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광수 47명 총
정리
무조건
탈북자들을 옹호하고 나와 노숙자담요를 공격하는 불량한 사람들이 있다. 영상자료도 세밀히 분석하지 않고 무조건 “지만원이 애국활동을 매우
잘하고 있는 탈북자들을 찍어서 마녀사냥을 하고 그들의 인격을 저하시키고 애국세력을 분열시킨다”고 공격한다. “12살 짜리 아이들이
특수군 신분으로 광주에 와서 주민을 마구 학살하였다니 말이 되느냐?” 이렇게
공격한다.
북한은
북한에서 남녀노소 어린아이들까지 광주로 데려와 마치 그들이 광주사람들인 것처럼 보이게 하고 사진들을 찍었다. 그 사진은 남한을 살인국가로
모략하는 사진이었다. 1980년 5월 23일 도청 앞과 도청 내부에 모인 수많은 북한 사람들 틈에 서울광수 47명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나는
그 분석사실을 발표했을 뿐, 12살짜리 아이들이 북한특수군 병사였고, 그 12살 짜리들이 광주시민을
학살했다고 말한 바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나를 모함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들 탈북자들은 북한군이 5.18에
개입했다는 사실을 극구 부정하고 다닌다고 나는 말했다. 탈북자라면 눈물부터 짜는 가슴 뜨거운 사람들은 “누가 감히 탈북자를 건드리느냐?”며
쌍지팡이를 짚고 나선다.
아래 사진들에 점이 찍힌 사람들은 광수다. 붉은 점은 평양광수, 노란 점은
탈북광수(서울광수)를 의미한다. 아래 사진들 중에서 그 어느 광주사람도 "저것이 나여" 하고 나서는 사람 없다, 박남선과 심복례가 나섰지만
그들은 기라성 같은 북한의 인물들 틈에 끼일 자격조차 없었던 인물들이다. 5월30일 이후에야 해남에서 광주로 올라왔다는 심복례가 무슨 수로 5월
23일에 찍은 사진들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며, 26세의 화물트럭운전수 박남선이 무슨 수로 북한군을 지휘하면서 남한 청년을 체포해 갔다는
것인가? 경찰청에 묻고 싶다. 아래 사진에서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광주 또는 전남지역 경찰이었는지를.
탈북광수들을
무조건 감싸는 사람들은 지금 무책임한 이적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탈북광수의 존재를 부인하려면 아래 47명 모두가 탈북광수가
아니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증명해야 할 것이다. 분석자는 현미경을 가지고 있지만 여기에서 보는 사람들은 단순한 확대경조치 갖지 않고
맨눈으로 슬쩍 보고 만다. 아니 보지도 않고 공격하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전문가
팀이 며칠씩 밤잠을 자지 못하고 오로지 국가의 안녕을 위해 분석해야 겨우 한 사람 정도 분석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8개월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293명의 광수를 발굴해냈다. 무책임한 사람들은 분석내용을 들여다보지도 않고 무조건 탈북자들을 감싼다. 소위 애국을 위해
애국-아이템을 하나씩 잡아 국민에 호소하는 사람들, 당신들이 잡은 아이템만 애국이고, 내가 잡은 아이템은 분열의 아이템이던가? 자기 애국활동만
중요하고 남이 하는 애국은 쓰레기이던가?
아래에 47명의 광수들을 모두 정리했다, 이것을 보고도 서울광수를 부정하는 사람은 의도가
있는 사람일 것이고, 이것을 보지 않으면서 서울광수를 부인하는 사람이라면 무책임한 빨갱이들일 것이다.
1.
황장엽
1923년생, 1955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1965 대학총장, 노동당선전선동부차장,
노동당총비서장, 조평통 부위원장,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대남담당비서, 1997.2.12 한국으로 망명, 주체사상을 인간중심철학으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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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덕홍
1939년생 , 조선인민경비대,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김일성종합대학 교무부
지도원 및 책임지도교원, 노동당중앙위원회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서기(당중앙위원회 부과장급) 노동당중앙위원회 자료연구실 부실장, 1997년 2월
12일, 대한민국 정치망명,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산하 통일정책연구소 상임고문, 탈북자동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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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순경 4. 표영희(홍순경의
처로 추정)
1940년생,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홍순경. 탈북자동지회회장, 전회장,
1991~1999년 태국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그 이전 1983~1988년엔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한 베테랑 외교관으로 소개돼 있음.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29&page=2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53&page=2
5.
강명도
1958년 생. 평양외국어대, 북한총리 강성산의 사위, 1994년 탈북, 경민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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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조명철
1959년생, 김일성종합대 졸업, 동교 교수, 1994년 탈북, 2011년 통일교육원
원장, 2012년 제19대 국회 새누리당 비례대표 4번, 정보분과위 소속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291&page=3
7.
이순실
나이 50세 가량, 간호장교, 2007년 탈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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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고영환
전 콩고주재 참사관으로 탈출, 1991년 한국으로 귀순, 통일준비위원회 50인 중 1인으로
선발, 1953년생이라고 하지만 아래 사진은 1980년 5.18당시 27세의 청년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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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강철환
인터넷 자료들에 의하면 그는 1968년생이며, 1977년 요덕수용소에 수용되어 10년 동안
고생하다가 같은 나이인 안혁과 함께 탈북하여 1992년 한국에 왔다. 그는 요덕을 소개하기 위해 “수용소의 노래”라는 책을 썼고, 이는
1969년생으로 소개된 정성산 감독의 “요덕스토리”의 소재가 됐으며, 강철환은 일약 북한인권을 폭로한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1980년 당시
강철환의 나이는 12세. 그런데 강철환은 9살 때 요덕에 들어가 18세까지 수용돼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증거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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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안혁
안혁은
1968년생으로 같은 나이인 강철환과 함께 1992년에 탈북했다고 한다. 황장엽은 북한민주화동맹 중앙위원회 상임위원을 고영환, 김동수, 김성민,
안혁으로 작성했다. 공교롭게도 황장엽도 광수이고, 이들 4명의 상임위원도 광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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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김정아
인민군 여군 장교, 2009년 서울도착, 서울에서는 달변의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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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김동수-심명숙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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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김성민
나이
미상, 1999년 탈북, 자유북한방송 대표
13.
김동수 14. 심명숙(깅동수의
처)
유엔식량농업기구북한대표부
3가족, 주헝가리 한국대사관에 망명신청, 1998년 2월 6일 김포공항 도착, 북한체제를 비판했다가 미움을 샀다고 함.
15.
정성산
1969년생으로
진술, 개성 소재의 북한군 부대에 상사로 근무 중, 1994년 남한방송을 들었다는 이유로 고문을 받고 수용소로 가던 도중 차가 전복되어 중국으로
탈출한 후 1995년 서울 도착했다는 것이 본인 이야기임. 인터넷을
보면 그는 학력도 위조했고, 경력도 위조라는 소음이 일고 있다, 인민군 정치부 선전대장 했다는 주장도 사실일 수 없다는 주장들이
있다. 요덕스토리 제작, 영화감독으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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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박상학
1968년생,
김책공업종합대학, 1997년 탈북,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대북 풍선 보내기 선두 주자. 박상학의 대북삐라 사업은 애국운동으로 칭송되고 있지만,
바람에 대한 분석 없이 널려 대부분이 남한 땅에 투하된다는 지적들이 많다. 남한에서 요란하게 소리를 내면서 보내기 때문에 삐라에보다는 자기선전
효과를 더 누린다는 지적들이 있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299&page=3
17.
김영순
성혜림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1970-78 9년 동안 요덕에 수용되었다 탈출했다는
전 북한 무용가 김영순, 탈북자의 고전으로 인정돼 온 김영순, 그는 1980년 5월 광주에 왔던 것으로 분석됐다. 요덕에 있었다는 서울광수들이
여러 명이다. 전남도청 앞에서 찍힌 사진 한 장 속에 요덕에 수용됐다가 탈출했다는 사람들이 여러 명이다. 몇 명은 광주사태가 났을 때 자기들은
요덕에 있었다며 광수임을 부인한다. 이들이 모두 탈북하여 요덕 스토리를 내세워 절대적인 신뢰를 얻어가면서 인기인이 되어 가고 있다. 북한정권의
공작이 매우 주도면밀하게 준비되고 기획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위장탈북이 진짜탈북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일정기간 요덕에
수용하여 위장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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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김소연
김소연
박사, 무병장수연구소장, 김일성 주치의, 1992년 귀순용사라는 칭호로 귀순, 나이는 가짜로라도 알려진 곳을 찾지 못했음. 마침 일베에 자료가
있어 이를 인용한다.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듬해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어머니 등에 업혀 월북해 평양 외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64년 평양의학대학에
입학하여 봉한학설을 비롯한 북한 동의학을 수학했다. 1970년 의대 졸업 후 인민군 11호 종합병원 외과의사로 3년 동안 근무했으며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조선과학원 동의학 연구소 특설학부에 입학해 졸업하고 1980년부터 1991년까지 <만수무강
장수연구소>에서 기초의학연구원 연구사로 있었다.
1992년
6월 압록강을 건너 11월 24일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1993년부 터 1997년까지 의료보험심사평가원으로 근무, 1997년에 동국대학교
한의과 대학원에 입학해 2000년에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2000년 <보궁 자연요법 장수연구소>를 운영하다 미국으로 7년간의 유학길을
떠났다. 2003년에 미국 유인대학교 한의학과 대학원에 입학하여 한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2004년부터 2007년까지 핸더슨 크리스천유니버시티
선교한의학 교수를 역임했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00&page=3
19.
현성일 20. 최수봉(현성일의
처)
전, 잠비아주재 北대사관 3등서기관 현성일과 처 최수봉
최수봉 : 96.1.7 귀순
현성일 : 96.1.30 귀순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51&page=2
21.
김광일
군부대
군무원으로 근무하다 탈북계획이 들통 나 전거리교화소에 수용됐다. 2009년 탈북, 아무런 특징이 없는 그를 국정원은 국영기업체 수자원공사에
취직시켰다.
2015년
11월 30일, 탈북광수들에 대한 영상분석이 탈북자 전체에 막중한 피해를 주고 있다고 경고했다. “오래 지켜보지는 않겠습니다. "탈북광수"들이
대표님에 의하여 증명되어 양심선언을 하던가, 대표님이 명예회손 판결을 받던가, 둘 중 명백한 하나의 진실만을 기대하며 둘 중 하나는 분명히
책임지고 그에 상응한 엄중한 처벌을 받어야 합니다” 그의 이 발언으로 인해 그게 관심을 그리 갖지 않았던 영상분석팀이 그를 광주사진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61
22. 임영선
통일방송 대표, 1998년 8월 중위로 중요기물문서 가지고 쫓기면서 귀순한 것으로 자기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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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김희성
북한이
간첩을 가장 효과적으로 남파시키는 수단이 탈북, 귀순 등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많은 애국 국민들이 “탈북자들을 어떻게 믿느냐”, “탈북자들
중에 간첩이 없다고 누가 장담하겠느냐” 이렇게 의심들을 한다. 반면 또 다른 국민들은 “북한에서 학대를 받고 북한체제와 삶이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를 잘 아는 탈북자들이 남한의 철없는 자생 빨갱이들을 일깨워주고 있지 않느냐, 그들이 통일의 중심 세력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일단
우리 국민이 된 이상 그들을 믿어야 하고, 공무원도 시켜주고 똑같이 대접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온정적인 생각으로 탈북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운데 위장탈북자들은 계속 늘어났고, 특히 광주에 왔다가 최근 십년 사이에 남한으로 귀순한 사람들이 방송 프로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엄청난
인기를 축적했고, 엄청난 수의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들은 출세를 하고 돈을 잘 벌고 인기인이 되어 사회 각 단체들로부터 강연초청을 받고
대통령을 쉽게 만나고 일반 탈북자들은 물론 남한 주민들까지고 흡수하여 정치세력화 되어 있다. 이렇게 무서운 세력으로 집단화되어 있는 탈북자들은
거의가 다 5.18 광주에 10대의 나이로 왔던 사람들이다.
1980년
5월 23일, 광주 도청을 배경으로 하여 찍힌 사진들에는 삼베 두건을 쓰고 다닌 인물이 있었다. 그는 훗날 북한의 내각총리로 출세했다. 그
김영일이 교복을 입혀 늘 데리고 다니던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5.18로부터 17년 후인 1997년 2가족 단위로 귀순한 김원형씨
가족의 셋째 아들 김희성인 것으로 영상판독 되었다. 채 열 살도 되지 않아 보이는 이 아이를 북한총리 김영일이 어려서부터 공작 훈련을
시켜가지고, 20대에 가족들과 함께 의심받지 않는 방법으로 남파시킨 것이다. 관계 정보기관은 김희성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추적해
왔었는가?
김희성이
2가족 동시 귀순이라는 드라마에 끼어 남한에 투입되었을때 대한민국 국민의 그 누가 눈꼽만큼이라도 의심을 가졌겠는가? 그러나 보라, 그 어느
탈북자, 귀순자라도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가를!
1997년
5월 22일, 김원형-안선국 가족 기자회견(자매로 엮인 2가족)
●
기자: 김원형씨 셋째 아들 김희성씨는 외국에서 지원한 식량을 전달받은 적이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 김희성(김원형씨 셋째아들): 특히, 미국이나 한국에서 식량이 들어오는데 주민들에게는
배급을 주지 않고, 그러니까 다른 곳으로 가는데 그게 군부로 들어가는 것 같다고들 말합니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67
24. 최영춘
여성 권투선수 최현미의 부, 김유송의 부계가 다른 형제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71
25. 김유송
북한군 상좌, 함경북도 무역관리소장, 대왕버섯 개발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73
26. 어성일, 27. 김창화
1988년
동반 귀순, 동시 기자회견, 성분이 나쁘고, 잡범 전과로 인해 사회진출이 봉쇄당하자 좌절감 느껴 동반 탈출 . 이들은 광주에서도 한조, 탈북도
한조였다. 위장 간첩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1988년
동반 귀순, 동시 기자회견, 성분이 나쁘고, 잡범 전과로 인해 사회진출이 봉쇄당하자 좌절감 느껴 동반 탈출 . 이들은 광주에서도 한조, 탈북도
한조였다.
위장 간첩이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지금 누엇을 하고있는가?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80
28.
최주활
현 탈북자동지회 회장, 1979년 체코 무관, 1995.10. 인민군상좌로 서울 도착,
통일정책 연구소 연구원, 민주평통자문위원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44&page=2
29.
김용화
1951년생, 인민국 대위. 2002년 서울도착, 탈북난민인권연합 대표, 중국에 있는
탈북자 돕는 일 한다고 자기 소개.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45&page=2
30. 허광일
1995년 러시아 벌목공 신분으로 탈북. 황장엽이 기획한 ‘북한민주화동맹(위원회)’ 조직의
핵심. 7인으로 구성된 북한민주화동맹의 상무위원 7인은 고영환, 김동수, 김성민, 안혁, 강철환, 허광일, 현성일. 2007년 4월 10일,
프레스센터 20층에서 “북한민주화위원회” 창립식 주도.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48&page=2
31.
장승길 32. 최해옥(장승길의
처)
장승길(1948) 이집트 대사, 그 부인인 '인민배우' 최해옥, 그리고 장승길의 형인
장승호 이상 3인이 1997년 동시 한국으로 귀순했다. 장승호는 파리주재 북한대표부 경제참사관, 부인인 최해옥은 "꽃파는 처녀"의 주연인
'꽃분이' 역. 장승길은 김정일의 신임을 많이 받던 인물.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52&page=2
33.
최계순 34. 박정숙
최계순(65)과 박정숙(68)은 2014년 12월 20일 평양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최계순은 중국에 갔다가 남한의 거간꾼들에 걸려 2011년 12월 남한으로 끌려갔다가 생지옥 같은 생활을 한 후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하였고, 박정숙은 남한에 잡혀 갔다가 조국의 품에 안긴지 1년 반이 되었다고 말했다. 남한은 생지옥이고 특히 탈북자들에 대한 차별이 심하여
냉대를 받고 있다고 선동하였다. 이 두 사람은 광주에도 함께 왔었고, 한국에서도 모종의 간첩활동을 하고 북한으로 귀환한 것으로 판단된다. 분명한
위장탈북의 케이스인 것이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54&page=2
35.
전영철
2010년 탈북한 전영철이 2012년 북한으로 갔다. 중국을 통해 북한으로 잡혀가는 형식을
취한 그는 미국과 한국으로부터 김일성 동상을 파괴하라는 사주를 받았다는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김일성훈장을 받았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60
36.
박수현, 37. 박태현, 38. 박세현
위 삼형제는 1997-98년에 전방에서 귀순하여 3형제 다 한의사가 되어 성남에서 묘향산
한의원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탈북자들의 나이는 고무줄 나이라 신뢰 불가. 맏형이 1965년생, 막내가 1975년생이라고 소개돼 있다.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292&page=3
39.
장인숙
1941년생, 평양운수대학 교량터널과를 졸업, 김일성 주체사상탑 구조 설계에 참여.
1997년 8월 탈북. ‘평화통일 탈북인연합회’의 회장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01&page=3
40.
리민복
1957년생, 북한 농업과학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숙청당해 벌목공으로 있을 당시인 지난
1994년 모스크바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에서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95년 남한에 입국했다. 대북풍선 날리기 운동
전개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42&page=2
41.
이한영
성혜랑의 아들, 성혜랑과 함께 광주에 출현. 스위스로 유학갔다가 1982년 한국행.
1997년 살해.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59
아래 5명(42-46)은 탈북단체장
http://www.systemclub.co.kr/board/bbs/board.php?bo_table=pa04&wr_id=1377
42. 장세율
북한인민해방전선
대표, 겨레얼통일연대 대표, 북한군
장교 출신, 미림대학 , 하루만에 서울 점령, 사흘만에 승리
43. 김태진
북한정치범수용소해체운동본부,
대표, 1956년생,
1988년부터 4년간 요덕 수용소 생활, 2001년 서울 도착,
44. 강영철
천수회
회장, 상지대에서
교수에게 폭행당한 것 말고 정보 없음
45.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 . 1960년
생, 김책공대, 북한 대학 교수, 2004년 서울 도착,
46. 한일성
(숭의동지회회장)
1967년
귀순, 남파된 상태에서 광주로 동원됨
47.
림일
약력:
1968년 평양 출생 / 1988년 사회안전부 13처(비밀경찰) 근무 / 1993년 대외경제위원회 근무 / 1996년 주 쿠웨이트 무역상사 근무
/ 1997년 대한민국 입국.
<동아일보> 칼럼니스트, 황장엽을 사랑하는 모임 대표, (사) NK지식인연대 이사, 북한해외근로자인권연대 대표
저서:
『평양으로 다시 갈까?』, 『평양이 기가 막혀!』, 『평양보다 서울이…』, 『소설 김정일』(전 2권) 『통일』
장편소설 『통일』의 핵심 줄거리는 "국정원을 해체하고 그 대신 통일전략센터"를 신설할 것과
"10만 통일결사대"를 구성할 것을 제시하였으며, 이 두 조직은 북한을 잘 아는 탈북자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 통일이후의 국호는
"고려민국"으로 할 것을 주장. 보도에 나타난 사진들을 보면 유길재(전 통일부 장관), 홍사덕(전 국회의원) 등과 매우 친숙한 사이로 보인다.
조명철은 림일이 자기 사무실을 가장 많이 찾은 사람이 림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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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2.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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