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펑크와 뉴웨이브 열풍을 이끈 밴드 '더 잼'의 드러머였던 릭 버클러가 69세 삶을 접었다고 영국 BBC가 18일(현지시간) 전했다. 밴드의 싱어이며 기타리스트였던 폴 웰러가 엑스(X, 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고인의 죽음에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고 알렸다. 베이스 연주자 브루스 폭스턴 역시 같은 플랫폼에 따로 "황망하다"고 씁쓸한 심경을 남겼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유족도 성명을 통해 고인이 워킹에서 전날 저녁 짧은 질환 끝에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했다며 "사랑스러운 남편, 아빠이며 할아버지로 많은 이들에게 헌신했으며 무척 그리울 것"이라고 밝혔다.
더 잼은 1960년대 유행했던 모드(Mod) 패션와 음악 부활에 앞장섰던 밴드로 기억된다. 모드 패션은 모더니스트를 표방한다는 의미로 깨끗한 선, 선명한 색상, 미니멀리즘을 구가하자는 취지였다. 노랫말은 대부분 노동자 계층의 이야기를 다뤘으며, 전기 작가 숀 이건에 따르면 "사회적 저항과 문화적 진정성을 차트의 정상으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들었다.
1977년 데뷔 히트 곡을 시작으로 영국 톱 40 싱글을 18차례 연속 내놓을 정도로 인기를 끌다 1982년 12월 해산했다. 'Going Underground'와 ' A Town Called Malice'를 비롯해 넘버 원 싱글을 네 곡이나 배출했다.
영국 데일리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서리주 워킹에서 태어난 고인은 쉬어워터 중등학교에 입학, 교우였던 웰러와 폭스턴과 밴드 결성에 의기투합했다. 그는 웰러가 단지 떠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바람에 밴드가 해체됐다며 이 때문에 폭스턴과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다며 후일담을 전하기도 했다.
이듬해 버클러는 새 밴드 'Time UK'를 꾸렸다가 그마저 해체되자 이슬링턴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프로덕션을 차렸다. 1990년대 중반 음악계를 떠나 목공 일을 배워 워킹에서 캐비넷과 "우울증" 달래는 가구들을 만들었다.
그랬다가 음악계에 돌아온 것이 2005년이다. 'The Gift'란 새 밴드를 만들어 더 잼의 카탈로그에 묵혀 있던 옛 노래들을 연주했다. 2년 뒤 폭스턴과 함께 후계 밴드 '프롬 더 잼'에서 함께 연주했고, 웰러는 '스타일 카운슬'을 결성해 경력을 이어가다 솔로 활동을 했다.
고인은 지난 1일 영국 여러 곳을 도는 스포큰 워드 투어(spoken word tour)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건강 문제로 취소할 수 밖에 없었는데 2주 만에 사망 소식을 전했다.
웰러는 "난 우리 모두 워킹 스탠리 로드의 내 침실에서 우리 모두가 리허설하던 때로 돌아가 생각하게 된다. 꼬마 때 우리는 모든 펍과 클럽에서 연주하다 결국 레코드도 만들게 됐다. 얼마나 대단한 여정이었던가!"라고 적었다.
폭스턴은 "릭은 좋은 녀석이었고 드럼 패턴을 혁신해 우리 노래의 틀을 잡는 데 도움을 준 대단한 드러머였다. 우리가 해냈던 많은 일처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좋았다. 난 이 어려운 시기 레슬리와 그의 가족과 마음을 함께 하고자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