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자 없다」 중국 공산당의 불투명한 장래 시진핑 주석의 노림수는 애초부터 「마오쩌둥의 진짜 후계자」였다 / 1/20(월) / 머니 포스트 WEB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와 그 이전 장쩌민 시절 마오쩌둥 시대의 반성에서 덩샤오핑이 정한 2기 10년 임기 제한에 따라 2기 출범 때 후계자 후보를 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추가하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시진핑은 헌법 개정으로 임기 제한을 철폐하고 후계자 지명도 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어째서인지, 중국의 역사나 문화, 사회에 정통한 사회학자 하시즈메 다이자부로 씨와, 전 아사히신문 북경특파원의 저널리스트로 캐논글로벌 전략연구소 상석연구원의 미네무라 켄지 씨가 읽어낸다.(두사람의 공저 「위험한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일부 발췌, 재구성)【시리즈의 제17회. 문중 일부 경칭 생략]
* * *
- 하시즈메
시진핑은 후계자를 선택하지 않은 채 3기를 시작해, 2027년부터는 4기도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 공산당에게도 변칙적. 시진핑 정권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 가능성이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넘버 투를 두지 않는 것은 역시 해서는 안 되는 악수이지요. 큰 문제가 발생하면 역사가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진핑(習近平)의 독재는 어떻게 보면 마오쩌둥(毛澤東) 이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만큼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미네무라
매우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그 시진핑은 '마오쩌둥의 진짜 후계자'를 노리고 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졸저 '13억분의 1의 남자'에서는 시진핑에 얽힌 익명의 증언을 다수 실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습니다만, 그 증언 중에서 지도부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부분과는 시진핑은 나는 5세대가 아니다. 혁명세대에 이은 제2세대구나'라고 자주 말했다"는 전 공산당 간부를 친족으로 둔 중국 정부 관계자의 증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대'는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 세대를 가리키며, 1세대가 마오쩌둥, 2세대가 덩샤오핑, 3세대가 장쩌민, 4세대가 후진타오로 이어집니다. 그 뒤를 이은 시진핑은 '제5세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13억분의 1의 남자'를 집필한 것은 2013년부터 14년에 걸쳐였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도 시진핑이 지금과 같은 독재 권력을 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공산당 역사상 최약체 지도자' 등으로도 통칭되고 있으며 권력 기반도 매우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증언이야말로 시진핑의 '야망'을 훌륭하게 알아맞히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증언에 지도부가 찌릿찌릿해 발언을 한 관련자의 범인 색출을 한 것입니다.
전임 후진타오나 장쩌민이 한 일 따위는 안중에 없다. 경쟁자는 공산당의 '중흥의 시조'인 덩샤오핑이었습니다. 졸저를 간행한 2015년경 시진핑이 목표로 한 모델은 '개혁 개방'으로 중국의 경제 발전을 이끈 덩샤오핑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덩샤오핑 일족과 시진핑 일족은 오랜 세월에 걸쳐 격렬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덩샤오핑에게 두 번이나 실각당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진핑(習近平)은 덩샤오핑(鄧小平) 노선의 부정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저는 확신했습니다. 실제로 시진핑은 이후 '개혁 개방'과 역행하는 국유기업에 대한 우대책과 경제성장을 무산시키는 '공동부유' 등의 정책을 내놓았습니다.
시진핑의 '나는 2세대다'라는 발언은 '나야말로 마오쩌둥의 정당한 후계자다'라는 속내가 숨겨져 있던 핵심적인 말이었습니다.
◇ 문화혁명 전보다 커진 인민해방군의 파워
- 하시즈메
흥미로운 분석이네요.
그럼 여기서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을 통해 어떤 사람들이 드러났는지 확인해 봅시다.
첫째는 인민해방군입니다. 군은 본래 당 아래에서 군 일을 해야 하지만, 그 일을 벗어나 정치 실무에 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의 파워는 문혁 전보다 더 커졌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문혁파입니다. 그 대표는 마오쩌둥 사후에 체포된 '4인조'죠. 이런 혁명좌파 같은 사람들이 큰 얼굴을 하고 다녔다.
셋째는 문혁으로 타도되지 않은 노간부나 실무능력이 높은 사람들. 공산당 안에는 그런 사람들도 살아남았다. 그들 없이는 공산당은 돌아가지 않아요.
마오쩌둥은 이상 3개 정도의 그룹의 균형을 생각하면서 어디에도 편들지 않고 서로를 견제시키는 입위치에서 지도를 계속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번 화제가 되었던 린표(林彪)에 의한 마오쩌둥 암살 미수 사건 등 권력 투쟁은 여러 가지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오쩌둥을 둘러싼 몇몇 그룹이 당내에서 세력 다툼을 계속했다는 것이 문혁 시기의 기본 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은, 이 후의 시대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시리즈 계속됨)
※ 『위험한 중국 공산당』(쇼가쿠칸 신서)에서 일부 발췌·재구성
【프로필】
하시즈메 다이자부로/1948년 가나가와현 출생. 사회학자. 대학원대학 지선관 특명교수. 저서로 놀라운 중국(공저, 고단샤 현대신서), 중국 VS 미국(하출신서), 중국 공산당 제국과 위구르 일신교와 전쟁(함께 공저, 슈에이샤신서), 이웃한 차이나(하목서방), 불을 뿜는 한반도(SB신서) 등.
미네무라 켄지/1974년, 나가노현 출생. 저널리스트. 캐논 글로벌 전략 연구소 주임 연구원. 홋카이도 대학 공공 정책학 연구 센터 상석 연구원. 아사히신문에서 베이징 특파원을 6년간 맡아 후진타오 완전 은퇴를 특종. 저서로 13억분의 1의 남자(소학관) 대만 유사시와 일본의 위기(PHP신서) 등.
https://news.yahoo.co.jp/articles/11120e90adb1e84d9a6bfb7387609bc25348d517?page=1
「後継者がいない」中国共産党の不透明な先行き 習近平主席の狙いは当初から「毛沢東のほんとうの後継者」だった
1/20(月) 7:15配信
13
コメント13件
マネーポストWEB
これからの中国共産党を見ていくうえで注目すべきポイントとは(時事通信フォト)
習近平・中国国家主席の前任者である胡錦濤やその前の江沢民の時代、「毛沢東時代の反省」から鄧小平が定めた「2期10年」の任期制限に従い、2期目スタート時に「後継者」の候補を党中央政治局常務委員に加えるのが慣例だった。しかし、習近平は憲法改正で任期制限を撤廃し、後継者の指名も行なっていない。それはなぜか、中国の歴史や文化、社会に精通する社会学者の橋爪大三郎氏と、元朝日新聞北京特派員のジャーナリストでキヤノングローバル戦略研究所上席研究員の峯村健司氏が読み解く。(両氏の共著『あぶない中国共産党』より一部抜粋、再構成)【シリーズの第17回。文中一部敬称略】
* * *
橋爪:習近平は後継者を選ばないまま3期目をスタートさせ、2027年からは4期目もあるかもしれない。中国共産党にとっても変則的。習近平政権がこの先どうなるのか、予測可能性が不透明になっています。ナンバーツーを置かないのはやっぱり、やってはいけない悪手なんですね。大きなトラブルが起こると、歴史が教えています。
習近平の独裁はある意味、毛沢東以上かもしれません。でもそのぶん、リスクも大きくなっていると思います。
峯村:非常に興味深いご指摘です。その習近平は、「毛沢東のほんとうの後継者」を狙っていると私はみています。
というのも、拙著『十三億分の一の男』では、習近平にまつわる匿名の証言を多数載せています。あとでわかったのですが、その証言のなかで指導部の逆鱗に触れたものがあったそうです。
その部分とは、「習近平は『私は第五世代ではない。革命世代に続く第二世代なんだ』とよく言っていた」という元共産党幹部を親族にもつ中国政府関係者の証言です。ここで言う「世代」は中国共産党の指導者の世代を指し、第一世代が毛沢東、第二世代が鄧小平、第三世代が江沢民、第四世代が胡錦濤、と続きます。それに続く習近平は「第五世代」と位置づけられています。
『十三億分の一の男』を執筆していたのは2013年から14年にかけてでした。当時は誰も、習近平がいまのような独裁権力を握るとは思っていませんでした。「共産党史上最弱の指導者」などとも称されており、権力基盤も非常に脆弱だと評価されていました。
ところが実はこの証言こそが、習近平の「野望」を見事に言い当てていたのです。だからこそ、この証言に指導部がピリピリし、発言をした関係者の犯人捜しをしたのでしょう。
前任の胡錦濤や江沢民のやったことなど眼中にない。ライバルは共産党の「中興の祖」である鄧小平だったのです。拙著を刊行した2015年ごろ、習近平が目指すモデルは「改革開放」で中国の経済発展をリードした鄧小平だと多くの人が考えていました。
しかし、実はそうではなかった。というのも、鄧小平の一族と、習近平の一族は長年にわたり激しい闘争を繰り広げていたのです。習近平の父、習仲勲は鄧小平に二度にわたり失脚させられています。だからこそ、習近平は鄧小平路線の否定に動くと私は確信していました。実際に習近平はその後、「改革開放」と逆行するような国有企業に対する優遇策や、経済成長を打ち消すような「共同富裕」などの政策を打ち出したのです。
習近平の「自分は第二世代である」との発言は、「自分こそが毛沢東の正当な後継者である」という本音が隠されていた核心的な言葉だったのです。
文革前より大きくなった人民解放軍のパワー
橋爪:興味深い分析ですね。
ではここで、毛沢東の文化大革命を通じて、どういう人びとが表に出てきたのかを確認しておきましょう。
第一は、人民解放軍です。軍は本来、党のもとで軍の仕事をしているべきですが、そこからはみ出して、政治の実務に携わるようになった。だから、軍のパワーは、文革前よりも大きくなったはずです。
第二は、文革派です。その代表は、毛沢東の死後に逮捕された「四人組」ですね。こうした革命左派のような人びとが大きな顔をしてのし歩いた。
第三は、文革で打倒されなかった老幹部や実務能力の高い人びと。共産党の中には、そうした人びとも生き残っていた。彼らなしでは、共産党は回りません。
毛沢東は、以上3つぐらいのグループのバランスを考えながら、どこにも肩入れをすることなく、相互を牽制させる立ち位置で指導を続け、権力を維持していました。
前回話題になった林彪による毛沢東暗殺未遂事件など、権力闘争はいろいろありました。それでも、毛沢東を取り巻くいくつかのグループが、党内で勢力争いを続けたというのが、文革の時期の基本的な構図であると言えます。
以上は、このあとの時代を見ていくうえでも、重要なポイントになるのです。
(シリーズ続く)
※『あぶない中国共産党』(小学館新書)より一部抜粋・再構成
【プロフィール】
橋爪大三郎(はしづめ・だいさぶろう)/1948年、神奈川県生まれ。社会学者。大学院大学至善館特命教授。著書に『おどろきの中国』(共著、講談社現代新書)、『中国VSアメリカ』(河出新書)、『中国共産党帝国とウイグル』『一神教と戦争』(ともに共著、集英社新書)、『隣りのチャイナ』(夏目書房)、『火を吹く朝鮮半島』(SB新書)など。
峯村健司(みねむら・けんじ)/1974年、長野県生まれ。ジャーナリスト。キヤノングローバル戦略研究所主任研究員。北海道大学公共政策学研究センター上席研究員。朝日新聞で北京特派員を6年間務め、「胡錦濤完全引退」をスクープ。著書に『十三億分の一の男』(小学館)、『台湾有事と日本の危機』(PHP新書)な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