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8). 거대한 연결 체계, 혈액순환
간단한 기계를 하나 사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 그 구조와 작동 원리와 사용 방법을 자세히 알려고 합니다. 우리 몸은 기계보다도 훨씬 소중한 존재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몸이 없으면 정신도 없고, 여러분 자신도 존재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도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몸을 아무렇게나 다루다가 건강을 해치고 나서야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몸은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기계입니다. 그래서 ‘신비한 작은 우주’라고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
살아가고 일을 하려면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100조 개의 세포에 끊임없이 영양분과 산소를 공급해 주고, 노폐물을 제거해야 한다. 게다가, 일부 세포에서 만들어진 물질도 그것이 쓰일 몸 안의 다른 곳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 수많은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각의 일꾼에게 필요한 것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주 효율적인 연결 체계가 필요한데, 그러한 연결 체계가 바로 순환계(혈관계)이다.
순환계는 수많은 혈관의 연결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혈관의 종류에는 크게 동맥과 정맥과 모세혈관이 있다. 이 혈관들을 한 줄로 죽 이어 붙이면 자그마치 15만 킬로미터(지구 둘레의 세 배 이상)나 된다. 모세혈관을 통해 흐르는 혈액은 영양물질과 산소를 세포에 전달하고, 그 대신 이산화탄소를 포함해 세포에서 생긴 노폐물을 실어 온다. 이렇듯 순환계는 본질적으로 아주 긴 수송 체계인 셈이다. 때로는 인체의 적인 바이러스나 세균도 순환계를 이용해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이동한다.
혈액은 혈장이라는 액체와 여러 가지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시험관 속에 혈액을 넣고 원심 분리 장치를 이용해 빠른 속도로 돌리면, 무거운 세포들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혈장은 위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혈액 속에 가장 많이 들어 있는 세포는 적혈구이다. 적혈구는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실어 나르는 일을 한다. 적혈구는 우리 몸속에 있는 세포 중에서 유일하게 세포핵이 없는 세포이다. 적혈구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분자가 들어 있는 주머니이다. 헤모글로빈은 산소나 이산화탄소와 잘 결합하는 성질이 있다. 헤모글로빈이 산소와 결합하면 선홍색을 띠고, 이산화탄소와 결합하면 어두운 붉은색으로 변한다. 같은 사람의 피인데도 때에 따라 서로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적혈구는 백혈구보다 수가 훨씬 많다(크기는 백혈구가 더 크다). 사람의 몸속에는 혈액이 5L 정도 들어있고, 그 속에는 적혈구가 약 20조 개나 들어있다. 겸형적혈구 빈혈증은 폐에서 산소와 결합하여 산소를 세포로 날라다 주는 헤모글로빈 분자에 결함이 생겨 일어나는 병이다. 이 결함 때문에 헤모글로빈은 산소를 제대로 날라다 주지 못하고, 적혈구는 낫 모양(겸형)으로 변한다. 많은 종류의 빈혈증처럼 겸형적혈구 빈혈증도 유전 질환이며, 결함이 생긴 적혈구의 비율이 높으면 사망할 수도 있다.
혈액 속에는 적혈구 외에 백혈구도 있다. 백혈구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저마다 독특한 방어 전술을 사용해 외부에서 침입해 온 적과 싸운다.
혈액이 순환계 속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특별한 근육인 심장이 펌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람의 심장은 평생 멈추지 않고 계속 뛴다. 팔 근육으로 같은 일을 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지쳐서 더는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심장이 쉬지 않고 계속 뛸 수 있는 것은 심장에만 있는 특별한 심장 조직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움직임과는 달리 심장 박동은 신경계에서 오는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심장 박동의 리듬을 조절하는 것은 바로 심장 자신이다. 그래서 심장을 몸에서 떼어내더라도 한동안은 혼자서 박동을 계속한다. 스스로 박동하는 심장 조직의 특성 때문에 심장 이식 수술을 하는 게 가능하다.
심장은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은 혈액이 들어오는 왼쪽 부분과 몸에서 산소가 필요한 혈액이 들어오는 오른쪽 부분으로 나뉘어 있고, 그 사이에는 수직 방향으로 격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 때문에 두 종류의 혈액은 서로 섞이지 않는다. 또 각 부분은 윗부분의 심방과 아랫부분의 심실로 나누어져 있다. 심방과 심실에는 주기적으로 혈액이 가득 찼다가 빠져나갔다 한다. 심방과 심실 사이의 혈액 흐름은 심방과 심실 사이에 있는 판막으로 조절된다.
심장은 동맥을 통해 몸 구석구석으로 혈액을 보내고, 정맥을 통해 몸에서 오는 혈액을 받아들인다. 혈액이 몸으로 가려면 두 번의 심장 박동(펌프질)을 받아야 한다. 한 번은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폐로 가는 것이고, 거기서 한 번 더 펌프질을 받아 몸 구석구석으로 가게 된다.
(1) 한 번의 심장 박동이 끝나면, 좌심방은 폐에서 온 산소가 풍부한 혈액으로 가득 차고, 우심방은 몸에서 온 산소가 부족한 혈액으로 가득 찬다. (2) 심방과 심실을 연결하는 판막이 열리고 혈액이 심실로 들어간다. 0.5초쯤 지난 후에 심방이 수축하면서 혈액을 아래 심실로 밀어 보낸다. (3) 심방이 수축하고 나면, 심실도 그 뒤를 따라 수축한다. 그러면 심방과 심실 사이에 있는 판막이 닫히고, 심실과 동맥 사이에 있는 반달 모양의 판막이 열리면서 혈액을 심장 밖으로 내보낸다.
보통 사람의 심장은 1분에 70회 정도 뛴다. 또한, 보통 사람은 평생 심장이 25억 번 뛰고, 각 심실에서 150만 L의 혈액을 내보낸다. 심장 박동의 조절은 신경 자극을 통해 일어난다. 심장 박동은 필요에 따라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혈액은 심장에서 펌프질하는 힘을 받아 동맥을 통해 폐와 온몸으로 나아간다. 모세혈관에서 혈장 속에 있던 영양물질과 산소가 조직으로 들어간다. 세포 속에 있는 일부 물은 림프계로 간 다음, 거기서 다시 혈액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정맥에서 혈액이 심장을 향하여 나아가는 데에는 주변 근육들의 도움도 필요하다. 정맥 내 판막은 혈액이 역류하는 것을 막아준다.
대동맥은 산소가 많은 피가 심장에서 온몸으로 나가는 굵은 혈관이고, 대정맥은 산소가 적은 피가 온몸에서 심장으로 들어오는 굵은 혈관이다. 폐동맥은 산소를 공급받으러 심장에서 폐로 가는 혈관이고, 폐정맥은 폐에서 산소를 공급받고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다. 모세혈관은 동맥과 정맥을 잇고 조직 속에 그물 모양으로 퍼져 있는 가는 혈관이며, 모세혈관에서 온몸의 조직에 산소와 영양물질을 공급하고, 조직 사이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와 노폐물을 수거한다.
바르바라 갈라보티(저), 이충호(역). 사람의 몸. 사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