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과 화 다스리기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 (원제 BEEF)이 미국의 권위 있는 에미상의 미니 시리즈-TV 영화 부문에서 작품상, 남녀 주연상 등을 싹쓸이 하며 8관왕을 차지해 화제가 됐다.
에미상이 주는 무게감에다 한국계 이성진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역시 한국계 주연 배우인 스티븐 연이 활약했기에 한국 내에서 더 주목을 받았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운전 중 벌어진 사소한 시비에서 시작된 갈등이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극단적인 충돌로 치닫는 과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 작품이다.
‘성난 사람들’은 에미상 전 주에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도 3관왕에 오르며 작품과 연기 수준을 인정 받았다.
이 드라마가 이토록 상찬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 주인공은 마트 주차장에서 신경전을 벌인 것이 계기가 돼 번갈아 가며 서로 보복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히고 만다. 이들이 타인을 겨냥해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는 중간중간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는 장면과 대사들에서 얼핏 얼핏 설명된다.
남녀 주인공 모두 삶에서 오는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제대로 해소하지 못하고, 자기 통제력을 잃은 채 타인에게 걷잡을 수 없이 분노를 표출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성진 감독은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시대로 인해 악화한 사람들의 고립감을 이런 현상의 근원으로 언급했다. 두 주인공은 표면적으로는 화를 참지 못하고 타인에게 범죄까지 저지르는 캐릭터로 그려지지만, 실상은 마음의병에 시달리는 피해자이기도 하다.
현대인의 분노조절 장애는 이젠 일상적인 것이 된 느낌이다. 점잖은 사람도 운전대만 잡으면 매우 거칠어지곤 한다. 하지만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면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강력범죄의 시점이 되기도 한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발생 범죄 124만7000여 건 중 20% 가까이가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한다. 5건 중 1건은 ‘욱’하는 순간 감정을 참지 못해 발생한 셈이다. 2019년 분노 조절 장애로 치료받은 사람은 2200여명으로 2015녀보다 30% 증가했다는 통계에서도 ‘성난 사람들’의 증가 추세를 짐작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분노 조절이 안돼 저지르는 범죄가 개인 간 충돌의 범위를 벗어나 익명 사회의 타인을 겨냥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묻지 마 범죄’는 대중이 잊을만하면 다시 발생해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참을 인(忍)자가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와 ‘한시를 참으면 백날이 편하다’라는 속담이 있다. 화가 치밀어도 일단 참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인내가 말처럼 그리 쉬운 것 만은 아니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분노를 삭이지 못한다면 분노조절 장애를 의심해 보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이럴 때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마음 챙기기, 명상, 복식호흡 등으로 긴장을 완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심할 땐 약물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한다. 어떤 경우든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마음의 병을 끄집어내어 어루만지지 않는다면 근본 해결에 이를 수 없다.
사회적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다. 주변에 관한 관심과 소통, 사회 양극화 해소 등으로 개인의 고립화를 사전에 막아야 한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대대적으로 눈길을 끄는 배경에는 요즘 사회의 실상과 풀어야 할 숙제가 자리한다. 드라마는 보는 이의 심기를 내내 불편하게 한다. 하지만 주인공들의 소통과 치유를 암시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희망의 씨앗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