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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 : 5 - 모든 언변과 지식 - 고전 1 : 8 -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 상 )
고전 1 : 5 - 모든 언변과 지식 -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 이는 너희가 그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구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
5절 이하는 바울 사도가 감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5절에서 '이는'이라는 말은 <호티>로서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인데, 4절에서 말한 감사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1]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고린도 교회에 내려진 하나님 은혜가 각 방면에서 풍족하게 드러났음을 의미한다.
'그의 안에서 모든 일'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지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 이는 <엔 판티 엔 아우토>를 번역하였는데 '그로 말미암은 모든 일'이라는 뜻이다.
본 절에서 '모든 ... 풍족하므로'(*, 판티 에플루티스데테)는 사실상 양보다 질을 말하고 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전체'라는 의미라기보다는 '가능성 있는 모든 측면에서'라는 의미가 더 타당하다.
'언변'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고'(*)는 '교리'혹은 '진리'를 의미한다(Calvin, Hodge).
2]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지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그노세이'(*)는 영지주의(Gnosticism)에서 언급하는 감추어진 신비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한 구체적인 지식을 말한다(Mare).
즉 바울이 말하는 '지식'이란 '내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 곧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라는 실재 위에 기초한 구체적인 지식을 말하고 있다.
* 빌 3: 8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풍족하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플루티스데테'(*)는 '플루티조'(*)의 부정 과거 수동태로 신약성경에서는 바울 서신에서만 나타난다.
* 고후 6: 10-11 -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11 고린도인들이여 너희를 향하여 우리의 입이 열리고 우리의 마음이 넓어졌으니
'풍족하다'는 말은 본 절에서 개종이나 세례가 풍부하다는 말이 아니라(Mare) 그리스도에 대한 일들을 알고 말하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이 풍성히 축복하여 주신 것을 지칭한다.
이 단어가 부정과거 시제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 고린도 교인들의 삶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가 뚜렷했음을 알 수 있다.
고전 1 : 6 - 그리스도의 증거 -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케 되어 )
6절 초두에 번역이 누락되었지만, <카도스>라는 접속사가 나오는데 이는 '그처럼(Such as)'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5절과 6절의 의미는 서로 같다. 6절에서 그리스도의 증거란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라는 뜻이므로, 6절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이 당신들 가운데 견고해졌다'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5절에서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얻은 지식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능력임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증거'란 바울이 4년 전에 고린도에 머무르면서 전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말한다.
'견고하게 되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베바이오데'(*)는 '베바이오오'(*)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앞 절의 '풍족하다'와 동일하게 강조되고 있다.
바울은 말한다.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과 지식의 풍족함을 주셨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
기독교 진리는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들, 곧 그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출생하신 것, 그의 많은 기적들, 그의 부활, 승천 등에 근거하였다.
그것은 증인들의 증언들에 의한 것이다. 그것은 그 사실들이 오늘 우리와 긴 시대적 간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믿어지는 이유이다.
성경은 진실한 증인들의 증언 책이다. 우리의 믿음은 그 위에 근거한다.
고린도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들을 확신하였다. 믿음은 확신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로 하여금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고 누가복음을 썼다(눅 1: 4).
우리는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해야 한다.
* 딤후 3: 14 -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고전 1 : 7 -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린도 교인들은 모든 은사를 부족함 없이 소유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은사들을 성숙하게 사용하지 않고, 그것들 때문에 서로 싸우고 분쟁거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은사보다 사랑이 최우선이라고 가르쳤다(13: 1-3).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이 영적인 엘리트라고 생각하였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증거하지 못했다.
7절은 5-6절의 과정을 통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얻은 결과이다. 왜냐하면 원문에는 7절 초두에 <호스테>라는 접속사가 나오는데 이는 '그래서(So .... That)'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1]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은사'라는 말은 주님의 일을 하도록 성령에 의해 주어지는 특별한 능력을 의미한다. 따라서 은사는 자연적인 재능 이상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말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은사는 종종 사람의 자연적인 재능에 영적인 권능을 부여함으로써 만들어지고 개발되는 경우가 많았다.
신약 성경에서 구원(롬 5: 15), 일반적인 하나님의 선물(롬 11: 29), 성령의 특별한 능력(12: 4)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 롬 5: 15 -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 롬 11: 29 -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에서는 전체 문맥을 고려해 볼 때 그리스도의 증거가 고린도 교회에 좋게 받아들여져서 나타난 열매를 의미하는 것 같다.
고린도 교인들에게 믿음, 지식과 같은 내적인 은사뿐 아니라 이적 행함과 병 고침, 방언과 예언 같은 외적인 은사들이 풍성하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든 은사에 부족함 없이'란 말은 부정사(Infinitive) 구문으로서 '아무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고'란 말이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선물을 그들이 넘치도록 받기 위하여’라는 뜻이다.
2]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나타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칼립신'(*)은 문자적으로 '뚜껑을 열다', '수건을 벗긴다.'라는 의미이다. 성경은 대부분 '계시'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 말은 종말론적인 용어로서 감추었던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참뜻은 현재에는 비밀에 속한 것인데 종말에는 비로소 완전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기다림이라'의 헬라어 '아페크데코메누스'(*)는 바울이 주로 사용한 단어로 초대 교회 교인들의 종말론적 삶을 잘 표현해 준다.
본 절에서 이 단어는 강하고도 진지하게 기다리며 경성한다는 의미를 지니며 '간절하게 기다리면서'(eagerly waiting for, NIV)라고 번역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들의 간절한 기대는 주님의 종말(終末)에 관한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 마 24: 30, 34 -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초대 교회의 모든 성도는 가능하면 그들이 살아 있을 때 주님께서 재림하시기를 바랐다.
* 고전 15: 51 -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 살전 1: 9-10 - 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 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 약 5: 8-9 - 8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 벧전 4: 7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 요일 2: 18 -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 계 22: 20 -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바울은 또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그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한 이유이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렸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모든 성도에게 항상 있어야 할 요소들이다.
믿음은 과거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는 것이며, 사랑은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실천하는 것이며, 소망은 미래의 영광의 세계를 사모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성도의 소망의 첫 번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 후에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을 것이며, 마지막으로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성도의 삶의 원동력이요 위로이다. '재림'은 헬라어로 <파루시아>인데 정확하게는 '강림'으로서 '곁에 오심'이란 뜻이므로 '계시'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은사에 부족함이 없도록 받기 위함과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주님의 다시 오심은 오직 심판하시기 위함뿐이라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은사는 성도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목적이며 하나님 나라와 성도들을 서로 섬기게 하려고 주시는 것이다. 성도가 풍성한 은사를 받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이용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지식을 더욱 확고하게 할 수 있으며, 주님과 성도들을 더욱 열심히 섬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성도에게 풍성한 은사를 주기 위하여 자신의 것들을 많이 계시해주시며, 성도들은 주님께서 주님 자신의 것들을 나타내 보여주실 것을 고대하게 된다.
고전 1 : 8 -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 (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
8-9절은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주 예수의 날까지 책망받지 않는 자들이 되기를 간구하는 한편, 성도를 주님과 교제케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하는 내용이다.
8절은 미래시제로 표현하여 희망과 소원, 간구를 나타내고 있다.
1] 주께서
'주께서'라는 인칭관계대명사 '호스'(*)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정확하지 않다.
7절을 미루어 볼 때 그리스도인 듯하지만(Origen, Meyer, Robertson), 9절에서 하나님의 미쁘심을 언급한 것으로 비추어 볼 때 하나님 아버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Calvin, Alford, Bengel, Hodge, Mare).
만약 그리스도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날에 견고케 하시리라'고 말하는 격이 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주의 날'이라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 계 1: 10 -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 주의 날에 [영] Day of the LORD, Lord's day - 종말론적 표현.
신약에서는 메시아적인 의미로서, 그리스도의 재림, 그 나라의 완성과 구원의 날로 인용되어 있다.
* 살전 5: 2 -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 살후 2: 2 -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 벧후 3: 10 -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것은 '그 날'[마 7: 22. 눅 6: 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고전 1: 8. 5: 5. '주 예수의 날', '그리스도 예수의 날'[빌 1: 6, 10], 또는 '주 예수의 날'[고후 1: 14]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주 예수의 부활된 날을 뜻하는 말로서, 오늘의 일요일에 해당된다. '안식 후 첫 날'로도 불린다.[마 28: 1. 막 16: 2. 눅 24: 1. 요 20: 1]
교회에서는 일찍부터 성일로 지켰다. 처음에는 교회에서 안식일과 일요일이 지켜졌으나, 후에는 일요일만을 주일로 지키게 되었다.
(2) 여러 견해.
① 여호와의 날. - 세대주의자.
스코필드[C. I. Scofield]는 이중 재림을 설명하면서 그리스도의 날과[환란 전 휴거] 주의 날로[심판의 때] 구분하였다. 주의 날에 주님이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미래적인 날로 주장 하였다.
② 안식일. - 안식교. 주의 날을 구약의 율법에서 규정하는 안식일로 본다.
③ 주의 첫날. - 개혁주의 신학자.
칼뱅[Calvin] : 주의 날은 모든 사람들이 선택하였다. 이유는 주님이 부활하심으로 율법의 그림자를 폐하였기 때문이다.
마운스[R. H. Mounce] : 주중의 첫날에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여 승리 하셨기 때문이다. 이교도들이 그들의 황제를 공경하기 위하여 하루를 정하여 놓은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매주의 첫날을 택하였다.
(3) 저자의 견해.
① 여호와의 날로 볼 수 없다.
⒜ 문맥적인 의미
본문은 주의 날에 성령의 감동으로 발생하였다. 여호와의 날은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 사건이 아니다.
구속사의 완성을 이루는성령의 인침을받는 자를추수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본문의 날은 요한이 살아서 기록했던 매주의 첫날로 보아야 한다.
⒝ 원리적인 의미
계 1: 19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여기에 심판 주로 오시는 여호와의 날을 대입한다면 심판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장차 될 일을 기록한다는 모순이 발생한다.
⒞ 원어적인 의미
계 1: 10은 '주의'라는 소유격 퀴리우[kurivou, of the Lord, 살후 2:2, 벧후 3:10]가 아니라 형용사인 퀴리아케[kuriakh;, Lord’s]이다.
② 안식일로 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다.
* 막 2: 28 -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구 분 : 안 식 일 : 주 일
신 학 적 : 창조의 기념[창 2: 2-3] : 새 창조의 기념
계 약 적 : 옛 계약의 끝 : 새 계약의 시작
의 식 적 : 율법적 제사[죽음] : 복음적 예배[부활]
모 형 적 : 예수 안의 안식 축복 : 신천신지의 영원 안식
구 속 적 : 우리 죄로 무덤에 계심 : 부활의 첫 열매
영 적 : 엿새 동안의 수고에서 해방 : 죄 짐에서 해방
결 론 : 구원의 과정[속죄의 필요] : 구원의 결과 [고전 15: 23-27]
대환란의 날의 예언에 언급된 안식일
* 마 24: 20 -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바울의 안식일의 강론과 주일의 강론- 행 17: 2, 18: 4. 20: 7. 고전 16: 2.
안식일(메시아의 도래)과 주일(재림의 도래).
태양의 날과 주의 날
③ 토요일을 주일로 변경 시키신 이유.
⒜ 구약의 예언은 폐한다고 했다.
* 히 7: 18-19 -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 마 5: 17-18 -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 호 2: 11 - 내가 그의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
⒝ 다른 날을 정할 것이 예언되었다.
* 히 4: 7 -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 사도 바울의 증명.
* 골 2: 16-17 -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주일에 성령이 강림하셨다.
* 레 23: 10-16 - 10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11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12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고 13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십분의 이 에바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로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사분의 일 힌을 쓸 것이며 14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볶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15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곡식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일곱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하여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 행 2: 1 -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초대 교회에서 주일을 지켰다.
* 행 20: 7 -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각종 역사 문헌이 증거하고 있다.
⒢ 주님이 부활하신 날이다.
'주의 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 퀴리아케 헤메라'(*)는 문자적으로 주께 속한 날을 의미하는 것으로 '안식 후 첫날'(*) 혹은 '매주일 첫날'(*)과 같은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유대교의 안식일이었던 토요일이 사도 시대부터 안식일 다음 날인 주일로 대치된 것을 가리킨다(Morris, Lenski, Ladd).
* 막 16: 2 -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찍이 해 돋을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 눅 24: 1 -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 요 20: 19 -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행 20: 7 -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고전 16: 2 -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름다운 모습은 눈에 남고, 멋진 말은 귀에 남지만 따뜻한 배려는 가슴에 남는다고 합니다.
오늘도 따뜻한 사랑 나누며 즐겁고 행복한 날 되십시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