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이불사(鍥而不舍)
새기다가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내심을 갖고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이다.
鍥 : 새길 계(金/9)
而 : 말 이을 이(而/0)
不 : 아닐 불(一/3)
舍 : 버릴 사(舌/2)
출전 : 순자(荀子) 第1 권학(勸學)편
이 성어는 순자(荀子) 제1 권학(勸學)편에 나오는데, 순자는 배움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된 의지와 실천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積土成山, 風雨興焉;
積水成淵, 蛟龍生焉;
積善成德, 而神明自得, 聖心備焉。
흙이 쌓여 산을 이루면, 그곳에서 바람과 비가 일어나게 되며, 작은 물이 모여 못을 이루게 되면 교룡(蛟龍)이 생기게 되나니, 선을 쌓아 덕을 이루면 신명(神明)함을 스스로 체득하게 되어, 성스런 마음이 갖추어지게 된다.
故不積蹞步, 無以致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海.
그러므로 작은 걸음이 모이지 않으면 천리 길에 이르지 못하며, 작은 개울이 모이지 않으면 강이나 바다를 이루지 못한다.
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功在不舍.
잘 달리는 천리마도 한 번에 열 걸음을 뛸 수는 없으며, 야위고 둔한 말일지라도 열배로 노력하면 천리마를 따를 수 있으니, 성공은 포기하지 않는데 있는 것이다.
鍥而舍之, 朽木不折;
鍥而不舍, 金石可鏤
자르다가 그만 두면 썩은 나무도 자를 수 없지만, 새기기를 그만 두지 않는다면 쇠나 돌에도 새길 수 있다.
螾無瓜牙之利, 筋骨之强, 上食埃土, 下飮黃泉, 用心一也.
지렁이가 날카로운 손톱이나 이빨도 없고 강한 힘줄이나 뼈가 없어도 위에서 더러운 흙을 먹고 아래에서 누런 물을 마실 수 있는 이유는 그 마음가짐이 한결같기 때문이다.
계이불사(鍥而不舍)
새기다가 중단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내심을 갖고 일을 계속한다는 말이다.
작은 일이라도 꾸준히 이어간다면 훌륭한 결실을 볼 수 있다. 이에 관한 속담과 성어도 끊임없이 등장하며 나태를 꾸짖었다. 속담은 '티끌 모아 태산'이나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가 먼저 나온다.
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을 필두로 자만에 찬 이백(李白)을 깨우친 노파의 마부작침(磨斧作針)이나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수적석천(水滴石穿), 정신을 집중하면 화살로 바위를 관통한다는 중석몰촉(中石沒鏃) 등의 고사도 많이 따른다.
쇠나 돌에 새기기(鍥而)를 그만 두지 않는다(不舍)는 이 말도 마찬가지다. '순자(荀子)'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의 유학자 순자가 그의 사상을 모은 책 이름이다.
그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며 맹자(孟子)에 맞서 유교를 재정비했다고 평가받는다. 32편이 있는 이 책의 첫 편이 권학편(勸學篇)이다.
여기에서 순자는 배움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일관된 의지와 실천이라며 온갖 좋은 비유를 들고 있다.
자르다가 그만 두면 썩은 나무도 자를 수 없지만, 새기기를 중지하지 않는다면 쇠나 돌에도 새길 수 있다(鍥而舍之 朽木不折 鍥而不舍 金石可鏤)에서 딴 것이 이 성어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꾸준히 하는 자세는 어디에도 통하는 말이지만 특히 배우는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더 새겨야 할 말이다.
흙이 쌓이면 산을 이루고(積土成山), 물이 모이면 연못을 이루며(積水成淵), 선을 쌓으면 덕을 이룬다(積善成德)는 말이 이 구절의 앞부분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고려 때 문신 추적(秋適)이 쓴 명심보감(明心寶鑑)에 인용된 말이 나온다. '반걸음이라도 모으지 않으면 천리 길에 이를 수 없고, 작은 개울이 없으면 강이나 바다를 이루지 못한다(不積蹞步 無以致千里 不積小流 無以成江海).'
노자(老子)도 말을 보탠다. '천리 길을 가려 해도 처음 내딛는 한 걸음이 계속돼야 한다(千里之行 始於足下)'고 했다. 노자(老子)의 말이다.
조선 후기 시조시인 김천택(金天澤)의 시조 종장이다. '가다가 중지 곧 하면 아니 감만 못하니라.' 모두 꾸준히 부지런히 해야 일을 성취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교훈대로 잘 받들어 훌륭하게 된다면 좋으련만 최고의 자격을 갖춘 젊은이들이 적잖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는 현실은 답답하기만 하다.
▶️ 鍥(새길 계, 새길 결)는 형성문자로 锲(계)는 간자(簡字), 鐑(계)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쇠 금(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契(계, 결)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鍥(계, 결)는 ①새기다 ②조각(彫刻)하다 ③자르다 ④절단(切斷)하다 ⑤끊다 ⑥낫(풀 따위를 베는 기구) 그리고 ⓐ새기다(결) ⓑ조각하다(결) ⓒ자르다(결) ⓓ절단하다(결) ⓔ끊다(결) ⓕ낫(풀 따위를 베는 기구)(결)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새기다가 중도에 그만두지 않는다는 뜻으로 인내심을 갖고 일을 계속해야 한다는 말을 계이불사(鍥而不舍) 등에 쓰인다.
▶️ 而(말 이을 이, 능히 능)는 ❶상형문자로 턱 수염의 모양으로, 구레나룻 즉,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을 말한다. 음(音)을 빌어 어조사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而자는 ‘말을 잇다’나 ‘자네’, ‘~로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而자의 갑골문을 보면 턱 아래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而자는 본래 ‘턱수염’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지금의 而자는 ‘자네’나 ‘그대’처럼 인칭대명사로 쓰이거나 ‘~로써’나 ‘~하면서’와 같은 접속사로 가차(假借)되어 있다. 하지만 而자가 부수 역할을 할 때는 여전히 ‘턱수염’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한다. 그래서 而(이, 능)는 ①말을 잇다 ②같다 ③너, 자네, 그대 ④구레나룻(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⑤만약(萬若), 만일 ⑥뿐, 따름 ⑦그리고 ⑧~로서, ~에 ⑨~하면서 ⑩그러나, 그런데도, 그리고 ⓐ능(能)히(능) ⓑ재능(才能), 능력(能力)(능)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30세를 일컬는 이립(而立), 이제 와서를 이금(而今), 지금부터를 이후(而後), 그러나 또는 그러고 나서를 연이(然而), 이로부터 앞으로 차후라는 이금이후(而今以後), 온화한 낯빛을 이강지색(而康之色)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舍(집 사/버릴 사, 벌여놓을 석)는 ❶형성문자로 捨(사)의 간자(簡字), 舎(사)는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혀 설(舌; 혀)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余(여, 사)의 생략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余(여, 사)는 여유(餘裕) 있음을, 口(위)는 건물의 모양으로 뜻이 합하여 舍(사)는 '나그네가 머무는 곳', 또 '쉬다', '내버려 두다' 따위의 뜻에도 쓴다. 또한 舍(사)는 나중에 亼(집)과 十(십), 口(구)를 합(合)한 글자, 또는 人(인)과 舌(설)을 합(合)한 모양으로 생각되었다. ❷상형문자로 舍자는 '집'이나 '가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舍자는 舌(혀 설)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舍자는 舌자가 부수로 지정되어는 있지만 '혀'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舍자의 금문을 보면 집을 받치는 토대 위에 기둥과 지붕이 얹어져 있었다. 이것은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간이 쉼터를 그린 것이다. 舍자에 아직도 '휴식하다'나 '여관'이라는 뜻이 남아 있는 것도 본래는 간이 쉼터를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일반적인 '집'이나 '가옥'을 뜻하고 있다. 그래서 舍(사, 석)는 ①집, 가옥(家屋) ②여관 ③버리다 ④포기하다 ⑤폐하다 ⑥내버려 두다 ⑦개의(介意)하지 않다 ⑧기부하다 ⑨희사하다 ⑩바치다 ⑪베풀다(일을 차리어 벌이다, 도와주어서 혜택을 받게 하다) ⑫놓다 ⑬쉬다, 휴식하다 ⑭화살을 쏘다 그리고 벌여놓을 석의 경우는 ⓐ벌여놓다(석) ⓑ풀리다, 의심이 사라지다(석)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집 당(堂), 집 우(宇), 집 택(宅), 집 실(室), 집 가(家), 집 궁(宮), 집 옥(屋), 집 저(邸), 집 원(院), 집 호(戶), 집 헌(軒), 집 각(閣), 집 관(館)이다. 용례로는 집의 안채와 따로 떨어져 있어 바깥 주인이 거처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곳을 사랑(舍廊), 기숙사에서 기숙생들의 생활을 감독하는 사람을 사감(舍監), 정부 고관의 개인 소유의 저택을 사관(舍館), 남에게 자기 삼촌을 일컫는 말을 사숙(舍叔), 자기의 형을 남에게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사형(舍兄), 남에게 대하여 자기 아우를 겸손하게 일컫는 말을 사제(舍弟), 집을 달리 일컫는 말을 사옥(舍屋), 지주를 대리하여 소작권을 관리하는 사람을 사음(舍音), 기숙사나 숙사 따위의 규칙을 사칙(舍則), 군영의 건물을 영사(營舍), 감옥으로 쓰이는 집을 옥사(獄舍), 풍치가 아름다운 곳에 지어 놓고 거처하는 정자 모양의 집을 정사(亭舍), 나아감과 머무름을 취사(趣舍), 관청의 건물을 청사(廳舍), 곳간으로 지은 집을 고사(庫舍), 정신을 수양하는 곳을 정사(精舍), 역으로 쓰는 건물을 역사(驛舍), 가축을 기르는 건물을 축사(畜舍), 승려가 불상을 모셔 놓고 불도를 닦으며 교법을 펴는 곳을 승사(僧舍), 관리가 살도록 관청에서 지은 집을 관사(官舍), 정당의 사무소로 쓰는 건물을 당사(黨舍), 객지에서 기거하는 집이나 딴 곳에서 온 관원을 대접하여 묵게 하는 집을 객사(客舍), 사람이 사는 집을 가사(家舍), 일정한 돈을 받고 여객을 치는 집을 전사(傳舍), 외국 사신을 머물러 묵게 하는 집을 관사(館舍), 학문을 닦는 곳 또는 그 건물을 학사(學舍), 집짐승을 기르려고 지은 우리를 목사(牧舍), 앓는 사람을 수용하는 집을 병사(病舍), 자기의 이전 행위를 버리고 타인의 선행을 본떠 행함을 일컫는 말을 사기종인(舍己從人), 의견이 서로 달라서 일을 결정하지 못함을 일컫는 말을 작사도방(作舍道傍), 뜻하는 바가 천리에 어긋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불사명(志不舍命),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해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한데서 잠을 일컫는 말을 반수발사(反首拔舍), 논밭과 집을 구하고 문의하여 산다는 뜻으로 자기 일신 상의 이익에만 마음을 쓰고 국가의 대사를 돌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구전문사(求田問舍)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