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렇습니까?- (So desu ka?)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율이 청정하고 수행이 깊어, 마을 사람들로부터 큰 존경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마을 유지의 딸이 덜컥 아이를 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상대는 마을의 생선 장수 청년이었으나, 두려움에 휩싸인 처녀는 아버지가 누구냐는
부모의 혹독한 추궁 끝에 엉뚱한 이름을 대고 말았습니다.
"저기... 산 밑 절에 계신 하쿠인 스님입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습니다.
격분한 부모와 마을 사람들은 갓 태어난 핏덩이를 안고 절로 들이닥쳤습니다.
"이 위선자야! 겉으로는 거룩한 척하더니, 이 아이가 네놈의 자식이란 말이냐!"
온갖 욕설과 비난이 쏟아졌습니다.평생 쌓아온 명예가 진흙창에 처박히는 순간이었습
니다.그러나 하쿠인 선사는 변명하지 않았습니다.당황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직이 되물었을 뿐입니다.
"아, 그렇습니까?" (So desu ka?)
그날부터 선사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존경의 대상에서 파계승으로 추락한 그는,
젖동냥을 하러 마을을 돌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돌을 던지고 침을 뱉었습니다.
"더러운 중이 어딜 기웃거려!" 선사는 묵묵히 그 모욕을 받아내며, 얻어온 동랑젖으로
아이를 정성껏 먹이고 돌보았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손가락질이 쏟아져도 그는 아
이를 품에 안고 덤덤히 하루를 살았습니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아이를 떠나보낸 죄책감과 스님에 대한 미안함을 견디다 못한 처녀가 마침내 진실을 털
어놓았습니다.
"사실 아이의 아버지는 스님이 아닙니다..."
진실을 알게 된 부모와 마을 사람들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절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사죄했습니다. "스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저희가 어리석어 스님을 모함했 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사람들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했습니다.온갖 누명을 쓰고 아이를 키운 지난 1년,
억울할 법도 하건만 하쿠인 선사는 이번에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습니다.
정들었던 아이를 순순히 건네주며, 1년 전과 똑같이 말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So desu ka?)
이 이야기에서 하쿠인 선사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인내가 아닙니다.그것은 중생의 고통을
대신 짊어지는 큰 자비심이자, 나를 내세우지 않고 상황에 그저 응하는 무아(無我)의 실천
입니다. 선사는 처녀가 내뱉은 거짓말을 알고 있었지만, 시비(是非)를 가려 처녀를 궁지로
모는 대신, 자신이 뒤집어쓰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렇습니까?”는 비난을 긍정한 말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한 중생과 이제 막 태
어난 생명을 살리기 위해, 비난조차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자비의 응답이었 습니다.
칭송받던 고승에서 파계승으로 추락했음에도,그는 상황에 저항하거나 의미를 덧붙이지 않
았습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듯, 아이가 오면 아이를 받아주고, 아이가 간다면 그저 보내
주었습니다. 군더더기 없는 '그저 함'의 경지입니다.
보통 사람은 칭찬을 들으면 기뻐하고, 비난을 들으면 분노합니다. 나의 명예, 나의 결백이
라는 ‘나(我)’가 굳건히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립니다.
그러나 선사에게는 그 '고정된 나'라는 착각이 없습니다. 욕을 먹는 나도, 칭송을 듣는 나도
실체가 없는 허상임을 알기에, 진흙탕에 굴러도 더러워지지 않고 온갖 비난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 거울이 붉은 꽃을 그대로 비추다가 꽃이 사라지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듯,그의
마음에는 어떤 찌꺼기도 머물지 않았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So desu ka?)
이 한마디는 세상의 온갖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나’를 완전히 비워낸 자만이 낼 수
있는 조용한 사자후입니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