀도 창피한 줄도, 힘든 줄도 몰랐다.
지금 생각해 봐도 신기하다. 온종일 옹알거리는 아이가 떠올라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까지 업고 나가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며 힘든 가정 형편 때문에 가슴 한구석 덩어리져 웅크리고 있던 감정의 응어리가 서서히 풀렸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온통 잿빛이던 내게 환한 슬픔을 안겨준 내 첫 조카. 그로부터 배웠다. 슬픔은 그 안에 또다른 기쁨을 잉태하고 있다는 걸.
첫댓글 조카의 탄생이 응어리를 누그러뜨리는 계기가 되었군요. 너무너무 이쁜 조카입니다. 아이를 자랑하며 업고 다니는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납니다.
어린 조카를 그리 사랑하시다니요? 핏줄은 어쩌지 못하나봅니다. 얼마나 이뻤을까요? 마음도 푸근해졌다니 상상만 해도 제 마음이 몽글거립니다.
주변 사람들을 두루 사랑하는 마음이 조카 사랑에서 시작되었나 봅니다. 생명의 힘은 대단한 모양입니다. 봄바다님 사랑합니다.
힘들었던 시기를, 새 생명의 탄생을 보며 잘 이겨내신 선생님이 참 훌륭해 보이십니다. 조카에게 느꼈던 그 마음이 자녀들에게도 이어졌을 것 같구요.
스무 살 차이 나는 사촌 동생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엄마인 것처럼 열심히 업고 다녔거든요. 하하. 선생님이 사랑으로 키운 조카와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