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메다 님, 지상적 시각이란 시인이 현실적 가치관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다보는 시각입니다. 시인이 대상과의 관계를 현실적으로 설정하는 태도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상이 시인의 현실적인 삶에 얼마만큼 유용한가 혹은 유해한가를 따지는 자세입니다. 그리하여 유용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을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자세로 수용하고 유해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을 적대적이고 부정적인 자세로 거부하게 됩니다. 한편 이와는 달리 대상을 비판적인 자세로 수용하는 경우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선 대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시를 보도록 하십시다.
가) 긍정적인 자세(=화해의 시)
대상 곧 객체가 주체의 욕망 성취에 기여한다고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이때 주체와 객체의 융화가 이루어지며 성취감과 함께 주체의 심리적인 만족― 곧 화평에 이르게 됩니다. 대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화해의 세계가 열리게 됩니다.
[예시1] 여자대학은 크림빛 건물이었다. 구두창에 붙는 진흙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알맞게 숨이 차는 언덕길 끝은 파릇한 보리밭― 어디서 軟式庭球(연식정구)의 흰 공 퉁기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뻐꾸기가 울기엔 아직 철이 일렀지만 언덕 위에선, 신입생들이 노고지리처럼 재잘거리고 있었다. ―김종길「春泥(춘니)」 전문
[예시1]에 등장한 대상들은 다 시적 화자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 주고 있는 정감어린 것들입니다. 크림 빛 대학 건물, 파릇한 보리밭, 연식정구의 경쾌한 공 소리, 여학생들의 즐거운 재잘거림―이 모든 것들이 화자와 화해의 관계에 놓여 있습니다. 숨이 찬 언덕길조차도 화자에게 갈등의 대상이 아니라 화해의 대상으로 설정되고 있습니다. 아니, 신발에 자꾸 달라붙는 진흙조차도 여기서는 귀찮은 대상이 아닙니다. 시의 제목을 <춘니(春泥)>로 잡은 시인의 애정에서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주체와 객체 사이에 어떠한 불화나 알력도 없습니다. 대상과의 화평만이 있을 뿐입니다.
나) 부정적인 자세(=갈등의 시)
'갈등의 시'는 객체와 주체의 불화에서 빚어집니다. 객체[세계]가 주체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정복할 수 없는 막강한 대상이거나 주체의 기대와는 거리가 먼 혐오의 대상일 경우에 갈등이 생깁니다. 말하자면 객체가 주체를 압도하거나 장애물로 인식될 경우 갈등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경우는 다시 두 가지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객체에 눌려 자아가 위축되는 경우와 객체에 맞서 자아가 반발하는 경우입니다.
ㄱ) 위축의 시
객체와의 갈등 관계에서 자아성취가 실현되지 못한 경우 비관적 염세적인 작품이 만들어집니다.
[예시2]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 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질정(質定)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천하(天下)에 많은 할 말이, 천상(天上)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 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박재삼「밤바다에서」전문
[예시2] 속에 등장한 주 대상은 '누님'입니다. 누님은 시적 화자가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물입니다. 그러나 그 대상은 주체[화자 혹은 시인]가 접근하기에는 너무 먼 슬픔 속에 잠겨 있습니다. 누님은 지금 내 존재 같은 것엔 전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하늘의 달빛[누님]이나 받아 반짝이는 밤물결[나]처럼 수동적이고 비극적인 자세로 위축되어 울고 있는 것입니다. 난관을 극복하여 소망을 실현시켜 보겠다는 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화자가 체념의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와는 달리 기원(祈願)을 통해 객체의 위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시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ㄴ) 반발의 시
적극적인 성격의 주체인 경우는 객체와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 저항적인 혹은 선동적인 자세로 반발합니다.
[예시3] 이유는 없다― 나가다오 너희들 다 나가다오 너희들 美國人과 蘇聯人은 하루바삐 나가다오 말갛게 행주질한 비어홀의 카운터에 돈을 거둬들인 카운터 위에 寂寞이 오듯이 革命이 끝나고 또 시작되고 革命이 끝나고 또 시작되는 것은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고 돈을 내면 또 거둬들이는 夕陽에 비쳐 눈부신 카운터같기도 한 것이니 ―김수영「가다오 나가다오」부분
[예시4] 내 사랑하는 아우들아 이 나라의 호국의 함성들아 우리는 이긴다. 일찍이 불의와 사악이 망하지 않은 역사를 본 적이 있느냐 늬들 뒤에는 혈육을 같이 나눈 우리들이 있고 이상을 함께하는 만방의 깃발이 뭉치어 있다. ――― 이기도 돌아오라 이기고 돌아오라 우리들 가슴을 벌리고 기다린다. 하늘이 보내시는 너, 구국의 천사들. ―조지훈「이기고 돌아오라」부분
[예시3]에서의 갈등의 대상은 미국인과 소련인 곧 막강한 국력을 지닌 강대국들입니다. 화자는 이들로 말미암아 국토가 침탈을 당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축출하고자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이유는 없다'고 말하지만 이유 같은 것은 새삼스럽게 말하고 싶지도 않다는 역설적인 표현일 수 있습니다. 서릿발 돋은 저항적인 절규인 것입니다. [예시4]는 갈등의 대상이 전쟁[敵]입니다. 주체는 그의 공조자인 병사들을 일선으로 출정시키며 선동적으로 사기를 고무시키고 있습니다. 앞에 제시한 저항과 선동 이외에도 결의(決意), 고발(告發), 격려(激勵) 등의 성향을 지닌 작품들도 반발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 비판적인 자세(=풍자의 시)
'갈등의 시'는 객체가 주체를 제압하는 경우에 생산된 것이라고 한다면 '풍자의 시'는 주체가 객체를 제압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가 대상 위에 군림하여 이를 비판하거나 꼬집습니다.
[예시5] 카드 섹션을 벌이는 스탠드의 군중처럼 스크럼을 짜고 어깨에 어깨를 메고 등으로 온 힘을 받는 축대의 돌들은
자신이 받드는 전각을 한 개의 우주라고 생각하지만 그는 모른다 인간의 힘이 얼마나 덧없이 허물어지는가를,
얼마나 덧없이 그 화려한 카드 섹션이 사라지는가는 축제 뒤에 흩어지는 군중을 쓸쓸히 지켜보는 자만이 안다.
한 발 재겨디딜 틈도 없는 벼랑에서 온몸으로 받치고 선 축대의 돌들이여, 계곡물에 뒹구는 바위들을 보아라.
돌은 홀로 있음으로 돌인 것이다. ―오세영「홀로 견디는 돌」전문
사물의 존재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개체가 지닌 특성 곧 개성을 통해 다른 사물과의 변별성을 드러내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것은 개성의 존중이 아닙니다. 개체는 어떤 제도나 목적을 위해 획일화, 조직화 혹은 규범화되고 말았습니다. [예시5]에서 시적 화자가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렇게 개성을 말살하고 있는 제반 문화 양상입니다. 시인[주체]은 이처럼 부조리한 문화 구조[객체]를 초연한 자세로 바라다보면서 비평을 가하고 있습니다. 주체가 객체를 제압하는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작품이 풍자적이거나 교훈적인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