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르신들 그간 건강하셨습니까?
꿈=夢이 오랫만에 어르신들께 인사올립니다.
전경으로 군복무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고..
그 추웠던 겨울이 어느새 지나가고 요즘 한낮에는 꽤나 덥더군요..
어찌 다들 건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고 한낮에는 그렇게 더우니..
저야 어차피 하늘색이던 파란색이던 짙은 남색이던 제복을 입으니 상관없겠지만..
우리 어르신들 아침 출근길에 옷 고르기가 쉽지 않으실듯 합니다.
저는 지금 전주에서 복무중이지만..
지난 한주간은 울산에 있었습니다.
좀 기분좋은 일로 갔으면.. 그리고 조금 다른 신분으로 갔으면 했지만 안타깝게도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그러기는 쉽지가 않더군요..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울산에서 큰 시위가 있었고 울산과 경남의 전경들로는 막기가 버거웠던 모양입니다.
서울, 인천, 대전, 전남, 전북등 전국 각지에서 총 30개이상의 전경중대및 의경 기동대 심지어 의경 방범순찰대까지 울산에 투입이 되었고 우리가 떠나는 순간까지 상황이 종료되지 않아서 우리역시 또다른 전북청 소속 전경대에게 상황 인수 형식으로 교대를 하고 울산을 떠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오늘 오후에 울산에서 큰 집회가 있을듯 하군요..
우리가 어제 떠나기전 전달받은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저 역시 울산에서 쇠파이프 각목은 기본이고 화염병까지 봤고 우리부대 소속 대원들 또한 생명의 위협을 받았으며 부상자 역시 속출했습니다.
허나 비단 전의경들 뿐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시위대'라 칭하는 노동조합원들은 우리보다 더 많은 부상과 피해를 입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적어도 대원들은 각종 진압장비와 자신을 보호할 진압복, 헬멧과 방패, 그리고 명확한 지휘체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도 상황이 격할때는 제 자신의 안전을 위해 시위대를 향해 봉을 휘두를수밖에 없었고 잡아먹을듯 달려들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들이 왜 자신이 수배자 명단에 오르고 생명의 위협을 받을수밖에 없는 시위현장에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볼트와 너트를 던지며 내가 서있는 곳을 지나가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그날의 상황이 종료되고 차가운 강당 바닥에 아무렇게나 몸을 뉘고 눈을 감았을때야 비로소 한번 생각해 볼 시간이 생겼습니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대로 절박한 어찌보면 나보다 더 절실하고 피할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리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23년을 살면서 울산에 단 두번 가봤던가?
고등학교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가서 공장 견학차 한번 가봤고..
포항에 있는 삼촌댁에 놀러갔을때 삼촌이 조카 맛있는것 먹여준다고 울산까지 가서 고래고기를 먹여주셨던것..
그 외에 울산은 저에게 꿈같은 곳일 뿐이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이 지역구를 갖고 있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어르신들이 많이 계신곳, 가끔 뉴스에서 울산 어디 공장 근로자들이 파업을 했다는 기사를 접해도 "그런가보다.. 별일이야 없겠지.." 라는 생각을 했고.. 그곳에 가면 TV에서 볼수있는 수많은 거대한 공장들이 있고 어디서든 기계가 돌아가는 힘찬 소리를 들을수 있는곳 사람들은 보두 부지런하고 자기일에 충실하고 자기 생활에 상당부분을 만족하며 살아가는 곳이라는 막연한.. 어찌보면 꿈속의 울산은 제게있어 율도국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번에 가본 울산은 그야말로 전쟁터였습니다.
한쪽에는 시커먼 옷을 입고 방패를 든 로마병정같은 사람 2,000명정도가 포진하고 건너편에는 하얀 헬멧과 청바지 그리고 하얀 마스크에 쇠파이프를 든 사람들이 버티고 서서 서로를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는..
왜 이땅에서 이런일이 벌어져야만 하는지..
슬퍼하지 않을수 없었습니다.
서로 화나는일 있으면 대화로 해결하고 미소지을수 있는 선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초등학생도 알고있는 것을 왜 모르는지..
왜 굳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감정의 골을 깊이 해야만 하는지 어렸을때는 그게 어른들의 삶의 방식이라고만 생각해왔지만..
이제와서 다시 그 생각을 곱씹어보니.. "허 참.. 나이먹기 두렵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하지 않더라도.. 이곳 대한민국 만큼은.. 좀더 평화롭고 사람들이 온갖 욕을 입에 답지 않고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갔으면.. 하는 아직은 세상물정 모르고 어리기만 한 꿈=夢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번 울산 지원에 있어서 또하나 아쉬웠던 점은..
동물농장 님(아직도 이곳에 들르시나??)을 비롯한 수많은 울산에 계신 어르신들을 아무도 뵙지 못하고 왔다는점...
그리고 가까운 부산에 시금치님 마이더스님 등 많은 부산어르신들도 전화한번 못드리고 왔다는점...
안타깝습니다..
오래 함께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인사한번은 하고 "꿈=夢이라는 어리고 버릇없는녀석이 이렇게 생겨먹었습니다." 하는 얼굴도장이라도 찍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새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우리'어르신들 이해해 주시겠습니까?
항상 이곳에서 어르신들께 버릇없게 구는점 너그러운 미소로 대해 주시는점.. 감사드리고 또한 용서받고 싶었는데.. 이제 그 '버릇없는짓'이 하나더 늘었군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번 울산 지원에서 즐거웠던 점이 있다면..
우리 식사를 제공해 주시는 식당 아주머니들이 너무 친절했답니다.
다들 한창나이인지라 먹는 양이 엄청나고 아주 식당 기둥을 뽑아서 삶아먹을듯 달려들어도 미소로 일관해 주시고 "밥은 걱정말고 먹고싶은만큼 먹으라"며 아예 양푼에 밥을 퍼주시던 식당이름은 정확이 기억이 안나지만 시청앞 뚝배기국밥집 사장님 그리고 서부경찰서 근처의 쌈밥짐 국밥짐 아주머니들..
그렇게 항상 미소짓는모습이.. 뭐랄까.. 제가 그간 생각해왔던 꿈속의 울산 시민같다고 할까..??
하여튼 바보같은 말이었고.. (사실은 밥과 휴가가 가장 중요한 군바리의 진심일지도... )
어딜가나 쭉쭉 뻗어있는 도로와 대한민국 공업의 핵심이라는 말이 실감날듯한 공업지역은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울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상황이 종료되면...
울산이라는 도시에 다시는 사람들의 욕설과 함성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 꿈속에서처럼 사람들의 잔잔한 미소와 꿈많은 아이들이 건강하고 자기 꿈을 간직하며 자라는 건강한 소리만 들렸으면 합니다.
그래서 "울산은 대한민국경제의 심장" 이라는 제 가슴속에 간직해 왔던 한마디가 잘 어울리는 도시였으면 합니다.
다음에 다시 울산에 가게 될때..
그곳이 그런 곳이었으면.. 하는 꿈을 꿔 봅니다.
첫댓글 꿈몽!! 건강하게 잘있다니 다행이네요. 울산에서 큰 고생하였군요. 보다시피 모두들 잠수타고 지내는 중입니다. 다시 한번 뭉치는 날을 기다려 봅니다.꿈몽님! 일단 몸 관리 잘하고... 나중에 웃으면서 소주 한잔해요
수고가 많았네요. 거기에 이렇게 장문의 글까지 올려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