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 외 2편
석민재
1
강둑에 앉아 낚시하다가
뭐라도 걸리면
우쭐해서
식구들에게 자랑하며 나눠 먹고 자랐는데
물고기를 실컷 잡아 놓고
풀어 주는 사람이
친구 하자고 다가오면
영 거슬린다 낚시를 재미로 하는 것이
2
수도를 틀어
숭어를 씻는데
주둥이를 씻고 있는데
돈 받으러 온 남자가 수도꼭지를 잠근다
빚은 빚인데
숭어와 물을 들고 간다
석류와 석류
씨 하나가 말 한 마디씩 다 해야 석류 머리 터진다네
아홉 번째 열두 번째 씨앗도
오늘내일 오늘내일 오지 않는 미래가 궁금하고
하나같이
울며 왔다 울며 가는 사람
살아 움직이는 것은 원수처럼 붙어 서로를 오염시킨다네
알 알 알
이 세계는 단단하지 않다네
죽지 않을 만큼 쑤셔 박힌 폭탄
쩌억
벌리고 앉은 아저씨가
사람들이 비웃는
이유를 모르고 계속 가듯
이 붉음은 한 목소리가 아니라네
하나의 역사 하나의 사연 하나의 중심 이건 싫다네
잠가 닫아
우리 위해 기도해도 아무것도 돌아오는 게 없듯
함께 햇볕 받고 자라도
우리 안의
근심이 모두 달라
천 가지의 표정과 한 가지의 얼굴과
같은 죄로 묶을 수 없다네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될 수 없다네
너는
여자라서
빨강이 아니라서
알몸으로
조용한 모과 옆에 툭,
옳지
서정 없어도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으로
지구를
동네를
석류는 오로지 터지는 것이 목표이며
일인이거나
일당백이거나
골방에서 피를 나눈 형제니
자매니
근친상간이니
울고 싶은 대로 울었다
1
물소리가
벽지 뜯는 소리가
문턱에 있던
흰 실 한 가닥이
생각났다
사과 한 알이 아이 머리 쓰다듬듯
닦고 있었다
우린
너무 긴장하고 살아서 그래요
2.
사과를 쪼개는 일보다
물병 뚜껑을 여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3
이름이란,
어디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구름이
자기 그림자를 거두어 가듯
무릎까지 쌓이는 소리에
발이 푹 빠졌다
들지도 놓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늘었다
4
하얀 천과 하얀 색연필
무명으로 지은 베개에 머리 얹고 자면
아픈 데가 없어진다고 믿었다
사람들이 흩어진 후에
울고 싶은 대로 울었다
내가
입 다물면
돌이 소리 지를 것 같았다
― 『그래, 라일락』 (시인의일요일 / 2023)
석민재
2015년 《시와사상》, 2017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엄마는 나를 또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