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는 로마가 그렇듯 도시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어디를 밟으나 천년의 역사가 숨을 쉬는데 하다못해 일상의 장을 보는 시장 속에도 역사 속 영웅의 죽은 곳이 살아 숨쉬고 있다. 시내 한 복판, 니시키錦 엄청난 크기의 시장에 연결된 데라마치寺村 시장 안의 혼노지本能寺 절이다. 혼노지는 당대 권위있는 절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혼노지의 변本能寺の變'으로 더 유명하다.
전국시대에서 아즈치 모모야마安土桃山 시대에 걸쳐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서편의 강력한 적인 모리毛利 가家를 공격하기 위해 병력을 동원한다. 동원된 병력 중의 하나인 아케치 미쯔히데明智光秀가 오다의 명령으로 진군하던 중 갑자기 혼노지로 난입하여 거기에 숙소를 잡고 있던 오다 노부나가를 공격하여 그를 자결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오다 노부나가의 전국 통일의 꿈은 바로 눈앞에서 사라지게 된 사건이다.
당시 아케치 미쯔히데가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역하여 자신의 부하에게 명한 '적敵은 혼노지本能寺에 있다' 라는 말은 지금도 의미심장하게 쓰여지고 있다.
혼노지는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가면 머문 곳이기도 한데 1582년 오다 노부나가가 죽고는 불에 타 지금의 데라마치 시장 자리에 규모를 축소하여 이전했고 거기에 오다의 무덤을 세우고 수 많은 전투에서 쓴 그의 검과 유물이 그 안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데라마치는 니시키 시장 속에서도 얼핏 보기에 고급스러운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시장이다.데라마치 시장 안의 역사 깊은 그 혼노지本能寺를 보고 나오는데 바로 앞에 줄이 서 있었다. 일본사람은 긴 줄이 있으면 무엇인지 묻지도 않고 무조건 줄을 서는데 나는 동지사 대학의 공부로 시간이 부족하거나 주로 짧은 기간의 방문이어서 긴 줄은 피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저 너덧명의 줄이어 나도 그 뒤를 따라 섰다.
차례가 오기 직전엔 안으로 들어가 작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커피집이다. 안팎으로 'Coffee Smart' 그 집 상호가 쓰여진 빨간 통의 커피통이 쌓여 있고 긴 역사를 상징하듯, 놓여진 테이블과 의자가 수 십년은 더 되어 보인다. 대대로 이어지는 오래된 상점이 많은 도시여서 새삼 놀랄 일은 아니나 주위에 모던하고 멋스러운 커피숍도 많은데 이 오래되고 어리숙해 보이는 집에만 줄을 서 인내심있게 기다리는 것이 신기하다.
나도 어느 쪽인가 하면 모던과 클래식 중에는 후자인 편이다. 현대적 모던은 확 끌렸다가 새로운 모던을 찾게되지만 클래식은 역사의 켜가 더 할수록 편안하고 끌어들이는 묘한 매력이 있다.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거기에 그렇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돈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어려서 서울에 서양식 레스토랑이 드물던 때, 집 가까이 북악 스카이웨이를 오르면 '베어 하우스'라고 있는데 그 곳에서 식사하며 그 맛을 좀 보곤 했었다. 미국 유학가기 전날 밤, 다음 날부터 펼쳐질 삶의 역사를 모른 채 가족과 그 곳에서 식사를 하며 끝에 마신, 크림을 듬뿍 넣은 그 커피 맛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그 후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그걸 마시지 않게 되었다.
요즘은 서울에 커피집이 한 집 건너인 듯 하고 멋쟁이 커피 드링커들은 블랙 커피를 그것도 브랜드를 까다롭게 골라 마시는데 상대가 권하면 그저 한두 입 맛을 볼 뿐이다.
차문화가 발달한 교토는 우리처럼 카페가 넘치지 않는데도 그 맛이 아주 발달되어 있다. 우리보다 훨씬 전에 서양 식음료 문화를 공부하기도 했고 그들 특유의 연구하는 장인 정신때문일 것이다. 음식이나 케잌이나 커피의 맛이 서양 맛을 고대로 받아들이는게 아니라 동양의 입맛에 맞게 철저히 연구하고 변화시키어 우리의 입에도 잘 맞는 편이다.
'Coffee Smart' 는 오래 된 분위기도 푸근하나 커피 맛이 극히 부드럽고 거부감이 없어 남들이 좋아하는 씁쓸한 커피 맛을 꺼리는 나도 그 곳에 가면 커피를 시킨다.
거기에 딱 세가지 메뉴, 프렌치 토스트와 핫 케잌, 캬라멜 푸딩이 있다. 계란에 푹 담가 고슬고슬 지진 프렌치 토스트는 일본 어디에나 일반화 되어있으나 그 곳의 프렌치 토스트는 특히 맛이 있어 그 위에 달콤한 시럽을 뿌리고 커피와 함께 한 입을 물면 곧 행복해진다.
늘 너덧명이 그 앞에 기다리고 있는데 긴 줄이 아니어 곧 내 차례가 오겠지 하고 기다리나 실제는 많이 기다리게 된다. 마침내 자기 차례가 되어 들어가 오래묵은 의자에 푹 앉아 편안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며 맛을 즐기느라 바로 나오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게는 그 맛을 본 경험이 있어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고 시간이 아까워도 그 행복감이 몸에 배어 있어 꾹 참고 있는 것일 게다.
일본사람이 우리보다 참을성이 많고 서두르지 않고 분노를 덜 내는 것은 앞으로 올 시간과 앞날의 행복을 그렇게 믿고 상상하면서 참고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된 때문일지 모른다.
두툼한 프렌치 토스트 한 점에 순한 커피를 곁들이면 기다린 보람이 있다. 프렌차이즈 카페가 온 세계 어디를 가도 휩쓸기에 역설적으로 이런 구식스러운 곳이 더 돋보이는 것일까.
거기가 교토의 '커피숍 필수코스'인지는 알 수가 없다. 소문을 들은 적도 없다. 오로지 혼노지의 서슬 퍼런 역사를 둘러보고 나오다 바로 앞집에서 키 큰 돌에 새겨진 대본산 혼노지大本山本能寺 푯말을 바라보며 오다 노부나가 시절에는 없었을 커피 맛을 체험했고 평시 커피를 마시지 않는 내가 교토에 가면 커피를 마시러 일부러 찾아가는 집이 되었으니 생각하면 그것은 신기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시내 한 복판 데라마치寺村 시장 입구 - 교토 2016 12 6
오다 노부나가의 묘가 있는 대본산 혼노지 - 교토 데라마치 시장 속
유서 깊은 혼노지 앞의 현판에는 한글도 있다 - 교토 2016 12 6
줄서 기다리는 'Coffee Smart' 입구 - 교토 데라마치 시장 2016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