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맞아 아내와 딸을 대동하고 내 고향 달성 논공 위천 그곳을 찾았습니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고 어른 세대들이 거의 사라져 가는 현실에서 고향땅도 이젠 저에게 낯선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내 유년의 추억을 온몸으로 안고 오랜 세월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고향 마을의 골목 골목이 정말 변함이 없이 그저 묵은 그림자 하나쯤 걸쳐 있을 뿐인데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올 때마다 그렇게 반겨주던 마을회관의 어르신들이 이젠 보이지 않습니다. 회관에 모두 모여 큰절을 받아주시던 아지매 아재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들 어디론가 가버린 듯한 공허함에 고향의 하늘과 산을 몇 번이나 둘러 봅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많이 놀았던 앞산 공터에 오르려니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섰습니다. 허허벌판 같은 그 민둥산에서 우린 방학 내내 축구하고 놀았지요. 민둥산도 이젠 사라지고 밀림처럼 컴컴하니 나를 맞이하네요. 가끔 부산에서 회를 사서 택배로 보내면 그 빈박스를 회관 시렁 위에 전시해 놓고 오는 사람들마다 "부산에서 최동장 둘째 아들이 우리 먹으로고 회를 보냈다."고 그렇게 당신의 자식들처럼 자랑해 주던 어르신들이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요양병원에 가신 분, 거동이 불편하여 외출을 못하는 어른, 심각한 질병으로 병원에 장기 입원하거나, 사람을 전혀 알아보지 못해 그냥 무의미하게 웃는 사람들로 변해 가버린 것입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제가 오면 회관에서 그렇게 반겨주던 아짐매들이 계시지 않으니 너무나 허전합니다. 어디로 가셨는지 물어보기도 어렵습니다. 부산에 가면 잘 살아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면서 우리 어머니 대신 눈물을 훔치던 아지매가 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내가 살던 그 옛집은 이젠 주인이 바뀌어 현대식 고급 주택으로 나를 맞아줍니다. 온동네 아이들이 모여 밤늦게까지 뛰놀던 길을 걸어보니 괜시리 눈물이 날 듯합니다.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저멀리 걸미짜 고개 너머로 슬며시 돌아가는 겨울해도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저 고개로 겨울방학 내내 나무하러 다니던 기억도 뚜렷한데, 여름방학 내내 동네 소를 모두 모아 풀을 뜯기고 우린 닭싸움, 씨름, 기마전 등으로 저녁이 되면 하루종일 배부르게 먹고 게으른 하품을 하던 소들을 몰고 나란히 내려오던 기억도 아직 그대로인데 나만 혼자 그 추억 속으로 들어가 나올 줄을 몰랐습니다.
회관 뒤에 있는 유명한 눕은 소나무도 많이 늙었습니다. 전깃불도 없던 시절 보름달이 휘영청 뜨면 그곳에 모여 형들과 편을 나누어 여러 가지 놀이하던 때도 떠오릅니다. 가끔은 저를 앞에 세워 옛날 얘기해 달라고 조르던 선후배들도 생각납니다. 그들보다 책을 좀 읽은 덕에 여러 가지 사건을 섞은 조선 시대 역사 이야기를 곧잘 하였지요. 모두들 재미있어 하면서 저를 칭찬해 주면 어린 제 마음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 형들이 이젠 60을 넘어 일흔을 내다보는 세대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형수님들이 할머니가 되다니, 시집올 때 그렇게 곱던 형수님들이 완전히 할머니가 되어 나의 등짝을 어루만지면서 " 아이고 아지매가 살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아했겠노 그쟈?" 저를 위로합니다. 우리 어머닌들 지금 살아 있다고 해도 90을 바라볼 터이니 또한 돌아가실 때가 되었겠지요. 아지매들과 형수들에게 느끼는 정서는 천양지차이긴 하지만 이젠 형수님들에게서 그 옛날 아지매들 느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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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주택과 사람들이 보입니다. 자연은 그대로이지만 우리 추억이 가득한 몇 곳은 공장이 세워지면서 아름다운 기억이 서린 그곳이 전혀 딴 세상이 되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있넌 그 역사 깊은 우물은 바로 옆에 공장이 들어서면서 아예 없어졌습니다. 고향 마을을 찾을 때마다 그 우물의 물을 한 바가지 얻어먹으면서 옛추억에 저던 일은 이제 사치가 되어 버린 듯합니다. 우물에서 빨래하든가, 채소라도 씻던 아지매들이 내가 들이키는 바가지 물을 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짓던 일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비록 부모님이 계시진 않지만 그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나를 사랑해준 어른들이 계심에 고향마을은 늘 포근하였습니다. 이젠 아무 것도 없습니다. 아직도 시골을 지키고 계시는 형님 한 분과 전화로 긴 시간을 얘기하였습니다. 얘기 도중에 "단장술"이 나옵니다. 옛날 우리 시골은 잔치를 하면 밤새도록 손님을 대접합니다. 그리고 동네 형들은 그날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 곳에 모여 사람을 잔칫집에 보내 음식을 부탁합니다. " 막걸리 4되, 찌짐 ,떡, 오징어, 고기 등" 목록을 적어 사람을 보내면 잔칫집의 일을 해주는 아지매가 넉넉하게 음식을 담아 줍니다. 정말 아름다운 풍습이었지요. 그런데 그 심부름을 제가 유난히 많이 했습니다. 우리 또래가 여럿 있어도 꼭 저를 보냅니다. 그리고 제가 갈 때는 그 목록을 적어주지 않습니다. 그냥 저를 보내면서 한 사람을 딸려 보냅니다. 저도 그 심부름을 거절하지 않고 하루 밤에 몇 번이나 뛰어갔지요. 이번에 고향 방문에서 만난 형님께 물었지요. " 형님! 단장술 심부름 보낼 때 왜 저를 많이 보냈습니까? 그리고 저는 왜 목록을 적어주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논공띠기 아지매는 묻지도 않고 음식을 많이 주긴 했지요" 전화를 듣던 그 형님이 한 말씀 하십니다.
저를 보낸 것은 아지매들이 저를 유난히 이뻐해서 그랬답니다. 다른 아이들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반면에 저는 그래도 고등학교 대학 가려고 공부를 조금 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 특히 형수님들께 많이 베풀어서 그렇답니다. 어린 시절 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기억은 아직도 아련한데, 단장술 추억에 그런 배경이 있었던 것은 몰랐지요. 결국 제 자랑이 되는 듯하지만 이젠 그런 자랑도 접할 수 있는 어르신들이 계시지 않아 이번 설날 고향 방문은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좀더 자주 왔어야 하는데, 그 옛날 부모님이 돌아기시기 전 유언으로 한 말씀 중에 하나가 고향 어른들 한번이다로 더 찾아뵈어라고 하셨는데, 이젠 어렵게 되었습니다. 겨울답지 않게 날씨가 포근하 고향마을을 설날, 하늘도 산도 강도 온통 푸른데 어른들은 저 아득한 검은 세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회색빛 감도는 세상에서 자신의 인지 능력도 없이 안타까운 시간만 보내고 있어서 정말 아득합니다. 언젠가 나도 가야할 길을 우리 어르신들이 단지 먼저 가신 것에 불과하겠지요. 그렇게 애달아 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래도 너무나 아쉽습니다.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3km 이상 걸리는 등하교길 특히 하교길은 늘 배가 고팠습니다. 길가에 농삿일을 하는 동네 아지매들이 나를 불러서 뭔가를 먹이려고 하였던 기억도 뇌리에 선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왜 저에게 그렇게 우호적이었는지는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 듯합니다. 제가 잘 나서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의 은덕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설날을 맞아 예전 같지 않은 고향에서 부산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에 잠겨 봅니다. 사람의 삶은 한번은 가야 하는 것이지만 살아 있을 때 상대를 더 귀하게 생각하고 한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살아계시는 부모님의 손을 한 번이라도 더 잡아드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저의 손을 유난히 잘 잡았습니다. 제 기억에도 저를 많이 껴안아 주셨습니다. 보리밭을 함께 맬 때도 몇 번이나 저를 돌아보십니다. 그리고 부지런히 김을 매면서도 제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셨지요.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어머니께 이야기를 해드리는 것이 더욱 좋았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이야기도 좋아하셨기 때문이지요. 들에 일할 때도 곡 저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머니가 저에게 일을 많이 시켜도 제 기억에 제가 싫다고 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품속이 너무 일찍 떠난 것 같습니다. 이젠 결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공간의 너머 세상에서 어르신들이 남겨주셨던 추억의 모든 것을 제 가슴에 담아두렵니다. 설날단상입니다.
첫댓글 어른들이 그리되시고 알아보는 어른들 안계셔도 잊지않고 찾아가는 우리 회장님..국어샘 다운 설날 단상이 글로 표현된 아름다운 그림 같습니다
고향에 아내와 딸과. .
이그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행복합니다.
사람들은
세월속에 묻혀가도 고향은 언제나 가슴에 있겠지요..
아릿하고 따사로운 고향이바구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설날 특선영화 한 편 잘 보고 갑니다~
아름답고 예쁜그림이 그려지는 감동~^^♥
가끔 회장님의 어린시절 얘기를 들으면 시골 경험이 없는 저는
저절로 그 풍경속에 상상의 시간을 가져봅니다..이 글을 쓰는 동안
행복한 추억속에 머물며 얼마나 그 때를 그리워했을지..고향소식 잘 들었습니다~^^
회장님의 고향소식에 제고향이 겹쳐져 눈가에 아련하네요. 우리가 초중학교 다니던길. 학교옆이 바로 장항선 기찻길. 농업고등학교와 같이있던 관계로 논에나가 벼베기. 그때는 .유난히 자주나갔던 송충이잡기. 회장님의 그 고향모습에 저의 어릴적 모습이 눈에 선해서 눈시울이 올라옵니다. 회장님 고향이야기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