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를 닦아줄 자
“내가 성령(聖靈)에 의해서 ‘오직 의인(義人)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깨닫게 되었을 때 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열린 문을 통해 하나님의 낙원으로 들어간 것이다”(마르틴 루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누구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니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여 주기 때문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는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사도바울이 한 말인데, 그는 이어서 고백하기를 “이 닦아준 것 외에는 능히 다른 터를 닦아 줄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린도전서 3장11절)”라고 하였다.
우리는 내 인생길에 변치 않고 확실한 터를 닦아준 자를 찾아보고 그 길로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생각건대 이런 터를 완벽하게 닦아주는 일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이는 인류의 모든 철학과 인문학과 과학 등이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긴 인류 역사에서 살아남아 가장 놀라운 생명력을 이어가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 가정과 인간사회와 나라의 모든 윤리와 사회·경제·정치의 제도도 이 진리에 근거할 때 그 가정과 사회와 나라는 진정한 번영을 이룰 수 있다. 임진왜란·병자호란 후에 무너진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으려고 시도했던 예학(禮學)의 발전이 바로 그런 사례 중 하나인데, 이후 조선은 그런대로 안정을 되찾고 중흥도 하였으나 영·정조 시대 이후 또 다시 부패하고 타락하였다.
우리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건국 된지 칠십년에 심각한 부정선거를 비롯하여 이미 심각한 타락과 부정과 부패의 늪 속에 빠져 들었다. 여기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홍콩처럼 자유를 잃고, 베네수엘라처럼 혼란 속에 빠져들고, 베트남처럼 보트 피플이 발생하고, 캄보디아처럼 킬링필드가 생기고, 중국처럼 노예로 살고, 북한처럼 처절하게 인간다움을 박탈하고 사는 것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여당과 사법부와 선관위와 국회는 물론 대다수의 국민들도 개인탐욕과 타락과 무사안일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헤매니 다시 한 번 망국의 구렁텅이 빠지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전 국민이 깨닫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저항권을 행사하는 것 외에는 달리 길이 없어 보인다. 의인(義人) 열 명이 없어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의 교훈이 절실하다.
2024. 5. 1.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