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네마(Nema)는 운전 중에 갑자기 손가락질을 하면서 주의를 끌었다. 길가에 다람쥐처럼 작은 놈이 조르르 쫓아간다. 두더지도 아니고 쥐도 아닌것이 귀엽게도 뛴다. 우리 운전사는 ‘조룸’이라고 몽골말만 해서 확실히 알 수가 없지만 다람쥐 과의 마멋(marmot)임에 분명하다.
달리는 차 옆으로 자꾸 튀어나온다, 요놈들 어찌 재바르게 움직이는지, 도토리 구르듯 쪼르르 달리다가는 토끼처럼 쫑긋 서기도 하고, 미리 파두었던 풀 속의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 처음엔 눈에 띄질 않았는데 한번 네마가 환기시킨 뒤로는 어찌나 많은지 수도 없이 튀어나왔다. 울퉁불퉁 풀밭의 흙길을 빨리 달릴 수가 없을 때는 그놈들이 심심찮게 내게 재롱을 떨어주었다.
혹한의 이 북녘에서 겨울이면 너희는 어떻게 사니? 도토리도 없고 나무조차 없는 들판인데, 그나마도 두껍게 얼어붙을 게 아닌가. 눈까지 많이 쌓여 작은 구멍마저 덮어버린다면 숨이라도 그 속에서 제대로 쉴 수 있는지 걱정스러웠다. 내가 몽골어를 하든지 운전사가 영어를 좀 했으면 좋으련만. 무얼 먹고 사는지 궁금하구나. 그러나 기후풍토에 적응하는 동물 세계에 새삼 경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마멋은 북반구(北半球)에만 널리 퍼져있고 곳에 따라서 그 이름들이 다르기도 하며 종류도 다양하다고는 들었다. 미국에선 그라운드 혹(ground hog), 우드척(woodchuck)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그들 중의 한 종류이기도 하다. 해마다 2월 초순이면 미동북쪽에선 긴 겨울에 조바심 나게 봄이 아직도 얼마나 남았는지 그라운드 혹으로 점을 친다.
그래서 여전히 달력에다 명일처럼 표식을 하고 텔레비전 뉴스에도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 주에서 하는 그 비공식 행사를 해마다 방영하지 않던가. 그라운드 혹은 토끼만 하게 큰 것 같았으나 여기 조룸은 작은 종류도 있구나. 일전에 우리가 묵었던 게르 근처에서 가죽을 벗기던 그것이 바로 이 마멋이었다. 그 고기를 몽골사람들은 즐겨먹고 털가죽은 이용한다.
알고 보니 마멋은 가을부터 봄까지 아예 동면(冬眠)하니 혹한도 문제가 없구나. 자주 튀어나오고 튀겨가는 귀여운 놈들을 내다보면서 놀라운 적자생존(適者生存)의 법칙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저들의 적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매와 독수리들이 여기 번성하는 연유가 저것들을 먹이로 할 것이 분명한데 맑은 하늘 밑 빈들을 내려다볼 때면 포착하기도 쉬울 것이니까.
물론 재빨리 구멍으로 피하겠지만 땅에서 바쁜 저들이 하늘까지 어이 방어하나. 게다가 사람들도 그들을 사냥의 표적으로 삼으니 말이다. 어떤 곳에서는 그 사이즈가 제법 크고 털이 좋아서 사람들이 모피 사냥을 한다고 했다. 여긴 토끼보다는 작고 다람쥐만하거나 그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의 것들도 있었으니 첨엔 내게 낯설었지만 참으로 귀여웠다. 들을 달리며 자주 보아왔기에 이젠 정까지 들었지 뭔가.
몽골 음식 중에는 호르혹(Khorkhog)이라는 게 있다. 양이나 마멋을 잡아서 목을 자르고는 내장을 그리로 빼낸 다음에 그 속에다가 불에 달군 돌을 채우고서 입구를 꿰어 묵는다고 했다. 그걸 통째로 불 위에 구우면 겉 거죽 털이 타면서 안팎으로 익겠지.
고기를 손으로 뜯어 먹을 때 그 속에 넣었던 뜨거운 돌을 옆 사람에게 돌려 전달한다고 했다. 그 기름투성이에다가 뜨거운 그 돌들이 건강에 좋다고 믿어 왔다니까. 마멋의 가죽에는 중세기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 세균이 있다는데 그것이 몽골의 유럽정복이 가져온 병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8월 하순 이후에는 괜찮다고는 하는데 글쎄,서양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조심스럽겠지?
흑사병, 프랑스의 작가 카뮈(Abert Caus)가 1947년에 펴낸 장편 소설 ‘역병( La Pest)’이 바로 그 때의 참혹함을 그려낸 작품이었다. 실존주의 철학과 함께 우리에게도 잘 알려졌던 소설이었다. 페스트(The Plague)라는 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 인간이 겪는 불안과 절망을 묘사하고 그래도 거기서 희망을 그리려던 작품이었다.
그 역병을 치료했던 의사의 기록을 바탕으로 썼다는데 까뮈는 그 무대를 알제리아 오란(Oran)으로 하고 의료진들과 여행객들과 거지들까지 인간이 겪는 고통과 비극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제기한다. 2차세계대전 후에 절망 속에서 불합리성(the absurd)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기술하려했다.
이토록 그 병은 잔혹함과 전율 감으로 유럽을 휩쓸었던 역사적 현실이었으니까. 1347-1351년 사이에 유럽 인구의 절반이나 휩쓸어 갔을 것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은 7천5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온통 유럽을 뒤집어놓은 소름끼치는 사건이었다. 중국에서 시작해서 중앙아시아와 인도및 중동을 거쳐 유럽으로 퍼졌다는 후대의 연구가 있지만 중국에서의 발병에 관한 연구는 아직 없다고 한다.
이 역병이 쓸고간 뒤에 유럽은 노동력이 모자라 경제적 사회적 변혁과 개혁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로 인하여 자본주의가 싹텄다는 이론까지 대두하게 되었으니 그 파급 효과는 대단했다는 말이다. 세균에 의한 역병인데 벼룩이가 옮겼다는 주장이고 벼룩은 검은 쥐가 날랐다고도 했다.
그러나 그 박테리아는 몽골군들이 유럽으로 쳐들어올 때 아시아에서 날라왔다는 것이다. 하기는 몽골군이 흑사병으로 죽은 시체를 공격하는 성루에 걸어서 전략적으로 이용을 했다는 기록은 있는 모양이다. 몽골 사람들은 면역이 되었을 가?
그 페스트균이 바로 이 마멋을 먹고 그 가죽을 사용한 칭기즈칸의 몰골 군들이 14세기에 유럽으로 옮겨왔다는 주장이 있다. 일명 이 역병을 ‘쥣병,’ 혹은 서역(鼠疫)이라고도 부르는 이유가 그 세균이 쥐와 마멋과 같은 동물들에게서 옮겨오기 때문이었다. 이 무서운 급성 전염병은 오한과 고열을 일으키고 심한 두통에다가 권태감과 현기증이 일어난다고 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의식이 흐려지다가는 죽는다는 것이다. 환자의 피부가 흑자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흑사병(bubonic plague)이라고 불리었다.
그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마멋이야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동물을 동물대로 내
버려 둔다면야 인간에게로 그 세균이 옮겨올 수가 없었을 테지만 사람이 그 동물을 이용
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하여 동양에는 그토록 치명적인 역병으로 만연
되지 않았나. 면역이 되었을까?
그 페스트의 역병이 1330년대에 중국에서 먼저 시작해서 유럽으로 퍼졌다는 주장이나
우리 고려에는 그런 무서운 역병 이야기가 전하지 않았으니 다행이 아닌가. 마멋과 몽
골 사람들은 오래 잘 지내왔으나 고의는 아닐지라도 그것이 새로운 세계로 옮겨가므로
위협이 될 수는 있었는지도 모른다. 저 마멋은 귀엽기만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