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연중 제25주간 월요일 강론>(2023. 9. 25. 월)
(루카 8,16-18)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루카 8,16-18).”
주님은 빛 자체이신 분이고(요한 1,4), 신앙인은 그 빛 속에서
살아가면서, 그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사람입니다.
주님은 ‘광원(光源)’이신 분이고, 신앙인은 그 빛을 받아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비추는 ‘반사광(反射光)’인 존재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주님을 ‘태양’으로, 교회를(신앙인을) ‘달’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인은 바로 그런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예가 모세입니다.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탈출 34,29-30).”
주님을 만난 뒤에 모세의 얼굴이 빛났다는 것은, 그가 주님의
빛을 받아서, 그 빛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모세의 ‘빛남’은 주님의 영광과 권위를 대변하고 대리하는
그의 사명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삶 전체가 ‘주님의 빛’을 받아서 ‘빛이 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존재로서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등불의 비유’는
바로 그런 존재가 되라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등불’은 ‘복음’으로 해석됩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지 않는다.”
라는 말씀은, “너희는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지 말고,
침상 밑에 놓지 마라.” 라는 뜻입니다.
등불을 그릇으로 덮는다는 것은, 자기가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추고, 신앙생활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은 사실상 신앙을 버린 것입니다.>
등불을 침상 밑에 놓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보는 데에서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보는 사람이 없을 때에만,
즉 혼자 있을 때에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것도 사실상 신앙인이라는 것을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이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박해 때에 숨어서라도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과,
박해가 없는데도 세속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즉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려고 그렇게 하는 것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결국 각자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 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도록 등불을 등경 위에 놓아라.”
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훤히 나타나기
마련이다.”는 “신앙과 복음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라. 감추지 말고
알려라.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게 하여라.” 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즉 ‘구원의 빛’을
전해 준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9.11).”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19ㄴ-20).”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는 자들이 우리를 박해할 때,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 강하고 더 밝은 빛으로 세상을 비출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 정신과 순교 정신으로 더욱더 강하게 무장하고,
세상의 회개를 위해서 더욱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너희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잘 헤아려라.” 라는 말씀은,
당신의 가르침들을 잘 새겨듣고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는 “나의 가르침대로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복음 선포 활동을 하는 이는
더욱 풍성한 은총을 받을 것이다.” 라는 뜻의 약속입니다.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는 “신앙과 복음을 감추거나 숨기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받았던 은총마저 잃게 될 것이다.” 라는
뜻의 경고입니다.
<이 말씀은, 제 맛을 잃어서 쓸모없게 된 소금은 밖에 버려질
것이라는 경고 말씀과 같은 뜻의 경고입니다(마태 5,13).>
따라서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우리는 우선 먼저 자기 자신이 구원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고 선교활동을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내 몸을 단련하여
복종시킵니다.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1코린 9,22ㄴ.27).”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예수님의 말씀에서 ‘등불’은 ‘복음’으로 해석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