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아이들과 헤어진다.
아이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마인드비전과 글쓰기교육'을 다시 읽으니
할 말이 가슴에 가득하고 정리는 잘 안 되고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덮어버리지는 또 못하겠다.
꼭 써야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피곤한데도 썼다. 저녁 먹고 세 시간 반쯤 꼼짝 않고 앉아서 썼다.
써라는 글쓰기 지도 사례는 안 쓰고,
머하는 짓인지.
남이 쓴 글을 비판하는 글은 생전 처음 써 본다.
이 글은 아직 완성이 아니다. 많이 거칠다.
졸업식 끝내고 조용해지면 다시 좀더 정리할 생각이다.
그걸 참고해 주시길.
잠이 너무 와서 말 짧게 할려고 반말로 썼다. 이해 해도.
1. 제목부터 잘못 되었다
이 글 제목부터 바꾸어야겠다 싶다. '마인드비전과 글쓰기 교육'이 아니라 '마인드비전 프로그램', 또는 '마인드비전과 인성교육'쯤으로. 그리고 글 안에서 자주 나오는 말 '<마인드비전>글쓰기'를 '마인드비전'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나는 더 이상 이 글을 안 써도 되겠다. 그냥 마인드비전 프로그램을 이끈 것이지 글쓰기교육을 한 것이 아닌데 자꾸 '<마인드비전>글쓰기'라고 써놓으면 안 되지.
'학생들과 함께 한 글쓰기교육 사례이다'(글쓰기 겨울 연수집 217쪽 18째줄). 어째서 이것이 글쓰기 교육 사례인가? '<마인드비전>프로그램 운영 사례다' 라고 해야 맞지. 그 아래 21째줄, '프로그램의 내용을 글쓰기와 결합하여 할 경우 프로그램이 담고 있는 의미가 더 잘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글쓰기 지도를 하게 되었다'고 쓰여있다. 그 결과 했다는 글쓰기 지도는 어떤 것인가? 시쓰기를 했는가, 주장하는 글쓰기를 했는가? 글을 쓰기 위해 아이들과 삶을 어떻게 나누었는가? 또 선생인 나는 어떤 삶을 살려고 애쓰고 있는가? 도대체 '글쓰기 지도'라는 게 얼마나 넓고 깊은 영역인지를 모르고 쓴 말로 볼 수 밖에 없다. 글만 쓴다고 다 '글쓰기' 지도 가 아니다.
2. 마인드비전
229쪽 밑에서 네째줄을 보면 '이렇듯 마인드비전은 '나'를 말할 권리를 확보하는 프로그램이다. 순수한 동기에 의해 스스럼없이 '나'를 말할 수 있음은,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내면의 사건을 있는 그대로 명료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럼으로써 학생은 자기 현실을 이해하고 재발견하며, 그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고 적혀있다. 과연 그럴까?
그 글 위에 나와있는 몇 가지 질문으로 얼마나 '나'를 표현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답에 나타난 나는 진정한 '나'일까? 여기에 나와 있는 질문에는 현실이 보이지 않는다. 삶과 내면의 사건을 명료화 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위에 있는 질문 어디에도 사건이나 상황은 없다. 여기서 어떻게 '자기 현실을 이해하고 재발견할' 수 있을까? 위에 있는 질문들은 상담할 때 상담하려는 사람에 대한 정보를 몇 가지 얻기위해 응급처치식으로 하는 설문지 수준일 뿐이다.
아마 이 글을 쓴 선생님은 이 부분에서 글쓰기교육을 끌어오지 않았나싶다. 뒤에 어떤 아이가 쓴 '나의 콤플렉스'라는 글을 보면 이 선생님은 설문지에 대한 답을 단답형이나 간단하게 쓰게 하지 않고 생활글처럼 쓰도록 하고 있다. 아이 글을 보면 대화도 넣고 '어제' 있었던 일도 구체로 쓰고 있다. 그래서 '<마인드비전>과 글쓰기'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나는 짐작한다. 아이가 쓴 그 글은 정직하게 자기 고민을 쓴 글이라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활동을 '마인드비전과 글쓰기 교육'이라 이름 붙이고, 오히려 참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을 마인드비전 프로그램 안에 가두어놓은 것이다. 거기다 글쓰기 교육보다 마인드비전이 한층 깊어졌다고 까지 하니 참으로 황당하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마인드비전 프로그램을 이끌면서 그 답을 정직하고 자세하고 생생하게 쓰게 하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그 뿐이지 그것이 글쓰기 교육은 결코 아니다. 그것을 마치 새로운 글쓰기 교육, 또는 글쓰기 교육을 한 차원 넓힌 것처럼 말해서는 안된다.
3. 글쓰기 교육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들
- '지금까지의 글쓰기 교육이 '일하는 아이들'의 발견에 중심이 놓여져 있었다'-
'일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마치 글쓰기 교육의 전부인 것처럼 말해놓았다. 결코 그렇지 않다. 자본과 물질에 지배받지 않는 삶은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이고, 자연과 하나 되는 삶은 시원한 나무 그늘 속에서 자연을 경치로 구경하는 삶이 아니라 그 속에서 땀흘려 일하는 삶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땀흘려 일을 하지 않으면 균형 잡힌 현실 감각 없이 생각만 많아지고 알맹이 없는 말장난만 늘게 되는 것 아닌가? 손과 발을 부리면서 일의 가치를 깨닫고 그 속에서 자신도 발견하고, 나아가 자연의 질서도 깨닫게 되고. 그런 전체 흐름속에서 '일하기'를 봐야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일'만 딱 떼내어서 마치 글쓰기 교육이 어떤 한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것처럼 보는 것은 정말로 옳지 못하다.
- '그러니까 <마인드비전>글쓰기는 기존의 글쓰기 내용을 이으면서 동시에 한 차원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말을 바로 하자면 <마인드비전>글쓰기는 한 차원 깊어진 것이 아니라 글쓰기 교육의 껍데기만 살짝 빌려서 흉내만 내는 것이다. '나'에 대해 이러저러한 것을 쓰게 하는 것 뿐인데 어째서 그것이 글쓰기 교육보다 한 차원 깊어졌다고 할 수 있나? '나'에 대해서 쓰게 하면 한 차원 깊은 것인가? 그렇다면 글쓰기 교육에서는 '나'에 대한 글쓰기가 없는가?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글쓰기 교육은 그냥 글쓰기 교육이 아니라 '삶을 가꾸는' 글쓰기 교육이고,
삶을 가꾸려면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밑바탕에 늘 흐르고 있어야 한다.
글쓰기 교육으로 함께 살아가는 아이와 선생 모두
꾸준히 자기를 되돌아보며 닦아나가야 한다.
그 과정이 글쓰기 교육이다.
'자아 형성'이니 '자아 정체성'이니 하는 말도 결국은 자기를 되돌아보고 닦아가면서 발견하는 것이다.
글쓰기 교육은 그것을 이미 바탕에 깔아놓고 해나가는 것이다.
나 자신이나 동무가 쓴 글을 함께 읽으며 자신, 또는 동무를 새롭게 발견하여 놀라기도 하고,
문제로 여겨지는 부분은 조심스럽게 건드려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배우고 인정해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런데도 34항목으로 되어있다는 마인드비전 프로그램이 글쓰기 교육보다 진정 한 차원 깊어졌다고 할 수 있겠는가?
- '쓰기 지도가 주를 이루었던 지난날의 글쓰기 교육과 <마인드비전>글쓰기 교육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은바로 이 부분, 곧 <마인드비전>글쓰기는 <표현-수용-정리>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글을 쓴 사람이나 그 글을 들은 사람이 다 같이 하나의 어떤 가치관 형성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
위에서도 말했듯이 글쓰기 교육은 쓴 글을 서로 나누고 삶과 감동도 나누고 함께 삶을 가꾸어 가는 것인데 이것이 없다니. 도대체 언제, 누가 글쓰기 교육에서 쓰기 지도가 주를 이루었다고 했는지 알고 싶다. 지난 해 까지 딱 이십 년 글쓰기를 해온 나는 이런 말 생전 처음 듣는다. 글을 쓰고, 글을 함께 읽고, 그 사람을 서로 잘 알게 되고, 내 삶도 되돌아보아 고치거나 반대로 더욱 기운을 얻기도 하고. 그것이 글쓰기 교육인데.
그런데 저 뒤에 243쪽 밑에서 셋째 줄에 가보면 또 이런 말이 나온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정리 단계에서의 교사 활동은 단순히 글쓰기 지도 차원을 넘어 학생에 대한 전반적인 상담 활동으로까지 넓어질 수 있겠다'
단순한 글쓰기 지도는 또 무엇인가? 이 선생님이 쓴 대로 '맞춤법, 띄어쓰기,(중간 줄임) 공책에 표시하거나 학생을 불러 말해주는 것'을 말하는 걸까? 글쓰기 교육에서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따위를 지도하는 것은 오히려 터져나오는 아이들 글을 막아버릴 수 있어 되도록 하지 말도록 한다. 깨끗하고 살아있는 우리 말과 자기 입말 제대로 살려 쓰도록 지도하고 있다.
글쓰기 교육을 이렇게 모르면서 글쓰기를 자꾸 갖다 붙이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힌다.
- '<마인드비전>글쓰기는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자기표현의 글쓰기이다. 글 쓰는 이는 자기의 경험과 감정을 새롭게 인식함으로써 글쓰기를 통해 자기를 객관화하고, 자아를 발견하며, 새로운 자아 형성을 확장해 간다. -
이것은 <마인드비전>글쓰기가 아니라 그냥 '글쓰기'다.
그리고 이것은 글쓰기 교육의 한 부분일 뿐이다.
글쓰기 교육에서는 정직한 자기 인식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자기 노력,
이웃이나 사회에 대한 따뜻한 관심 따위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고 글쓰기 교육을 통하여 '자아를 발견하고 자아정체성을 형성하여 자신을 자기의 삶 속에 기획할 수 있게 될'뿐만 아니라
세상을 자기 나름대로 바라보는 눈,
사람답게 살아가려는 마음,
한때의 세상 흐름에 휩쓸리지 않는 중심 따위를 가지게 된다.
- <마인드비전>에서 하는 글쓰기 주제 34항목-
이것을 가만히 읽어보면 글쓰기는 마인드비전의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글쓰기 교육에서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주제를 정하여 글을 쓰게 하는 것인데 여기서는 일 년 또는 일 년 넘게 정해진 주제로 글을 써야 하니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어할까? 처음 한 두번은 새롭게 재미삼아 할 수도 있겠지만 일 년 내내 이런 글만 써야한다면 글쓰는 걸 지긋지긋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자아'라는 것이 이렇듯 내 속을 쪼개고, 파고 해야만 찾아지는 것일까?
동무를 통해 '나'를 발견할 수도 있고,
자연에서 일하면서,
벌레 한 마리를 마음으로 만나면서,
전쟁을 보면서도
얼마든지 '나'를 만날 수 있다.
비슷비슷한 주제로 책상에 앉아 생각만 굴리며 만나는 '나'는
그다지 건강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것 말고도 짚고 넘어갈 것이 더 있는데 이쯤에서 그만 둔다. 말이 자꾸 겹치기도 하고, 글을 쓰는 나도 이제 지친다.
4. 마무리
글쓰기 교육은 아이들만 하는 공부가 아니다.
선생인 나도 함께 해야할 과정이다. 그래서 글쓰기 교육이 어려운 것이다.
나는 가만히 있고 말로만 아이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해서는 안 되는 게 글쓰기 교육이다.
선생 삶부터 달라져야 한다.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가르쳐야 한다.
몇 년만 하면 마스터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저 사람이 말로만 그러는 지, 아니면 적어도 애를 쓰는 사람인지 다 알고 있다.
시늉으로만 하면 통하지 않는다.
당연히 <마인드비전>에는 이것이 없다.
그러면서 말로만 글쓰기를 붙이고 있다.
글쓰기 교육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첫댓글거칠다하셨지만 통쾌합니다. 요즘 회보를 안 받아봐서 다른 곳에 올려진 전문을 보았는데, 참 기가찼습니다. '사례'라는 말 아무 데나 갖다붙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도 선생 삶을 아이들이 다 보고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공부라 여기지 않고 아이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가짜라 생각합니다. 힘들다고 하지만
나는 와 이러꼬. 마지막 버즘 글을 이래 읽었다. "야야, 내 불알 잘 (차)질렀제?"---> 그래서 나는 자행이가 이 글을 마구 쓴 줄 알았네. (일소와 소눈을 늘 헷갈리는지! 또 소눈한테 한 소리 듣겠제.) 소눈 바쁜데 욕 봤다. 이 정도로 하고 말지 뭘 더 조근조근 이야기하겠노. 이만하면 됐지 뭐.
그 참, 나도 불알이 어자고 이렇게 확 들어오데. 회장님요, 불 잘 질러줘서 고맙고요. 하루 남았다는 거는 아쉬운 회장자리가 하루 남았다는 거? 그럼, 아쉽지 아쉽고 말고. 그 바람에 사람들이 뭔 장에만 앉으면 다들 장기집권하고잡은가봐. 이래 글이 올라오이께네 참 좋다. 나는 19일 시험치고 나서 올리께요.
첫댓글 거칠다하셨지만 통쾌합니다. 요즘 회보를 안 받아봐서 다른 곳에 올려진 전문을 보았는데, 참 기가찼습니다. '사례'라는 말 아무 데나 갖다붙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도 선생 삶을 아이들이 다 보고 느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 공부라 여기지 않고 아이들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가짜라 생각합니다. 힘들다고 하지만
함께 깨우쳐나가는 교육이기에 이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더욱 기간을 정해서 집중으로 하는 공부가 아니고, 죽 함께 보아가며 나누는 공부가 아닐까요. 학교밖에서 학부형들 만나보면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습니다다. 과외교사만 장삿꾼이 아닙니다!!
모두 마음이 바쁠 텐데 버즘과 소눈 두 위인이 이렇게 공부를 해 주셨네. 읽으니 시원한 글이다. 버즘도 곧 위인이 되지 싶다.
소눈, 바쁘고 마음이 심란하고 그런 거 다 아는데. 욕봤다. 내 이거랑 버즘 위인 꺼랑 종이에 뽑아서 찬찬히 읽어 보께.
야야, 내 불 자알 질렀제? 나는 어제 교실 짐 싸다가 썼다. 우쒸! 나도 집에 가서 두 시간만 더 했어도..... 아, 인자 하루 남았다. 내일이면 안녕!
나는 와 이러꼬. 마지막 버즘 글을 이래 읽었다. "야야, 내 불알 잘 (차)질렀제?"---> 그래서 나는 자행이가 이 글을 마구 쓴 줄 알았네. (일소와 소눈을 늘 헷갈리는지! 또 소눈한테 한 소리 듣겠제.) 소눈 바쁜데 욕 봤다. 이 정도로 하고 말지 뭘 더 조근조근 이야기하겠노. 이만하면 됐지 뭐.
내만 불알로 본 게 아니네. 그 말 쓰마 또 모씨가 트집을 잡니 어쩌니 할까봐 가만히 있었는데.
그 참, 나도 불알이 어자고 이렇게 확 들어오데. 회장님요, 불 잘 질러줘서 고맙고요. 하루 남았다는 거는 아쉬운 회장자리가 하루 남았다는 거? 그럼, 아쉽지 아쉽고 말고. 그 바람에 사람들이 뭔 장에만 앉으면 다들 장기집권하고잡은가봐. 이래 글이 올라오이께네 참 좋다. 나는 19일 시험치고 나서 올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