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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罪)가 뭐요?
(양의섭 목사)
(마 1: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가 그의 백성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우리말 성경]
1. 오늘 아침엔 마음 속 뻥하고 뚫리는 찬송 한 장 부르고 시작합시다.
257장! 1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 지극히 화평한 맘으로 찬송을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2 금이나 은같이 없어질 보배로 속죄함 받은것 아니오 거룩한 하나님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3 나같은 죄인이 용서함 받아서 주앞에 옳다함 얻음은 확실히 믿기는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4 거룩한 천국에 올라간 후에도 넘치는 은혜의 찬송을 기쁘게 부름은 어린양 예수의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후렴) 속죄함 속죄함 주 예수 내 죄를 속했네 할렐루야 소리를 합하여 함께 찬송하세 그 피로 속죄함 얻었네 이왕 부르는 찬송, 한 장 더합시다.
259장! 1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희게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 의지하는가 2 주 예수와 밤낮으로 늘 함께 그대는 행동을 하는가 아무 때나 어디서나 그대는 십자가 붙들고 있는가 3 주님 예수 다시올 때 그대는 영접할 예복이 있는가 그대 몸은 거룩한 곳 천국에 들어갈 준비가 됐는가 4 모든 죄에 더러워진 예복을 주앞에 지금 다 벗어서 샘물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씻으라 (후렴)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여러분은 정말 죄의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마음 속의 여러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했는데 정말인가요? 롬 3:23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못 갑니다. 아무리 기를 써도 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못 갑니다. 그곳엔 죄인이 없습니다.
2. 그렇다면 죄가 뭔가요?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하자, 어느 할머니가 그럽니다. “목사님, 나는 매일 집에만 혼자 있어서 죄 지을 일이 없는데 어떡하지요?” 그래요, 죄가 뭔가요? 혼자 사는 사람은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인가요? 죄를 말하면 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것만 생각하는 이들이 허다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가 과연 그것인가요?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도덕책이요, 윤리 교과서 인가요? 우리 한글 성경에서 ‘죄’라고 번역된 헬라어 단어들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단어들이 사용되었는데, 그 다양한 죄에 대한 단어들 중 몇 가지만 살펴봅시다.
1) 파라바시스(parabasi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뜻은 ‘범하다, 침범하다’란 뜻입니다. 뭘 범한다는 것일까요? 파라바시스, 이 단어엔 율법이 전제되어 있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란 법이 주어져서 그 법률에 의해 죄라는 것이 규정되는 것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율법이 주어진 것은 언제인가요? 모세 때입니다. 그러면 모세 이전에는 죄라는 것이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 이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양심을 통하여, 부모의 가르침을 통하여 주신 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범하는 것을 파라바시스, 죄라고 합니다.
몇 년 전, 기업은행 방배동 지점 창구에 40대 중반의 한 아주머니가 조심스레 다가와 “이것 좀 나중에 처리해 주세요.”하곤 가버렸습니다. 제법 두툼한 봉투를 받은 직원은 설문 조사 서류려니 생각하고, 하루 마감이 끝난 후에 열어보았더니 현금 20만원과 함께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한 3,4년 전쯤 되었어요. 현금 인출기 앞에서 10만원을 주웠는데 그 때는 생각 없이 그냥 가져다 썼습니다.
그 후 언젠가부터 마음에 걸려 은행에 말씀드리려 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오늘에야 행동에 옮기게 됐습니다. 은행 측에서 처리해 주세요.” 누가 뭐라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아주머니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두 배로 돈을 모아 은행에 갖다 준 것입니다. 파라바시스, 세상 법이 아닌 하나님의 절대 법에 양심이 걸려 죄의식을 갖고 살다가 회개한 것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죄에 대해서 여러분은 과연 양심의 자유를 얻고 있습니까?
2) 다음에 볼 수 있는 죄라는 의미의 단어는 아노미아(anomia)가 있습니다.
부정 접두어 a와 법이란 단어 nomos가 합쳐진 것으로 불법, 범법, 즉 이미 구체적으로 주어진 법을 침범하거나 경멸한다는 뜻으로 법을 거스른 사람의 행위 혹은 상태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마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이비 일군들을 향해 하신 말씀에 이 단어가 있습니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능력을 행하는 등 엄청난 주의 일을 했다고 하지만, 주어진 주의 법도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꿩 잡는 게 매라고 그런 식으로 산 사람을 향한 주님의 책망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법이 있습니다. 이 법을 따라가지 않고 제 멋대로 산 것, 그거 죄입니다. 아무리 성공했어도, 아무리 유명해 졌어도 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죄입니다! 치열한 선거전을 통해 마침내 당선이 되었어도 법을 지키지 않았다면 무효가 됩니다! 이게 불법, 아노미아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13:41-42) 불법을 행하는 자들, 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하는 자들을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는 엄한 심판의 말씀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인이 사회 규범을 어기어 교도소에 수감되어 면회를 갔습니다. ‘교도소 생활이 힘드시지요? 얼마나 낯설겠어요.’했더니 이 분이 그러더랍니다. “목사님,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제가 있는 방에 7명이 있는데요, 2명은 개신교 신자고요, 3명은 천주교 신자에요. 불신자는 2명밖에 없어서 외롭지 않아요. 마치 교회 구역 같아요.” 그 말을 듣고 목사님은 뒤집어졌답니다. 세상에서 빛이 되십시오! 정직하십시오! 사회법을 준수하십시오! 더 나아가 하나님의 법을 지키십시오!
3) 우리가 또 중시해 보아야 하는 죄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파라코에(parakoe), 이 단어는 경청하지 않은 결과 자기 스스로 불순종한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청종하지 않은 것, 듣지 않은 것을 뜻하는 데, 이미 죄를 범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렘 11:10절, “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으로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따라 섬겼은즉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깨뜨렸도다.”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래서 짓는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데 딴 전을 피우는 것, 죄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렬하고도 정직한 시도가 결핍되면 그것은 곧 성경이 말하는 죄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설교 시간에 습관적으로 조는 것, 듣지 않으려고 딴 생각하는 것, 그거 죄입니다. 조는 것은 졸게 만든 설교자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만 보니 조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더라구요. 온 힘을 다해 설교를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데, 설교가 시작되면 언제 끝나려나 싶어 귀를 닫습니다. 죄입니다! 예배와 설교 시간에 무심코 스마트 폰에 손이 가는 것, 파라코에! 죄입니다. 들으려고 하는 자세, 그런 노력이 필요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도 죽을힘을 다 해 잘 준비하고 전해야 하지만, 듣는 성도들도 집중하여 말씀을 들으려 해야 합니다. ‘목사님, 오늘 한번 나를 감동시켜 보이소. 내 한번 들어보지요’하는 자세는 파라코에, 죄입니다.
4) 또 다른 죄가 있습니다.
참 난처하고도 골치 아픈 죄입니다. 아그노에마(agnoema)란 죄입니다. 이 말은 “무지하다, 이해하지 못하다, 몰라서 죄를 짓다.”는 뜻입니다. 즉 무지(無知)하여 짓는 경우입니다. 죄인 줄 모르고 지은 것입니다. 그렇다고 죄가 아닐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물론 이 죄의 경우는 용서를 가능케 하는 요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죄는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눅 12:47-48a) 어쨌건 맞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상에서 이렇게 간구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눅23:34) 비록 모르고 하는 짓이지만, 그것조차 하나님께서 노하실 죄이기에 주님께서는 그 힘든 십자가 상에서 그들을 위해 간구하신 것입니다.
한 중국인이 선교사에 의해 전도를 받아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학을 더 공부하여 목사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우들에게 인사를 하고, 미국 비자를 얻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혈액 검사에서 매독 균이 발견되어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 제멋대로 세상에서 살 때 좋지 않은 곳에 몇 번 다닌 적이 있는데, 그 때 걸린 것입니다. 이미 회개하고 중생하여 새 사람이 되었지만, 옛날의 죄악 흔적이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망신스러울까요? 이 사람이 교우들 앞에서 이렇게 울면서 고백했다고 합니다.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미국 가려다가 그것이 드러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만약 모르고 있다가 주님 나라 들어갈 때에 이게 발견되었다면 나는 얼마나 절망적이고 부끄러웠겠습니까!” 의식도 못하는 죄가 있다, 없다?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아니 오래 전에 잊혔기에 양심에 걸리지 않는 죄가, 있습니다!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주님 앞에 가까이 다가갈 때 갑자기 떠오르는 내 안의 옛 죄가, 있습니다!
앞으로 더 신령해지고, 성숙해지고, 은혜 많이 받고 뒤 돌아보면 ‘아하, 그게 죄였구나!’하는 그런 죄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죄가 없는 것 같은데, 어느 날 갑자기 내 영안이 떠졌을 때 보이는 치명적인 죄가, 있습니다! 이 죄에 대해서도 여러분은 자유로우신가요?
5) 자, 이 정도 하면 성경이 고발하는 죄에 대해 어느 정도 다 나왔겠지요?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닙니다. 성경에 가장 많이 사용된 또 다른 죄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위에 나열된 단어들은 단편적인 것들이고, 가장 많은 경우에 쓰인 죄라는 단어는 이제 소개하는 단어입니다. 하마르티아(hamartia), 가장 많이 쓰인 단어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 창을 던져 적을 맞히지 못한 전사(戰士)에게 이 말을 사용했답니다. 뭔가에 도달하지 못한, 표적에 이르지 못한 경우에 이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이 ‘하마르티아’ 죄라는 단어는 하나님이 정한 수준, 그 목표에 미달하는 것, 과녁을 맞히지 못하는 것, 엉뚱한 데 가 있는 것,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것,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는 행동들을 뜻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그 경지, 수준이 있습니다. 그런 삶의 환경이 있습니다.
그러한 삶의 목표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것, 그게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신 삶이 있는데, 그런 자세가 있는데 그것을 모른 체 하고 제 멋대로, 자기 편한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게 하마르티아, 죄입니다. 다니엘서 5장에 보면, 바벨론 왕 벨사살이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거나하게 잔치를 벌였는데, 교만하게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거룩한 성전 그릇들을 꺼내다가 거기에 술을 담아 퍼마시며 호기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갑자기 벽에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더니 글을 썼는데, 다니엘이 그것을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하나님이 바벨론 왕 벨사살에게 권력을 주었는데, 그 권력을 줄 때에는 뭔가 하나님이 원하신 것이 있어서 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왕이 그만 교만하여 호기를 부리자,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보시고, 기대에 못 미치게 미달됨이 드러나자, 그 나라와 권력을 나누어 다른 이에게 주시겠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그 날 밤, 그 호기어린 벨사살 왕은 암살당하고, 바벨론은 무너지며 권력은 바사, 페르시아에게 넘어갔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원하신 삶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수준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필요한 것들과 좋은 것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기대와 바람은 저버리고 주신 것들만 갖고 자기 혼자 교만히 즐기고, 세월아 내월아 하고 보낸다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께서 우리네 인생을 저울에 달아보실 것입니다. 그리곤 함량 미달, 자격 미달이라고 죄가 판명되면 우리에겐 비극이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그러더라구요. 병원에 건강 검진하러 갈 때마다 하나님의 저울에 올라서는 것 같다고. 하나님이 원하신 삶을 도외시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 하마르티아, 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수준이 있는데, 저 밑에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머물러 있는 것, 죄입니다. 이제 그만큼 교회 다녔으면 스스로 설 수 있음에도 여전히 끌려 다니듯 다니는 것, 죄입니다! 그만큼 복 받고 산다면 이젠 봉사와 희생, 섬김의 삶이 뒤따라야 하는 데 여전히 자신과 가족 외에는 모르는 이, 죄입니다! 성경이 가장 강력하게 고발하는 죄는 바로 이것입니다. 거짓말 했냐, 도둑질 했냐, ... 이런 것, 윤리적, 도덕적, 규범적 그런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신 삶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고, 그런 영적 수준이 있는데, 게으름과 나태와 무관심과 교만함으로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것, 그게 성경이 고발하는 죄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은 죄인이라고 성경이 규정하는 것입니다! 어떠신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런 죄의 범주에서 자유로우신가요?
3. 죄, 현대인이 듣기 싫어하는 단어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들어야 합니다.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이 죄입니다. 내가 한번 찾아보았습니다. 진리, 진실이란 단어는 신구약 성경에 전부 307번이 나오더라구요. 사랑이란 단어는 몇 번 나올까요? 517번 나옵니다. 믿음이란 주제의 단어는? 536번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 복이란 단어는 몇 번쯤 나올까요? 신약에 262번, 구약에 774번, 총 1036회 나옵니다. 많이 나오지요? 과연 성경은 복의 책입니다. 그러면 죄라는 단어는 어떨까요? 구약에서 900번, 신약에서 308번, 총 1208회 나오더라구요.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복을 받고 싶으신가요? 성경에 그토록 많이 나오는 복을 받고 싶으신가요? 우리들이 선결(先決)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 보다 더 많이 나오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전에 반드시 중시하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십시오. 진리, 진실, 사랑, 믿음, 모두 중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것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죄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얼마나 중요한 주제인지 오늘 본문에 보니, 메시아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밝혀주신 사명이 바로 이 죄 문제 해결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게 뭔가요? 죄의 문제를 해결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게 뭔가요? 죄의 문제를 히결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십시오. 고백해야 용서가 있습니다. 회개해야 화해가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고백하고 회개할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그 죄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애써 모른 체, 못 본 체 하지 마십시오. 죄를 갖고는 절대로 하나님의 평강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알든 모르던, 드러났든 은밀하든 죄를 끌어안고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죄가 있는 곳에 참 평안은 없습니다. 죄를 품고 아무리 간구하고 기도해도 축복은 어림없습니다! 우리 예수님, 바로 이 죄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이십니다.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b)
죄로 인해 몸이 아프고, 죄로 인해 사업이 안 되고, 죄로 인해 인간관계가 나빠지고, 죄로 인해 늘 두렵고, 죄로 인해 살맛이 안 나고, 죄로 인해 될 일도 안 되고, 죄로 인해 뭔가 가로막혀 짓눌리고, 죄로 인해 평안함을 잃어버리고, 죄로 인해 그 영혼이 늘 불안한 모든 이들을 우리 예수님은 영접하시고 품에 안아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사죄받음의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십자가 밑에서 자신의 죄로 아파하는 모든 이들에게 흘러내리는 예수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실 줄 믿습니다. 그 사죄의 은총이, 성결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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