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285) / 독일
마울브론 수도원 지구(Maulbronn Monastery Complex; 1993)
1147년에 건립한 시토 수도회의 마울브론 수도원은 바덴뷔르템베르크 주[State of Baden-Wurttemberg] 엔츠 지역[District of Enz]에 위치하며, 알프스 북부 지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수도원 지구이다. 요새화된 벽 안쪽에 건축된 주요 건물은 12~16세기에 건설하였다. 수도원 교회는 주로 과도기의 고딕 양식으로 지었는데 북부와 중부 유럽 고딕 양식 건축의 전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정교한 배수 시설, 관개 수로 및 저수지 등을 갖춘 마울브론의 용수 관리 시스템은 매우 뛰어나다.
시토회 수도회의 마울브론 수도원은 알프스 북부 지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중세 수도원 지구이다. 과도기적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으로 지은 마울브론 교회는 북부와 중부 유럽의 고딕 양식 건축물이 전파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마울브론의 용수 관리 시스템으로는 정교한 배수 시설, 관개 수로와 저수지가 있는데 이 시스템은 매우 훌륭한 것으로 평가된다. 에켄바이어(Eckenweiher)에 새로운 수도원을 세우지 못하게 되자 슈파이어 주교는 자신이 소유한 잘자흐(Salzach) 계곡의 토지를 노이부르크[알자스]의 시토 수도원장 디터(Dieter)가 이끄는 수도사 12명이 결성한 공동체에 기부하였다. 이들은 교황청의 보호 아래 1147년 이곳에서 마울브론 수도원을 짓기 시작하였다. 9년 뒤에 마울브론 수도원은 프레드릭 바바로사(Frederick Barbarossa) 황제 주도로 신성로마제국의 직접적인 보호 아래 들어갔다. 교회는 1178년에 완공되었으며, 슈파이어 주교 아르놀트(Arnold)가 이끌었다. 다음 세기 동안 수도사 공동체의 임시 목조 건물들은 점차 석재로 재건되었다. 종교개혁의 큰 혼란을 마울브론 수도원도 피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때가 이 수도원에서 최악의 시기는 아니었다. 마울브론 수도원은 이 불안정한 기간에 두 번이나 약탈을 당하였다. 그로부터 30년 뒤인 1504년에 뷔르템베르크(Wurttemberg)의 울리히(Ulrich) 공작은 이곳을 점령하여 개혁하고 세속화하였다. 황제 찰스 5세(Charles V)는 1547년에 수도원을 시토회에 돌려주었다. 1556년 뷔르템베르크 공작 크리스토프(Christoph)가 개편하여 개신교 신학교를 설립하면서 개인 소유자들이 건물 일부를 보유할 수 있게 하였다. 30년 전쟁 기간인 1630년에 막시밀리안(Maximilian) 황제가 마울브론 수도원을 다시 시토회에 돌려주었다. 3년 뒤에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 평화 조약에 따라 개신교 건물이 되었다. 뷔르템베르크의 왕 프리드리히 1세는 1806년 교회 재산 전체를 세속화하였다. 그 다음 해에 이곳은 개신교 신학교가 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마울브론 수도원의 건축적 조화는 12~16세기 시토 수도회 시기의 발달과 세속화, 개신교에서 사용하면서 받은 영향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방어 시설에 둘러싸이고 도시 외곽에 자리한 덕분에 수도원은 도시와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다. 교회는 전형적인 1세대 시토 수도회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2층으로 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네이브(nave)와 직사각형 예배당이 3개 있는 낮은 트랜셉트(transept)로 연결되는 맨 안쪽 구역이 그 예이다. 수도사와 평신도는 석재 칸막이로 나뉜다. 1424년에 기존의 목조 서까래를 교체하며 만든 고딕 양식의 아치형 천장은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St Bernard of Clairvaux]가 살아 있는 동안 실행한 엄격한 공간적 분화를 변형시켰다. 이는 히르사우(Hirsau) 지역의 로마네스크 양식적 전통을 금욕과 극기를 강조하는 시토 수도회의 요건에 접목한 것이다. 방어 시설은 내벽을 둔 벽으로 이루어졌는데 두 벽 사이에는 감시소가 있다. 현재 모습은 13~15세기에 만들어졌다. 옛 수도원 별채에는 석재로 틀을 짠 건물과 목재로 뼈대를 세운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목조 건물은 대개 16~18세기에 지었는데도 중세 건물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고 있다. 중심부의 기본적인 중세적 배치와 구조는 시토 수도회의 전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데 실질적으로 완전한 상태이다. 13세기에 세운 건물들은 과도기적 양식인데 독일에서는 이에 자극 받아 고딕 양식의 건축이 발달하였다. 수도사 식당과 평신도 기숙사는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 신학교로 사용하려고 변경하였다.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지역에는 수도원 건설 이후 세워진 건물이 몇 채 있는데 대부분 회반죽을 칠한 석조 건물이다. 이 건물 가운데 뷔르템베르크 공작 루트비히가 예전에 사용한 사냥용 오두막과 마구간은 르네상스 요소로 설계・장식되었다. 마울브론 수도원 지대는 시토 수도회 교단이 수리 공학 분야에서 이룩한 괄목할 혁신을 보여준다. 저수지, 관개 수로, 정교한 배수구 시스템은 공동체 용수 제공, 양어장, 농지 관개 등 광범위하게 이용하였다. 수도원의 토지 보유가 세속화된 19세기 이후 이 시스템은 크게 변하여 몇몇 저수지는 배수되었고 마울브론 도시도 확장되었다 |
첫댓글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