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들은 녹록치 않은, 그저 이럭저럭 평온한 일상을 지내고 있었을지라도 대한민국은 건재하는 듯했다.
헌데 누군가는 몇달 전부터 계엄을 거론하고 이리저리 나라를 엎을 궁리만 하였나 보다.
뜬금없는 게엄 선포로 국민을 옥죄고 겁박을 하여 심리적, 육체적 나락을 경험하도록 하였으니
이게 도대체 나랏님이 할 일 이던가 말이다.
2024년 12월...한 해를 갈무리 할 즈음에 별안간 계엄, 내란, 탄핵은 국민을 지키고자 애쓴 일부 국회의원들과
그 추위 속에도 일편단심으로 탄핵을 외치던 애국시민에 의해 소멸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랏님을 위해 해바라기 중이며 당리당략에 매몰된 채 오로지 국민의 짐이 되어버린 여당의 어리석은 결정은
아마도 오랫동안 저잣거리에서 회자될 것이다.
이쯤에서 탄핵시위 조차도 트랜드 문화로 탈바꿈 시키며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자신들의 미래를 책임지고 싶었던 MZ 세대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직 정신 못차리고 엉뚱한 구호를 외치는 광화문 네거리를 보면서는 울화가 치민다.
여전히 제 밥그릇에 연연하는 여당 위정자들의 못난 행태에는 분노가 일지만
국민의 민심을 우습게 아는 따라지들이 워낙 많은고로 그저 그밥에 그나물은 어쩔 수 없지 싶다.
나라가 위태하거늘 제 밥그릇만 중한 저들은 언제 정신을 차릴까나 싶고
뒷전에 숨어 있던 잠룡들은 혹시나 싶어 몸을 푼단다...에효
와중에 나라의 국격을 드높인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이 있어 옮겨왔다.
그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리는 듯하다.
■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 전문 / 한강
폐하, 왕실 전하, 신사 숙녀 여러분.
제가 여덟 살이던 날을 기억합니다.
오후 주산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비가 너무 세차게 내리자 20여 명의 아이들이 건물 처마 밑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길 건너편에도 비슷한 건물이 있었는데,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처마 밑에 또 다른 작은 군중이 보였습니다.
쏟아지는 빗줄기, 제 팔과 종아리를 적시는 습기를 보면서 문득 깨달았습니다.
저와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이 모든 사람들,
그리고 건너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로 살아가고 있었다는 것을요.
저와 마찬가지로 그들 모두 이 비를 보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에 촉촉이 젖은 비를 그들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1인칭 시점을 경험하는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고 쓰면서 보낸 시간을 되돌아보니 이 경이로운 순간이 몇 번이고 되살아났습니다.
언어의 실을 따라 또 다른 마음 속 깊이로 들어가 또 다른 내면과의 만남.
가장 중요하고 긴급한 질문을 실에 매달아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
그 실을 믿고 다른 자아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알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 고통과 사랑이 존재하는 이유.
이러한 질문은 수천 년 동안 문학이 던져온 질문이며,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가장 어두운 밤, 우리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묻는 언어,
이 지구에 사는 사람들과 생명체의 일인칭 시점으로 상상하는 언어,
우리를 서로 연결해주는 언어가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를 다루는 문학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체온을 지니고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작업은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문학을 위한 이 상이 주는 의미를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EWW-bqY6v18?si=G9JWnL2UiBlBrXcb
첫댓글 K컬처가 더욱 꽃 피기를~!
잠시 주춤할 지금의 상황이 지나고 나면 더더욱 풍성하게 무르익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