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도 영어로?
박병률
작년 겨울 고향 친구와 함께 춘천 ‘빙어낚시 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다. 아침 일찍 왕십리역에서 춘천행 ITX 청춘열차를 탔다. 열차가 강촌역을 지날 때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강물이 흐르고, 산등성이 서 있는 나무는 뼈만 앙상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은 텅 비어있었다. 오래전부터 자연이 살아가는 방식! 비워야 새것을 담듯,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나무에서 새싹이 돋을 테고, 논밭은 농부들이 씨를 뿌려서 분주하게 돌아갈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며 잠깐 사색에 잠겼다 싶었는데 어느새 춘천역에 도착했다. 역 근처에 있는 관광안내소에 들러 관광안내지도를 챙길 때였다. ‘공지천’을 한 바퀴 돌아보고 춘천 닭갈비집으로 갈 예정이었지만, 내 옆에 있던 직원이 빙어낚시 축제에 가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친구와 의논 끝에 버스를 타고 빙어축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을에서 운영한다는 빙어축제장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어른들은 얼음구멍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길옆 공터에는 먹거리 장터가 들어섰다. 주로 살아있는 빙어를 팔거나, 빙어 튀김을 팔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듯, 빙어 한 접시를 시켰다. 큰 대접에 물이 찰박찰박 한데 빙어가 밖으로 나가려고 버둥거렸다. 빙어를 쳐다보고 친구가 입맛을 다셨다. 그 후 빙어 꼬리를 잡고 초장을 듬뿍 찍어서 입으로 넣으려는 순간, 빙어가 좌에서 우로 친구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빙어가 말을 할 줄 안다면 이러지 않았을까?
“이놈아! 너 죽고 나 살자.”라고.
빙어 몸에 초장이 듬뿍 묻었으니 눈에 보이는 게 있겠는가. 빙어가 온몸을 부르르 떠는 것이 어쩌면, 젖 먹던 힘까지 쏟아부으며 친구와 맞짱 뜨자는 신호 같았다. 나는 친구 입속으로 빨려들어 간 빙어를 바라보며 속으로 기도했다. “좋은 데로 가소서!”
살아있는 생명을 입안에 꿀꺽 삼키는 것을 보았지만,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비위가 약해서 빙어 튀김을 따로 시켰다.
튀김 한 접시를 금세 비우고 얼음판으로 갔다. 친구와 나란히 자리를 잡고 낚싯바늘에 구더기를 달아서 낚싯줄을 늘어뜨렸다. 낚싯대를 잡은 손을 가끔 위아래로 움직였지만, 물고기가 ‘가물에 콩 나듯’ 올라오고 찬바람은 살 속 깊이 파고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가 서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낚시를 접고 ‘닭갈비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가게 안은 텅 비어있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닭갈비를 시켰다. 불판에 올려놓은 감자가 노릇노릇 익어갈 때, 친구가 감자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키더니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춘천역 근처 관광안내소에 들렀을 때 말일세! 안내표지판 봤는가?”
“응, 봤어.”
안내표시판에 ‘Information’이라는 영어로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다. 내가 무심코 바라본 영어가 친구 마음에는 가시로 남았던 모양이다.
“Information은 게시판 윗줄에 큰 글씨로 쓰고, ‘관광안내소’라는 한글은 왜 작은 글씨로 게시판 아래에 썼을까?”
친구가 나한테 물음표를 던지며 한마디 덧붙였다. “1996년 프랑스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참석한 학술회의에서, 한국어를 세계 공용어로 쓰면 어떻겠냐는 토론이 오간 적이 있었디야.” 라고.
“외국인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영어로 크게 썼는지 몰라.”
친구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가 거들었지만, 불난 집에 부채질 한 꼴이었다. 친구가 언성을 높이며 말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세계 언어학자들이 한글을 높이 평가했잖아!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꼴이란께!”
친구가 화가 안 풀렸는지 천장에 대고 연신 삿대질을 했다.
친구는 ‘종합 관광안내소 (Information)이라고 쓰자’고 주장했다. ‘한글을 맨 위에 크게 쓰고, 그 옆으로 영어를 작게 써야지 하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한글 나라에 와서 관광할 때 영어로 하란 뜻일까?
“자네가 이참에 높은 자리 하나 꿰차소!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라고 내가 빈정거리자, 친구가 얼굴을 내 턱밑까지 들이밀었다.
나도 질세라 “얼쑤, 그렇고말고.” 친구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상에 있는 쇠젓가락을 양손에 들고 장단을 맞췄다. 주거니 받거니 우리가 노는 모습을 보고 주인이 닭갈비를 주걱으로 뒤적거리다가 “사이다 한 병 공짜요.”라고 인심을 썼다. 나도 한글이 우수하다는 것을 잡지에서 본 적이 있다.
‘언어연구학으로 세계 최고인 영국의 옥스퍼드대 언어학대학에서 과학성, 독창성, 합리성 등을 기준으로 세계 모든 문자에 대해 순위를 매겼는데 한글이 1위를 차지했다.’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