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서해안 산골에서 한국전쟁 이전에 태어났고, 자랐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60년대, 70년대 초까지의 시대는 정말로 어려운 세상이었다.
시골사람 대부분은 무학(학교에 다니지 못해서 까막눈)이었고, 십리도 더 먼 새장터에 나가려면 산길(신작로)을 걸어다녀야 했다.
※ 일제시대에 낸 도로(606도로)를 '신작로'라고 불렀다.
※ '구장터' : 일제시대 철로가 개설되기 이전까지의 면소재지. 대천리.
1931년 장항선 철로가 완공되면서 역전이 있는 대창리가 새장터가 되었다.
옛 5일장은 매 5일마다 장이 임시로 선다.
사람들은 소달구지(구르마)을 끌거나 지게에 짐을 졌고, 머리에는 짐보따리를 이고서 장에 갔다.
걸어서 또 걸어서.
가까운 곳은 십리, 이십리, 삼십리, 오십리도 넘게 걸어 다녀야 했다. 왕복하려면 하루가 지나갔다.
시골장에 나가면 구경거리가 정말로 많았다.
긴머리를 뒤로 틀어서 쪽지 낀 아낙네들은 화장품인 '동동구루무'를 으레껏 샀다.
- 장에 나가거나, 시골구석마다 찾아오는 떠돌이(보따리)장사꾼한테 샀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동동구루무'
동백기름으로 만든 '크림'일까?
'크림 cream'을 일본말로는 '구루무'라고 발음한다. '동동구루무, 동동구리무, 동동구루모' 등으로 소리낸다.
지방마다 다소 다르게 소리를 낸다.
발음을 다소 다르게 나타내도 낱말은 붙여서 쓴다.
'동동구루무, 동동구리무, 동동구루모' 등이다.
이를 떼어서 쓰면 전혀 다른 뜻이 될 게다.
예 '동동 구루 무'는 3개의 단어로 된 문구이다. 3개 중 어느 하나를 빼도 별개의 단어로써 기능을 한다.
하지만 붙여서 쓰면 하나의 단어이다. 이를 통째로 빼면... 뜻은 전혀 없거나 본질이 크게 변질될 것이다.
우리말을 우리글로 적으려면 가장 어려운 것이 '띄어쓰기, 붙여쓰기'이다.
어문규정조차도 늘 변화하고, 바꾸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1950년대에서 1960년대 초까지의 시골생활을 기억하는 나.
1970년대 이후로는 농촌 산촌 어촌 등은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시대상으로 변화했다.
'동동구루무'는 무엇으로 만들까?
예전 동동구루무의 작은 통(곽)에는 동백꽃 그림과 사진이 들었다.
동백나무 열매로 만들었을까?
예전에는 시골에서는 아주까리열매, 분꽃열매를 깨뜨려 그 가루를 손바닥으로 비빈 뒤에 얼굴에 발랐다.
1949년 1월 생인 나도 어머니, 누나, 아주머니를 보았다.
동백나무 열매와 연관성이 있을 법하다.
2020년인 지금도 이런 장사꾼이 있을까?
있다.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매 4일, 9밀에 열리는 5일장)에 가면 예전 광대모습을 한 장사꾼들이 있다.
동동구무루는 없겠지만 예전 수십 년 전에 보았던 물건들, 광대 장사꾼의 흉내를 낸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많은 것을 기억한다.
1950년대의 전쟁 직후의 농촌상황
1960년대의 대전 중심지(목척교, 중교 중심)의 허름한 판자집들
1970년대 초에 번진 농촌 새마을운동
1980년대의 암울한 군사독재정치
...
2020년대인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세상은 정말로 많이도 변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라고 나는 말한다.
앞으로 100년 뒤의 세상은 어떠할까?
상상이 안 된다.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도도하게 변하기에...
나는 어린시절에는 서해안 해변가 뒷편 산골마을을 기억하며
초중고교 시절에는 대전 중심지(원도심지)지를 기억하며
1960년대 후반기에는 서울에서 학교 다녔기에 서울의 모습도 기억하며..
1970년대 후반기부터는 서울에서 자리잡고 지금껏 산다.
서해안 산골마을, 대전 원도심지, 서울의 중심과 변두리(강남3구)는 정말로 많이도 변모했다.
내 나이 일흔세 살인데도 세상은 정말로 많이도 변하면서 도도히 흘러간다.
서해안 산골마을에 있는 내 낡은 함석집의 창고 안에는 예전, 수십 년 전에 사용했던 물품들이 더러는 남아 있다.
늙은 어머니가 혼자서 사는 집이라서 그럴까?
민속품 수집가들이 슬쩍 훔쳐간 것들이 수두룩하다. 다 도둑놈들이다.
많이도 버렸고, 많이도 없앴던 옛것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남아 있다.
사라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
더 많이 보존했으면 싶다.
옛스러운 것들에 대해서 무관심, 방심했던 나를 반성한다.
'동동구루무' 단어를 변형시키면..
1. 동동 구루 무(3개의 단어)
2. 동동구무 무
3. 동동구루무(1개의 단어)
4. 동동 구루무
5. (동동)을 빼면... 구루 무
6. 구루무
7. (구루)를 빼면 ... 동동 무
8. 동동무
9. (무를 빼면) ... 동동구루
10. 동동 구루
11. (동동 구루 무)의 순서를 바꾸면... 구루 동동 무
12. 구루 동동무
13. ....
이하 생략
엄청나게 많이 변형시킬 수 있다.
'동동구루무'는 1개의 단어이지만 '동동 구루 무'는 3개의 단어다.
각각의 뜻을 지닌 단어를 합치면 합성어가 된다. 떼어서 쓰면 전혀 다른 뜻을 지닌다.
우리글에는 '붙여쓰기, 떼어쓰기'가 있다. 어떤 때에는 붙여서 쓰고, 어떤 때에는 붙여서 써야 한다. 이 구분이 정말로 어렵다.
1.
어떤 시를 보았다.
'아름다운 세상 위에
내리는 봄 꽃 비네요
생각하게 하는 문구이다.
'봄 꽃 비' : 3개의 단어이다.
어느 단어 한 두 개를 빼내도 뜻은 통할 게다.
제대로 쓴 것일까?
내가 위 3개 단어를 조어(합성)한다.
1) 원안 : 봄 꽃 비
2) 봄꽃 비
3) 봄 꽃비
4) 봄꽃비
5) 비 꽃 봄
6) 비꽃 봄
7) 비꽃봄
8) 꽃봄 비
9) 꽃봄비
10) 꽃 봄 비
11) 꽃비봄
12) 꽃비 봄
13) 꽃 비봄
14...
이하 생략.
시 내용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위 3개의 단어를 활용하면 엄청나게 많은 낱말을 조어한다.
국어사전에는 아래 낱말이 뜰 게다.
꽃 :
비 :
꽃비 :
봄꽃 :
봄비 :
봄꽃비 : 이런 표제어가 있을까?
이하 생략.
위 순서를 앞뒤로 바꿔서 조어하면? 글쎄다.
국어사전에는 조금은 뜰 것 같다.
1.
어떤 시를 보았다.
결언한다.
그 짧은 글(시)에서는 문장을 더욱 세심히 다듬어야 한다.
단어 합성어의 변화를 더 생각해야 한다.
나중에...
첫댓글 추억은 아름답지요
기억은 한사람의 것이지만 추억은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합니다
신작로 구르마 동동구루무 보따리 크림 등 오랫만에 듣는 토속어 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