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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답이다 - 우리의 ‘홈쉬트 홈home! sweet home’인 예수님
2018.2.5. 월요일 성녀 아가다 동정 순교자(+251) 기념일 1열왕8,1-7.9-13 마르6,53-56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는 세상이라 합니다. 영어로 표기하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영어로 집을 ‘house’라 한다면, 가정은 ‘home’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구분도 우리 말로 하면 애매해집니다. 문득 생각나는 ‘즐거운 나의 집’이란 노래입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때 북군 모두에게 널리 불렸으며 당신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라함 링컨과 그의 부인이 특히 좋아했던 곡이라 합니다. 바로 이 곡의 영어이름은 ‘home! sweet home’이고 우리 이름은 ‘즐거운 나의 집’입니다. 여러분 역시 즐거이 불렀던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꽃 피고 새 우는 집 내 집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즐거운 나의 벗 집 내 집뿐이리-
누구나 향수에 젖게 하는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곡이자 가사입니다. 모두가 찾는 이런 집이자 가정입니다. 집은 있어도 가정은 없는 세상이라 합니다. 제 집만이 아니라 제 가정이 없는 사람도 부지기수입니다. 하여 날로 거칠어지고 굳어져가고 사나워지는 사람들입니다.
고향도 사라져가는 현실입니다. 아무리 그리워하는 고향이라도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실 때 고향집이지 부모와 형제들이 사라진 고향은 허전할뿐입니다. 이젠 사람도 떠나고 산천의 자연도 옛 모습이 아니라 보이는 고향도 완전히 사라져가니 흡사 모두가 실향민失鄕民처럼 생각됩니다.
실향민이라 말마디가 깊은 울림을 줍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모두 실락원失樂園의 실향민失鄕民들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실낙원의 실향민들입니다. 하여 고향집을 찾듯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을, 성당을 끊임없이 찾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에 대한 답이 예수님이자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우리의 영원한 낙원이자 참 고향이자 참 집이자 참 가정입니다.
예수님은 위의 곡 제목 그대로 ‘home! sweet home!’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의 진짜 홈인 예수님께 돌아가는 ‘홈컴잉home-coming’입니다. 잊지 못지는 영어 말마디가 있습니다. 바로 ‘homesick at home’, 고향에서 고향을, 집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숙명입니다. 지상어디서든 ‘향수鄕愁의 사람’, ‘그리움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류시화- 라는 옛 법정 스님이, 채준호 신부님이 극찬한 시입니다. 이런 명시는 외워두는 것이 좋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원한 분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인간의 원초적 갈망을 표현한 시입니다.
-물 속에는/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있는 이여/내 안에서 나를 흔드는 이여 물처럼 하늘처럼 내 깊은 곳 흘러서/은밀한 내 꿈과 만나는 이여 그대가 곁에 있어도/나는 그대가 그립다-
바로 여기서 ‘그대’는 우리에겐 ‘예수님’이 됩니다. 우리의 영적 갈망을 충족시켜 주실 분은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갈망하여 찾는 복음의 병자들처럼 우리은 예수님을 찾아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보이는 가시적 성전에 미사가 없다면, 예수님이 계시지 않다면 얼마나 허전하겠는지요.
참으로 우리의 영원한 ‘홈 쉬트 홈home! sweet home!’인 예수님을 만날 때 영육의 온전한 치유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장면이 온통 이를 입증합니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고을이든 촌락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기만 하시면, 장터에 병자들을 데려다 놓고 그 옷자락 술에 그들이 손이라도 대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과연 그것에 손을 댄 사람마다 구원을 받았다.’
이런 간절한 믿음으로 주님을 텃치할 때 온전한 치유입니다. 여기서 ‘구원을 받았다’라는 그리스어 ‘에스존토esozonto’말마디가 심오합니다. 이 말마디는 단지 육체적 치유 그 이상을 뜻합니다. 초기 교회에서 이 단어는 전적인 구원 체험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단지 ‘좋아짐wellness’이 아닌 ‘온전함wholeness’, 즉 다른 말로 ‘귀가歸家home coming’라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체성사가, 성찬전례중 주님의 몸인 성체를 모시는 일이 그리도 고마운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과 일치함으로 온전한 구원의 삶, ‘home! sweet home!’을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진정 참 집이자 고향은 장소나 건물이 아닌 주님과 하나된 공동체요 우리 각자임을 깨닫습니다.
솔로몬은 물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궁극으로 꿈꿨던 주님의 집이 파스카의 예수님을 통해 실현된 것입니다. 솔로몬의 고백은 그대로 주님과 함께 하고 싶은 간절한 열망의 표현입니다.
“주님께서는 짙은 구름 속에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당신을 위하여 웅장한 집을 지었습니다. 당신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영원히 머무르실 곳은 당신의 집인 우리 공동체요 우리 각자의 성전 안에서입니다. 세상 끝날 까지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참고향이자 참 집이자 참 가정입니다.
오늘은 3세기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기간(249-251)에 순교한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아가타’라는 그리스어 뜻 그대로 온전히 ‘선한good’삶을 살다가 순교한 성녀이십니다. ‘홈쉬트 홈home! sweet home!’인 예수님과 일치될 때 선한 삶이요 사랑의 순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구원하시어 온전한 참 삶을 살게 하십니다. 어제 입춘을 지냈습니다만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정말 봄같은 분이십니다. 어제 입춘에는 참 반가운 소식도 있었습니다.
2.4일 입춘날 오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 대표팀과 스웨덴 대표팀의 아이스하키 평가전이 열린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는 남북 단일대표팀을 응원하는 '꽃'과 한반도기 그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북화해와 평화, 통일의 길이 활짝 열렸으며 좋겠습니다. 끝으로 예전 써놓았던 ‘예수님은 봄이다’라는 자작시를 나눔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은 봄이다/봄은 사랑이다 봄이 입맞춘 자리마다/환한 꽃들/피어나고 푸른 싹/돋아난다 예수님은 봄이다/봄은 사랑이다-1999.3-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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