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긴 아깝고
- 박 철
일면식 없는
한 유명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내려고
서명한 뒤 잠시 바라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면지를 북 찢어낸 시집
가끔 들르는 식당 여주인에게
여차여차하여 버리긴 아깝고 해서
주는 책이니 읽어나 보라고
며칠 뒤 비 오는 날 전화가 왔다
아귀찜을 했는데 양이 많아
버리긴 아깝고
둘은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주고받은
그런 눈빛을 주고받으며
- 계간《시에》(2009년 겨울호)
***********************************************************************
시집을 내본 경험이 있는 시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씁쓸함을 겪었음직하다.
시집을 내는 방식에는 자신이 소요경비를 모두 부담하는 자비출판과
상업적 판매를 염두에 둔 기획출판이 있다.
그런데 기획출판은 전체 시집의 5% 안팎이고
나머지는 거의 자비로 출판하는 것이 문단의 현실이자 비애이기도 하다.
시집을 내고선 일면식도 없는 평론가에게 시집을 보낼까 말까 망설였던 시인의
대부분은 자비출판의 경우라 짐작된다.
아마 보내고 싶어도 주소를 몰라 보내지 못한 시인도 있을 것이며,
보내봐야 거들떠보지도 않고 내팽겨질 게 빤하다며 지레 짐작하고선 보내지 않는 시인도 있겠다.
하지만 박철 시인 정도의 역량과 비중으로 주목받는 시인이라면
기획과 자비출판을 불문하고 어떤 평론가라도 그냥 흘깃하고 밀쳐내진 않을 것이다.
다른 이들처럼 공연히 평론가에게 알랑 방구나 끼려는 수작도 아닐 것이며,
공연히 없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서도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글을 쓸 필요는 없다 싶어’ 불쑥 ‘면지를 북 찢어낸’ 끼닭은 무얼까.
내 시집에 관심 가져주고 문단 활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은 얄팍한 기대감으로
시집을 보내는 여느 시인들과 다르지 않게 평론가에게 읽히는 것이 싫었던 게다.
다른 이들의 그런 의도를 굳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시인의 자의식으론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낙장 되어 ‘버리긴 아까운’ 시집을 시인은 이웃 식당 여주인에게 줘버렸는데,
나중에 뜻밖의 ‘아귀찜’ 대접을 받았다.
물론 식당 여주인이 ‘버리긴 아깝고’라고 말한 것은
시인이 책을 건네며 민망함을 덜 요량으로 덧붙였던 말과는 사뭇 다르다.
시집이라는 특별한 선물을 받고 그 고마움을 따뜻이 감싸 특수한 용어로 표했던 것이다.
‘이상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뭔가 서로 맛있는 것을 주고받은’ 시인으로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평론가에게 보내기보다 백번 잘 한 짓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렇게 매콤한 아귀찜이 되어 돌아오는 시를 쓰기만 해도 시인은 참 행복하겠다.
- ACT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