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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 64. 권능의 우편 - 마 26: 68. 선지자 노릇
마 26: 64. 권능의 우편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
유대인의 공회, 즉 재판정에서 자신의 신분 즉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에 대하여 시편 110: 1과 다니엘 7: 13의 예언을 사용하시면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하시며 엄숙히 증언하셨다. 이것은 주께서 자신에 대해 하신 공적인 답변이시며 진술이셨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그의 행하신 모든 기적과 부활을 통해 확증된다(요 20: 30-31). 예수님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마다 그가 자신에 대해 증언하신 바를 믿어야 한다.
그가 그리스도가 아니시라면 그는 사기꾼이나 미치광이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쉬 에이파스).
예수의 이 대답은 마가복음 '에고 에이미'(*), 즉 '내가 그니라'는 직접적인 대답보다는 약하다.
* 막 14: 6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즉 '네가 말했다'는 예수의 말씀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긍정하는 말이다(25절 주석 참조).
이러한 답변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5: 33-37에서 친히 가르치신 '맹세하지 말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친히 실행하신 것이다.
2]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예수 자신에 관한 가장 은밀한 신비를 밝히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죄인으로 가장 낮고 천한 위치에 있지만, 당신의 때에는 그 모든 것이 변하여 영광과 권능으로 변할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미 변화 산상에서 그 전조(前兆)를 보이신 바 있다(17: 2-13).
당시 대제사장을 위시한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예수의 십자가만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그 십자가 이후에 전개될 영광스런 장면들을 선취적(先取的)으로 보고 계신 것이다.
예수의 영광스런 광휘(光輝)의 장면, 곧 부활과 승천과 재림에 대한 선취적인 고백은 대제사장을 깊이 당황케 했을 것이며 그 자신의 종교적 확신을 여지없이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진정 '네가 말했다' 그리고 '너희는 볼 것이다'는 예수의 권위에 찬 응답은 그의 현재의 권위를 확인하고 장차 있을 그의 영원한 왕권을 암시해주고 있다.
본문의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이란 표현은 시 110: 1에서 유래한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적 행위와 통치권을 전수받으실 것을 내포한 말이다.
이는 성부 하나님과의 동격을 이루실 예수의 신적 선언이다.
그리고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은 단 7: 13-14에서 유래한 표현으로서 위엄과 영광으로 임하실 예수의 최고의 자기 계시이다. 어찌 되었든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과 사실상 동일시하신 이 말씀은 자신이 죄를 용서한다고 말한 이전의 주장만큼이나 불경스러운 것으로 보였을 것이며 그들에게 확실한 고소거리를 제공하였을 것이다.
마 26: 65. 옷을 찢으며 -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저가 참람한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참람한 말을 들었도다. )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으며 그가 신성모독의 말을 하였다 하고 더 이상의 증인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주장하시는 것은 결코 참람한 말이 아니다. 또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증거도 제시함 없이 그를 정죄하는 것은 옳지 않다.
1] 이에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은 자로 '하나님을 모독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본문의 '옷'(*, 히마티아)은 겉옷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말인데, 여기서는 대제사장의 예복을 가리킬 것이다. 이에 비해 마가복음에는 속옷을 가리키는 '키토나스'(*)라는 말이 나온다.
아마 이때 가야바는 속옷과 겉옷을 동시에 잡고 자기 목 부위에서 가슴이 노출될 만큼 찢어 내렸던 것 같다. 여하튼 옷을 찢는 것은 극한 슬픔에 직면했거나 의로운 분노의 한 표현으로 행하던 유대인들의 전통적 행동이었다. (Macc 11:71).
* 왕하 18: 37 – 이에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 내의 책임자인 엘리야김과 서기관 셉나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가 옷을 찢고 히스기야에게 나아가서 랍사게의 말을 전하니라.
특히 랍비들이 규정한 바에 의하면 율법에 중대한 위협이 발생했을 때 법관은 일어나 옷을 찢도록 했다. 그리고 그 찢는 부분이나 길이 등의 세밀한 면까지 제시하고 있다.
2] 그가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보라. 너희가 지금 이 신성모독 하는 말을 들었도다.
‘신성모독 하는 말을 하였으니(*, 에블라스페메센)’를 직역하면 '하나님께 모독하는 말을 하였다'가 된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언하심으로써 이제 신성모독의 가장 중한 범죄자가 된 것이다.
* 레 24: 16 -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그들은 더 이상의 증거를 찾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들에게는 신성 모독죄에 해당하는 중한 범죄로 인정되었지만 예수는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밝힌 것이었다.
마 26: 66. 생각이 어떠하냐? -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 생각이 어떠하뇨? 대답하여 가로되 저는 사형에 해당 하니라. 하고 )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이미 작정하였다.
공회의 재판은 형식에 불과하였다.
공정한 심사가 없는 법정! 이것이 부패된 세상과 교회의 모습이었다.
1]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제사장 가야바는 귀중한 한 생명의 생사가 달린 시점에 정식 재판 과정을 거치는 신중함을 보이지 않고 마치 군중을 선동하듯이 분위기를 이끎으로써 거의 환호에 가까운 사형 판결을 이끌어 냈다.
이때 산헤드린을 위시한 군중들은 만장일치로 예수의 사형을 연호하였을 것이다.
* 막 14: 64 -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2]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마태복음만이 사형 판결을 직접 화법으로 보도함으로써 당시 고조된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소개한다. 그 대신에 마태복음에는 '모든 사람'이 거기에 찬성하였다는 부분이 없다(막 14: 64).
공의회의 사형 판결은 신성 모독의 법조문에 해당하는 레 24: 16을 근거로 한 것 같은데, 이 판결은 여러 가지로 불법이었다. 탈무드에 가르치기를 '산헤드린은 생명을 구할 것이지 멸망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밖에도, 궐석(闕席) 판결을 하지 말 것, 다수의 동의가 아니면 판결을 내리지 말 것, 사형 선고 받은 자는 판결 당일에 집행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 원칙이 전해지고 있다.
이 같은 법규는 죄인에게 가급적으로 자비를 베풀라는 것인데 지금의 이 상황에서는 그 선한 정신이 전혀 준수되지 않고 있다.
또한 산헤드린 법 4:1에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 있다.
① 범죄인 심문은 반드시 낮에 할 것, 또 해지기 전에 끝마칠 것.
② 만일 선고가 무죄일 때는 심문의 날에 선고할 것이나, 유죄일 때는 다음날에 선고할 것이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이와 같은 법규를 어기고 예수의 심문을 유월절 절기와 안식일의 임박으로 인해 조급하게 행했다.
그들은 예수를 심문한 당일에 선고를 내리고 당일에 형을 집행하였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악한 통치자와 타락한 종교와 의식이 없는 백성들이 만날 때는 항상 이렇게 진리를 왜곡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무시하게 된다.
마 26: 67. 얼굴에 침 뱉으며 -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혹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는 악한 자들에게 얼굴에 침 뱉음, 주먹으로 침, 손바닥으로 때림을 받으셨고 학대와 조롱을 받으셨다.
1]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이것은 주께서 받으신 본격적 수욕의 시작이었다.
이 구절의 헬라어 본문은 사 50: 6의 예언, 곧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 하였느니라"는 메시지가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불법 판결이 끝나자 주위에 기다리고 있던 하속들이 차마 말로 다할 수 없는 수모와 학대와 조롱을 일삼은 것이다.
* 막 14: 65 -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정녕 그들은 생각할 수조차 없는 최악의 수치를 예수께 안겨준 것이다. 여기서 남의 얼굴에 침을 뱉는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더할 수 없는 모욕이다.
* 민 12: 14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의 아버지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이레 동안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 하시니
* 욥 30: 10 - 그들이 나를 미워하여 멀리 하고 서슴지 않고 내 얼굴에 침을 뱉는도다.
2] 주먹으로 치고,
도무지 반격할 수 없는 자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누가는 이때 그들이 예수를 조롱하고 구타하기 위해 얼굴을 가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 눅 22: 64 -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3]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손바닥으로 때리며'(*, 에르라피산)는 '몽둥이로 때리다' 뜻하는 '라피스 마'(*)에서 유래한 단어로 그 당시 하속들은 손바닥 뿐 아니라 몽둥이로도 예수를 심하게 구타한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실로 그들은 신성 모독 자를 구타한 것이 아니라 신성 모독의 범죄를 자행하고 있었다. 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그렇게 학대하고 조롱하였다. 이는 영적 무지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마 26: 68. 선지자 노릇 -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 가로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
마가와 누가는 조롱하는 자들이 예수의 눈을 가리고 나서 그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도록 강요하며 조롱했다.
1]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여기서 마태복음과 다른 공관복음은 상호 보충적이다.
각 기사는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는 데에 필요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다.
* 막 14: 65 -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 눅 22: 64 - 그의 눈을 가리고 물어 이르되, 선지자 노릇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고
유대인의 그리스도(메시아)관은 불의를 정복하고 각종 능력을 행사하며 민중을 압도하는 어떤 탁월함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한 그들이 보기에 이런 수모를 당하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자가 그리스도 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지자 노릇 하라'는 말은 장래의 일을 예언하라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지식을 드러내라는 뜻이다.
2]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마태는 '눈을 가렸다'는 말을 생략하는 대신 그 조롱하는 자들이 예수를 '그리스도야'라고 불렀으며, 눈을 가린 채 구타한 후 '너를 친 자가 누구냐'는 조롱조의 질문을 함으로써 메시야의 신적 통찰력과 능력을 보이라고 빈정거렸다고 한다.
메시야라고 하면 비록 눈이 가려져 있어도 자기를 친 자가 누구인지 충분히 알 수 있지 않느냐는 비아냥거림이다.
3] 가야바의 재판
한밤중에 주님을 재판하려고 많은 사람이 공회로 모였다. 공회는 낮에만 모였으므로 이처럼 밤중에 모이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공회 회원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는 데 있어서 자기들 스스로 불법을 행하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공회는 하나님의 의를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심문도 하기 전에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거짓 증인들을 찾는 음모를 자행했다.
(1) 가야바의 질문
① 주님을 믿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가야바는 주님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오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63절)고 질문했다.
그러나 이 질문은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질문이 아니었다. 그래야 그 질문은 온당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가야바는 이미 스스로 질문에 대한 답을 확고하게 정해 놓고 기만적인 질문을 주님께 하였다.
반면에 주님이 누구인지를 진지하게 질문한 사도 바울은 그 질문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 행 9: 5 –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② 주를 사형에 처하려고 계획된 질문이다.
예수의 침묵으로 재판이 실패로 기울게 되자 가야바는 지금까지 거론되었던 모든 2차적인 문제들을 철회하고 오랫동안 유대인의 마음속에 간직되었던 핵심적인 질문인 메시야이냐 아니냐를 제기하였다.
거기다 덧붙여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고' 대답하기를 요구함으로써 모든 논증의 결말, 즉 사형을 유도했다.
(2) 그리스도의 대답
① 주님은 자신의 가장 높은 이름들을 수락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라는 가야바의 질문에 그렇다, 아니다 둘 중 한 가지 대답이 필요하게 되었다. 참으로 결정적인 순간이다.
우리는 이 순간에 전우주가 호흡을 중단하고 예수님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온 우주와 온 인류의 바램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주님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면 그들이 예수를 고소할 죄목을 잡지 못하게 되어 예수께서는 자유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와 함께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야의 초림에 대한 소망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예수께서는 '그렇다'라고 대답한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예수님은 십자가를 져야 한다.
이러한 환경에 놓인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인류의 소망에 따라 스스로 고난을 지실 것을 각오하시고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선언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모습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종하심과 인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② 주님은 자신의 재림을 증언했다.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긍정하면서 단 7: 13의 말씀을 인용하여 인자는 죽고 부활하여 승천한 후 하나님 권능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다가 구름을 타고 다시 재림할 것이라고 증언하셨다. (64절).
(3) 가야바의 판결
① 온갖 불법을 동원하여 사형을 언도하였다.
'내가 그리스도라'는 주님의 말씀에 가야바는 그리스도의 주장은 진실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그 주장은 신성모독이라고 판결했다.
그때에 불경하다고 외치는 소리가 충천했고, 예수님은 끝내 사형을 선고받았다. (마 26: 64-68).
그다음 그들은 예수께 침을 뱉었고, 뺨을 쳤으며, 조롱했다. 그들은 진리를 진리로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불법으로 진리 되시는 예수를 비난하고 그를 죽음에 합당한 자로 여겨 사형 언도를 내렸다. (행 2: 23).
②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한 예수님의 선택이었다.
주님께서는 가야바와 공회 의원들이 사형을 언도하고 그대로 집행했기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다. 그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죽음을 준비하셨고 자원하여 실행하셨을 뿐이다.
그것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주님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자원하여 사형 선고를 받으셨으며,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바로 알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 그래야 주님의 죽음은 우리에게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26: 57-68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공회 즉 재판정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 딤전 1: 15 -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딤전 2: 5 -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오늘도 우리는 성경에 근거하여 이 사실을 증거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죄인들의 구주이시다!
둘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당하셨다.
그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공모한 대로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잡히셨다. 그는 위선적 죄인들에게 밤새도록 심문을 당하셨다.
그들은 그를 정죄하기 위해 거짓 증인들을 동원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학대와 조롱을 당하셨고, 마침내 정당한 근거 없이 정죄되셨다.
주께서 친히 이런 고난을 당하셨다면, 주의 제자 된 우리도 오늘날에 이런 고난을 당할 것이다. 세상과 타협하고 친구가 되는 자는 핍박을 당하지 않겠지만, 세상을 악하다 책망하는 자는 오늘날도 핍박을 받을 것이다.
* 딤후 3: 12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러므로 주의 종들은 사람들의 부당한 비난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우리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확신하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
* 요 3: 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 행 16: 31 –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 롬 6: 17-18, 22 –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18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 행 10: 9-10 – 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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