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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겨울판화(박윤배)
어둠은 꽃봉오리 같고
김남이
돌에 걸려 넘어졌다
어쩌다가 돌에 다가갔냐고 다들 혀를 찼지만
선택하기 전에 이미 닿아 있는 일도 있다
내 몸에 붙어 다니던 그림자가 나를 데려간 날
그는 어둠 덩어리였다
어둠은 기다림 가득한 바구니 같고
어둠은 오래 엎드려 울고 있는 사람 같고
어둠은 지나온 길 굽이굽이 알 수 없어서
내 그림자를 가만히 포개보고 싶었다
돌 구석구석 고인 쓸쓸함을 만져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 조바심만 덜컹거릴 뿐
어둠은 좀처럼 흘러내리지 않고
이쪽의 그림자까지 뭉쳐 더 단단해졌다
나는 결국 내 그림자에 걸려 넘어졌지만
아직도 저 돌은 꿈틀 깨어날 애벌레 같고
어둠은 곧 피어날 꽃봉오리 같고
◇김남이= 경북 상주 출생. 2011년 ‘농민신문’신춘문예 등단. 시집 ‘상처는 별의 이마로 가려야지’.
<해설> 돌에 걸려 넘어졌다고 시인은 말하지만, 타자가 아닌 자신이 이미 닿아 있다는 자책을 통해 시인은 어둠을 부정이 아닌 긍정으로 돌려놓는다. “오래 엎드려 울고 있는 사람 같고 / 어둠은 지나온 길 굽이굽이 알 수 없어서 / 내 그림자를 가만히 포개보고 싶었다”는 결국 어둠조차도 껴안으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을 고스란히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그는 꽃이다. 어둠을 안으로 삼키고 피는 그런 꽃이다. 존재론적인 탐색을 게을리 하지 않는 시인도 자신이 그런 꽃인 걸 알고 있나보다. -박윤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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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