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주의와 주의주의
주지주의(主知主義, intellectualism)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인 토마스주의를 의미하고,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는 영국 프란체스코 수도사인 존 던스 스코터스의 철학인 스코터스주의(Scotism)를 의미한다.
주지주의는 의지보다 지성을 우위에 두고, 지성이 우주든 인간의 행위에서든 기본적 근거라고 본다. 이에 반해
주의주의는 의지를 지성과 감성보다 우위에 둔다.
주지주의는 이성주의와 많은 면에서 유사하다. 지성주의는 지식이나 칭의의 주요한 근원을 이성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주지주의는 더 높은 지성을 추구하려고 헌신하려는 경향성을 갖는다. 냉정한 감성보다 초월적인 것을 추구한다.
형이상학에서 주의주의는 중세시대에 발전된 이론으로 지성의 재능이 의지의 지능보다 앞서거나 우월하다고 본다. 주지주의는 의지 자체는 지성에 의해 결정되고 의지의 결정은 선하다고 지성이 인지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주지주의자는 신학이 본질적으로 실천적인 것보다 사색적인 학문으로 보고, 하늘이 환상적인 명상의 상태라고 본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 철학과 유사하다.
주지주의자들 중 대표적 인물은 아베로에스(Averroes), 토마스 아퀴나스 및 독일의 신비주의자 마에스터 엑하르트가 있다. 현대에 와서는 스피노자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욕망이 미완성을 가르친다고 믿고 열망이 인간 속박의 근원으로 본다. 모든 것이 지성과 이성의 관계에서 순전하다면 열망은 안정을 찾고 마음은 열정에서 벗어난다고 한다. 이상적 행복은 하나님의 지성적 사랑을 경험한다고 말한다.
주의주의는 의지를 지성과 감성보다 우위에 있고 우주와 인간의 행위에서 기본임을 말하는 형이상학적이고 경험적인 견해이다. 주의주의는 실재의 궁극적 성격은 의지의 어떤 형태로 본다.
가장 초기에는 중세 스콜라철학자 존 던스 스코터스를 들 수 있다. 주의주의는 모든 철학적 문제들에서 신적 의지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는 철학이다. 스코터스에 따라는 대상이 선하다고 결정하는 것은 의지며, 의지 자체는 다른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이 철학은 유대인 철학자 아니체브론(Avicebron, 1021~1058년)과 옥캄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에 의해 절정을 이룬다.
19세기에 이르면 임마누엘 칸트를 들 수 있다. 순전한 이성보다 실천을 우위에 두는 그는 인뉴가 궁극적인 실재를 아는데 지성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실재가 영적 성격이 확실한 것처럼 행동하는 책임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에 따르면 두 가지로 구별한다.
① 이성적 주의주의는 고트리브 피흐테가 주장하는 것으로 세상과 그 모든 활동은 실천적 이성의 활동을 위한 물질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실천적 이성이란 의지가 완전한 자유와 완전한 도덕적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단이다.
② 비이성적 주의주의는 아더 쇼펜하우어가 주장하는 것으로 지성이 제 이의 현상을 나타내는 것에 비해 의지가 비이성적이고, 비인식적이다. 모든 활동은 의지의 힘과 존재가 지속적으로 강조되지만 지성적 작인에 관한한 무용지물이다.
주지주의와 주의주의의 족보
플라톤 | 아스리스토 텔레스 |
이데아 ↓ 본질 ↓ 현상인식 ↓ 신이 있기에 피조물이 있다. ↓ 어거스틴, 안셀롬 ↓ 프란시스코회 ↓ 주의주의 믿음을 전제로 지식을 얻으려는 것 (믿으면 안다) | 에이도스 ↓ 현상 ↓ 본질인식 ↓ 피조물을 보면 신이 있다는 것을 안다. ↓ 보에티누스, 토마스아퀴나스 ↓ 도미니크회 ↓ 주지주의 알고보니 믿는 것 (알아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