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글 12
브루노 발터 저자(글) · 이기숙 번역
포노(PHONO) · 2022년 10월 01일 출시
이 책의 주요 내용
첫째, 음악에 대한 발터의 철학이 드러나 있다. 발터에 따르면 “ ‘모든 예술의 본질은 질서’다. 음악 연주도 질서정연하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이란 “우주의 원초적인 내적 울림이 인간에게 창조의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훌륭한 음악 작품의 예술적 가치는 창작자의 재능과 능력, 영감과 의도, 뛰어난 인격에 의해 최고가 되는가 하면, 무능하고 열등한 인격에 의해 가치가 떨어지기도 한다.
둘째, 재창조하는 연주와 연주자에 대해 말한다. 이상적인 연주자는 작곡가의 본질에 긴밀히 연결되어 작곡가가 느꼈을 영감, 열정, 비애감 등을 함께 느끼며(감정이입) ‘수용’하고 자신의 개성으로 그것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존재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연주자는 올바른 연주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속도’ ‘리듬’ ‘명확성’ ‘표현’ 4가지 측면을 갈고 닦아야 한다며, 베토벤, 슈만, 베버 등 여러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연주법을 상세히 제시한다.
셋째, 지휘자나 지휘자가 되려는 음악도들에게 말한다. 발터는 이 장에 특히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젊은 동료 지휘자들과 이 직업에 헌신하려는 음악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면서,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오케스트라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지휘자의 기술적 과제와 마음가짐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발터는 지휘자에게 필요한 요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휘자는 거의 암보할 정도로 총보를 철저히 공부해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분석해야 한다. 웬만큼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오케스트라의 화성적 울림을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실내악에서 피아노 파트를 맡아 함께하는 음악을 느끼고, 성악 반주를 통해 주선율의 반주 역할을 경험하기를 권한다.
이어 본격적으로 지휘의 길에 들어선 지휘자들에게 정확성, 감성, 표현의 상관 관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음악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 특히 오페라 지휘자에게는 연극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 그리고 음악 진행과 연기의 시간적 차이와 효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발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덕목은 지휘자의 ‘인격’과 ‘지성’이다. 지휘자의 인간적인 됨됨이와 소양은 공연의 예술적 성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성격을 스스로 다스려 좋은 인품을 갖추지 않거나, 정신적 소양을 다스리고 훈련하지 않고, 지적인 관심사에 몰두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음악 공부를 했더라도 원하는 목표에도 이르지 못한다. 요컨대 ‘그저 음악가이기만 한 사람’은 어중간한 음악가밖에 되지 않는다.”
“지휘자의 과제는 예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과제다. 인간과 교류할 줄 모르고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줄 모르는 사람은 지휘자라는 직업 적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넷째, 자신의 삶과 당대 예술을 회고하고 전망했다. 유대계 출신으로 나치의 폭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브루노 발터는 2차 세계대전 등 20세기에 드리워진 불안과 음울함, 급격한 문명 발전과 예술사조의 변화를 바라보는 심정을 이 글에 담았다. 그는 음악을 비롯 예술 분야에서 ‘현대적인 것’ ‘새로운 것’ ‘이질적인 것’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해 과몰입하는 현상을 목도하며 거기에서 ‘인격과 영혼을 앙양’하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발견할 수 없다는 심정을 고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대의 전망을 내비친다. “오늘날 뮤즈가 힘을 잃었어도, 차가운 영혼의 가을이 개화와 결실을 잠시 멈추게 했어도, 지금 세대의 재능과 노력이 근본적으로 물질과 기술 쪽에 가 있어도, 지구의 기후처럼 우리 시대의 정신의 기후가 위협적으로 변했어도, 내 확신은 말해준다. 저 샘에서 흘러나오는 정신과 도덕의 힘을 다시 동원하면 인류의 창조성은 질병의 시대를 이겨낼 수 있다고.”
두 개의 부록 : 바흐와 〈마태 수난곡〉, 모차르트와 〈마술피리〉
바흐와 모차르트의 작품을 음악적 철학적으로 자세히 분석한 이 두 글은 원래 본문 안에 수록되어 있었지만, 책의 성격을 더 잘 살리기 위해 한국어판에서는 후반부에 부록 형태로 실었다. 이 작품들의 공연이나 감상을 앞둔 사람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바흐의 〈마태 수난곡〉을 관행에 따라 부분 삭제 연주하곤 했던 것이 마음 아팠던 발터는 한참 후에야 무삭제 판본으로 이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 극작가로서 음악가로서의 바흐의 혼이 담긴 〈마태 수난곡〉을 지휘자의 시각에서 음악적으로 깊이 있게 설명한다.
두 번째 부록인 〈마술피리〉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분석하고 그 이면에 담긴 철학적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대본 작가인 에마누엘 시카네더가 당초 기획했던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모차르트의 개입과 영향으로 상당 부분 달라졌다. 모차르트와 이 아름다운 작품에 대해 발터는 이렇게 언급한다. “상당히 수다스러웠고 고백하기 좋아하는 모차르트였지만 평소엔 자신의 영혼 깊은 곳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그러다 〈마술피리〉에 이르러 비로소 자라스트로와 타미노를 빌려 자신의 속마음을 말한다. 여기서 모차르트만의 정신적 유언의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연주자와 음악 애호가들을 위하여
최근 실력 있는 젊은 연주가들에 의해 소위 ‘K 클래식’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연주의 수준과 관객의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연주자는 끊임없이 연주 실력을 연마하고, 감상자는 자신의 마음을 더욱 휘어잡을 무대와 음반을 찾아다닌다. 연주자도 애호가도 자문한다. ‘훌륭한 연주란 무엇이며, 대가들의 작품을 어떻게 해야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브루노 발터는 이 책 첫머리에서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 속에서 살고, 음악을 없어서는 안 될 영혼의 양식으로 여기는 사람은 누구나 나의 독자”라며,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기를 원했다.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의 글’ 시리즈
‘음악의 글’은 음악 전문 출판사 포노가 선보이는 새로운 시리즈로, 음악을 좀 더 깊이 읽고 폭넓게 이해하는 통찰이 담긴 글들을 한데 모읍니다.
제1권은 최초의 근대적 음악평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작곡가 로베르트 슈만의 《음악과 음악가 _ 낭만시대의 한가운데서》, 제2권은 리트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데 평생 헌신했던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리트, 독일예술가곡 _ 시와 하나 된 음악》, 제3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음악가, ‘미국 음악의 목소리’ 에런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_ 세계적 작곡가의 음악 사용 설명서》, 제4권은 프랑스 음악의 위대한 정신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분신 크로슈 씨를 통해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 《안티 딜레탕트 크로슈 씨 _ 프랑스 음악의 한 정신》, 제5권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신학자 한스 큉의 《음악과 종교 _ 모차르트-바그너-브루크너》, 제6권은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을 담은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_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제7권은 작곡가, 지휘자, 저명한 음악 교육자였던 이모겐 홀스트가 집필한 음악 교육서의 고전 《음악의 ABC _ 입문자를 위한 음악 기초 문법》, 제8권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지휘자 푸르트벵글러가 격변의 시대에 예술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음과 말 _ 에세이와 강연록》, 제9권은 음악과 음악가의 위대성에 대해 논하는 아인슈타인의 《음악에서의 위대 _ 위대한 음악가는 누구인가》입니다. 제10권은 시인 오든이 “역사상 최고의 음악평론가”라 칭송했던 버나드 쇼의 《쇼, 음악을 말하다 _ 거장 극작가의 음악 평론》, 제11권은 세기말과 세기초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지휘자, 슈트라우스의 예술과 인생에 대한 성찰이 담긴 《사색과 기억 _ 예술과 인생에 대하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