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이치 한 번 뒤집힘일세 (天理一翻覆)
우리 인생이 잘하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는데 그간에 하늘의 이치가 뒤집어 지는 수가 자주 있으므로 평소에 정의로움과 덕행을 게을리 하지 말 것을 깨우쳐 주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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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유고 제4권 시(詩) 이혜중(李惠仲) 부인(夫人) 형수씨에 대한 만사
<명재 윤증 선생이 고종사촌 형수 죽서 이민적 선생 부인 창원황씨의 죽음을 기리다.>
우리 고모 옛날의 경강과 같아 / 我姑古敬姜
규문의 법도 매우 엄격했는데 / 閫範甚莊肅
며느님 훌륭하다 칭찬하시며 / 獨稱子婦賢
만년에 얻은 큰 복 위안 삼았네 / 自慰晩景福
부인은 명문가의 따님으로서 / 夫人出名門
타고난 자태 실로 청화(淸和)하였지 / 天姿儘淸穆
공손하게 시부모님 봉양하면서 / 敬恭奉晨昏
온화함과 인자함 잃지 않았고 / 溫惠以自牧
집안 꾸려 나가는 데 법도가 있어 / 宜家叶女則
친척 간에 칭찬이 자자하였네 / 令譽洽親族
군자의 훌륭한 덕 짝할 만하여 / 克配君子德
성상께서 영화로운 봉작(封爵) 내렸고 / 榮封被天祿
슬하에 뛰어난 자식들 두어 / 堦庭簇蘭玉
길상이 손에 가득 잡힐 듯했네 / 吉祥藹盈掬
그런데 어인 일로 불행이 닥쳐 / 如何奄不弔
중년으로 대낮에 슬피 곡했나 / 中身痛晝哭
큰아들 일찍 높은 벼슬하더니 / 伯子早致貴
어찌하여 화변이 또 급히 닥쳤나 / 禍變又何暴
누가 생각했으랴 육아의 통한 / 孰謂蓼莪冤
혹독하게 눈앞에서 거듭 볼 줄을 / 眼前重見酷
슬퍼라, 차마 말을 할 수 없으니 / 哀哉不忍說
하늘의 이치 한 번 뒤집힘일세 / 天理一翻覆
외롭게 미망의 한 슬퍼하더니 / 煢煢未亡悲
검이 합할 시기 되려 빨리 닥쳤네 / 劍會還相促
옛날 살던 곳으로 상여 돌아와 / 靈輀返舊居
새로 정한 장소에 장사 지내네 / 窀穸開新卜
셋째 아들 끝까지 효를 마쳤고 / 三胤竟終孝
맏손자가 의젓하게 승중(承重)을 했네 / 孤孫儼重服
다른 사람 오히려 부러워하니 / 他人猶羨此
말하려면 눈물만 줄줄 흐를 뿐 / 欲言淚蔌蔌
남은 경사 응당 멀리 미칠 터이나 / 餘慶應更遠
음덕(蔭德)을 끼쳐 주길 기원한다오 / 陰隲是所祝
평생토록 나는 우리 외종 형님의 / 平生吾外兄
의리와 덕을 깊이 사모하였고 / 德義嘗悅伏
밥상 높이 들던 날 만날 때마다 / 每見齊眉日
은정으로 시동생을 대해 주었네 / 恩情視小叔
지금은 이미 늙고 병든 몸이라 / 如今已老病
강을 사이에 두고 가지 못하니 / 隔江負匍匐
이 생애 죽고 사는 온갖 감회를 / 存沒百感懷
한 폭의 만사에 다 쓰지 못하네 / 不盡詞一幅
명재의 죽은 누이가 노년에 사자(嗣子)의 참혹한 화(禍)를 보았고, 세상을 떴을 때는 제사를 주관할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시에서 운운한 것이다.
[주-D001] 이혜중(李惠仲) :
이민적(李敏迪 : 1625 ~ 1673)으로 혜중은 그의 자이다. 본관은 전주, 호는 죽서(竹西)이며, 부친은 영의정 이경여(李敬輿)이다. 숙부 이정여(李正輿)에게 입양되었는데, 양모가 파평 윤씨(坡平尹氏)로 대사간 윤황(尹煌)의 딸이다. 그러므로 이민적은 명재에게 고종사촌 형이 된다. 윤문거(尹文擧)의 문인이다. 1656년 별시 문과에 합격한 뒤 여러 관직을 거쳐 참판에 이르렀다. 저서로 《죽서집(竹西集)》이 있다. 부인은 창원 황씨(昌原黃氏)로, 병자호란 때 척화론(斥和論)를 폈던 황일호(黃一晧)의 딸이다. 《陶谷集 卷10 大司憲竹西李公神道碑銘》
[주-D002] 대낮에 슬피 곡했나 :
남편을 잃고 곡하는 것을 말한다. 춘추 시대 때 노(魯)나라 재상 문백(文伯)의 어머니 경강(敬姜)이,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낮에만 곡을 하고, 나중에 아들 문백이 죽자 밤낮으로 곡을 했는데, 공자(孔子)가 이를 두고 경강이 예(禮)를 안다고 논평했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禮記 檀弓下》
[주-D003] 큰아들 …… 닥쳤나 :
큰아들은 병조 판서를 지낸 이사명(李師命 : 1647 ~ 1689)으로 당쟁에 깊이 휩쓸려 숙종 대의 환국(換局) 정국에서 부침(浮沈)을 겪다가 유배지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주-D004] 육아(蓼莪)의 통한 :
육아는 《시경》 소아(小雅)의 편명으로, 돌아가신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고 살아생전에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것을 서글퍼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자식 된 입장을 두고 한 말이다.
[주-D005] 혹독하게 …… 줄을 :
부인이, 그 아들이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과 손자가 아버지를 잃고 슬퍼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는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주-D006] 검이 합할 시기 :
부부가 저승에서 다시 만나는 것으로, 합장(合葬)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진(晉)나라 때 뇌환(雷煥)이 용천(龍泉)과 태아(太阿)라는 두 보검을 얻어 그중 하나를 장화(張華)에게 주었는데, 후에 장화가 주살(誅殺)당하자 그 칼의 소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뇌환이 죽은 뒤 그 아들이 칼을 가지고 연평진(延平津)을 지날 때 칼이 갑자기 손에서 벗어나 물에 떨어져 사람을 시켜 물속을 찾게 하였더니, 두 마리 용이 서리어 있을 뿐이고 보검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을 ‘연진검합(延津劍合)’ 또는 ‘연진지합(延津之合)’이라 하여 다시 합하게 되는 인연이나 부부가 죽은 뒤에 합장하는 것을 비유하게 되었다. 《晉書 卷36 張華傳》 여기에서는 이민적이 1673년(현종14)에 세상을 뜬 뒤 1701년(숙종27) 부인 창원 황씨(昌原黃氏)가 뒤이어 별세하여 합장하게 되었기 때문에 한 말이다. 《疎齋集 卷16 先考竹西府君行狀》
[주-D007] 셋째 아들 …… 마쳤고 :
셋째 아들은 다행히 어머니보다 앞서 세상을 뜨지 않고 살아 있다는 말이다.
[주-D008] 승중(承重) :
장손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일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맏손자가 할머니 상의 상주(喪主) 노릇을 하는 것을 뜻한다.
[주-D009] 다른 …… 부러워하니 :
다른 사람은 명재 자신을 말한다. 시 하단에 있는 원주(原註)를 참고하면, 명재의 누이가 살았을 때 불행히 자식을 잃고 후사(後嗣) 없이 세상을 떴던 것에 비해 부인은 그래도 자식과 손자가 있으니 부럽다는 말이다.
[주-D010] 밥상 높이 들던 날 :
제미(齊眉)는 거안제미(擧案齊眉)의 준말로, 후한(後漢) 양홍(梁鴻)의 아내가 남편을 감히 마주 보지 못하고 밥상을 눈썹 높이에 맞추어 들었던 고사에서 나온 말인데, 부부끼리 서로 공경하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이다. 《後漢書 卷83 梁鴻列傳》 여기에서는 남편 이혜중이 살아 있던 당시를 가리킨다.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06
挽李惠仲夫人嫂氏
我姑古敬姜。閫範甚莊肅。獨稱子婦賢。自慰晩景福。夫人出名門。天姿儘淸穆。敬恭奉晨昏。溫惠以自牧。宜家叶女則。令譽洽親族。克配君子德。榮封被天祿。階庭簇蘭玉。吉祥藹盈掬。如何奄不弔。中身痛晝哭。伯子早致貴。禍變又何暴。孰謂蓼莪冤。眼前重見酷。哀哉不忍說。天理一翻覆。煢煢未亡悲。劍會還相促。靈輀返舊居。窀穸開新卜。三胤竟終孝。孤孫儼重服。他人猶羨此。欲言淚䔩䔩。餘慶應更遠。陰隲是所祝。平生吾外兄。德義嘗悅伏。每見齊眉日。恩情視小叔。a135_108a如今已老病。隔江負匍匐。存沒百感懷。不盡詞一幅。亡姊臨老。見嗣子慘禍。其終也。饋奠無主者。故篇內云云。
ⓒ 한국고전번역원 | 영인표점 한국문집총간 |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