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빛의 실내에서
나와 너는 가만히 앉아 휘날리는 눈을 바라본다
온도의 빛과 빛의 온도를
발음해보면서 궁글어지는 맛
호박 몇 조각을 뒤집어보면서
“눈은 방향이 없구나”
한낮의 호박과 호박빛의 환한 속내를
어둡게 들여다볼 것인지 궁금해진다
둥근 유리 주전자 속에서
오래도록 우러나는 호박
물속에서 세 배쯤 커 보인다
색깔을 밀어내면서
향은 풀어지고 뒤섞인다
옅어진 물빛에 호박이 스며 있다
기억이 났다 실처럼 오래 풀리느라
컴컴해진 실내에서
차를 마시고
서로 같아진 우리의 색
누군가는 밖으로 나갔다
너는 이곳에 없어도
누군가는 만족스럽다
“내가 정물처럼 앉아 있으면
당신이 나를 그려주기를,
사람으로”
눈이 그쳤고
실내가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은은하게 빛나던 색을 우리는 알았다
-『제 41회 김수영문학상 수상작』2022 -
김석영은 2015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는 수상 소감에 “시의 반대편을 통해 시를 드러내는 일, 그것이 반시(反詩)로써 자신의 세계를 쌓아 올린 김수영의 시정신이라 믿는다”라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n번째 첫 번째 시집’을 내는 시인이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점도 눈에 뜨인다.
김석영 시인은 추계예술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시와 반시’ 신인상을 받으며 데뷔를 했으며, 시집 '밤의 영향권'을 발간한 바 있다.
〈미디어 시in〉
Tearful Face, Kien / Between calm and Passion (냉정과 열정사이/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