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아미타불,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가 바로 참 반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염불하기만 하면 바로 관자재입니다. 옛날 부처님도 관자재라 불렀습니다. 저 부처님은 무슨 까닭에 이름을 관자재라고 부를까요? 그분은 나를 잊어버렸기에 어디서나 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에 중요한 것이 있으니, 다들 주의하십시오.
나무아미타불,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가 바로 참 반야이다. 이것이 가장 깊은 비밀의 핵심이며 파초잎을 다 벗기고 보는 속마음이다.
這句佛號即是真般若。這是最秘的核心,是剝芭蕉所見的心。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가 바로 참 반야입니다. 어떤 사람은 흔히 금강경과 아미타경은 마치 별개의 경처럼 생각합니다. 이것은 두 경전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하는 말입니다.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가 바로 참 반야입니다. 이 말은 대단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 선생님의 몇 마디 시로 해석하겠습니다. “한 소리 부처님 명호가 한 소리 마음이니(一聲佛號一聲心).” 이 부처님 명호는 무엇일까요? 바로 당신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부처님 명호를 언제 외웁니까? “미혹할 땐 외우지 않고 깨달을 때 외우네(迷時不念悟時念).” 그래서 부처님 명호를 외울 때가 바로 당신이 깨달을 때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외우는 것이 무엇일까요? 한 소리 부처님 명호가 바로 한 소리 마음입니다. 이것이 참 반야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스무 살이었을 때, 저는 불교에 대한 회의(懷疑)로부터 불교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원래 불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스님과 거사들이 서로 헐뜯고,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모습을 보고서 저는 말하기를 “염불이 소용없다. 한참 동안 외웠어도 이 불법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법을 잘못 이해하여, 이것은 불법이 영험이 없기 때문으로 알았습니다. 대학 3학년 때 시험을 마치고 나서, 볼만한 책이 없어 책을 두 권 찾아서 보았는데, 금강경을 보고서야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도 몇 차례의 감로관정(甘露灌頂)이었습니다. 이때 저는 인식하기를, 중생이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냄(無住生心)’에 도달하고 싶다면, 바로 염불하는 것이라고 인식하였습니다. 이런 인식은 저 스스로 가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당시 일어난 이후로 지금까지 저는 그것이 여전히 정확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때 저는 아마 진언을 외우는 것이 좀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아미타불, 한마디 부처님 명호 속에는 “불”이란 글자가 여전히 있지만, 이 진언 안에는 어떤 생각도 없기에 그것은 머묾 없이 마음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머묾 없이 마음을 내는 것이 반야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참 반야입니다.
“저시최비적핵심(這是最秘的核心)”, 이것이 불법의 가장 깊은 비밀의 핵심이요 비밀 중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파초 잎을 벗겨서 보이는 속마음이다(是剝芭蕉所見的心).” 한결같이 여러분에게 죽순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는가요? 우리가 수지(修持)하는 것이 바로 죽순을 벗기는 것입니다. 예컨대 겉에 진흙이 많고 뭐 뭐 등이 많으므로 한겹 벗기고 또 한겹 벗기고, 이리저리 벗겨나가다 보면, 당신은 죽순의 속심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법을 배움은 이 죽순 껍질을 벗기는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벗겨야 하되, 조금씩 조금씩 벗겨가는 것은 무엇인가를 버리는 것이지, 무엇인가를 얻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얻을 생각을 합니다. 반야심경은 ‘무소득(無所得)’을 말하고 있는데도, 당신이 한사코 얻고자 하는 것은, 당신이 바로 자기가 옳다고 대립적인 언쟁을 하는 것입니다. 벗기는 것이니 벗기고 나면 당신이 보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무아미타불, 이 한마디 부처님 명호 그대로가 참 반야이다. 이것은 가장 깊은 비밀의 핵심이요, 파초를 벗겨서 보는 속마음이다.”입니다.
황념조 거사 반야심경 필기 강의
출처 : 홍남서원弘南書院
작성자 : 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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