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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드로잉5500
나의 드로잉은 무엇인가?
9월 13일.
뉴욕을 향하고 있다.
창밖으로 비행기 날개 한쪽이 프레임으로부터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한다.
미명의 구름은 떠난자의 마음에 붉은 기운을 더한다.
이제 항로는 태평양을 넘어 알래스카 남쪽 뱅쿠버를 스쳐간다.
40명의 동행자들. 그들은 지금 어둠 속에 있다.
떠난 사람들...그리고 저마다 작은 죽음 속에 있는 사람들...
아주 잠시 어제의 삶을 접어야 하는 사람들...
존 버거가 그랬던가. <떠남은 작은 죽음이라고(partir est mourir un peu)>
그렇겠지. 떠난다는 것은 이전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죽음이겠지...
그들은 무엇 때문에 무빙드로잉에 동승했을까? 아니 왜 스스로 작은 죽음을 선택했을까?
5500km의 미대륙 횡단....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보고자 한 것일까?
동승자들...미대륙 횡단 프로젝트는 전수천의 작품일지 모르나, 완성자이자 스스로 작품이 되는 사람은 동승자들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꿈을 위해 동승했을까? 무엇을 보기 위해 그 먼 횡단길에 올랐을까? 어둠이 미명 앞에 저만치 달아난다.
2000년 가을이었다. 전수천의 만남은 삼성이 운영하는 아티스트 레지던트 운형궁 스튜디오였다. 그때 처음 우리는 애리조나 사막에서 1000대의 모니터에 투사될 <월인천강지곡>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고 그리고 대륙횡단의 꿈을 서로 나눌 것을 상의했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그 꿈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5년 후에 무빙드로잉으로 부활했다. 무빙 드로잉...
무빙 드로잉은 15칸의 암트랙 기차에 흰 천을 씌워 뉴욕에서 LA까지 7박 8일 동안 달리는 동안 대륙을 캔버스 삼아 드로잉하는 것이다. 여기서 흰 천은 한국성을 의미할 뿐 아니라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고 흡수하고 가슴에 안을 수 있는 열린 색이며, 그것이 미대륙에서 펼쳐지고, 동에서 서로 이동하는 것은 근대 역사 속에서 미대륙 만큼 유량, 이주, 이민을 통한 자유, 평화, 희망을 상징하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부는 미국인의 꿈과 영혼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꿈과 희망 혹은 좌절과 역경을 상징하는 유랑자, 이주자, 이민자의 꿈과 영혼이다. 무빙 드로잉은 모든 것을 수용하고 포용하는 흰 색 가슴이다. 작가는 그것들을 꿈꾸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빙 드로잉의 영혼과 꿈을 궁극적으로 살려내는 자는 작가가 아니다. 바로 저마다 그 흰색 기차에 동승하여 나와 세상을 향하는 인사이드, 아웃사이드의 동승자들이다. 기차에서 일어난 사건들은 제각자의 시간에 새겨진다. 모든 육체의 시간과 의식의 시간은 끊임없이 도달하고 떠나가는 그들의 시간 속에 있다. 움직임과 이동은 근원적 삶의 경험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떠난 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나의 드로잉은? 나는 1995년 자동차로 미대륙을 횡단했다. 17일 동안 23개주 1만 2천 킬로미터를 달렸다.그때 횡단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미국땅을 훑지 않고 미국사진을 말한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스스로의 당위성을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1954-55년 로버트 프랭크가 달렸던 그 길을 달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 나는 우리의 자동차와 나란히 달리는 대륙횡단열차를 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저 열차를 타고 미 대륙 심장부를 관통하고 싶다고...
대륙횡단열차...1865년 남북전쟁이 끝나고 시작된 국책사업.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저 철길을 놓기 위해 티모시 오설리반, 알렉산더 가드너와 같은 위대한 사진가들은 지질탐험대에 앞장섰다. 그리하여 그들은 수많은 협곡과 거친 사막과 야생의 원시림을 만났고 마침내 유니언퍼시픽 연방철도와 센트럴 퍼시픽 연방철도가 부설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중국인노동자들이 그리고 아메리컨 인디언들이 죽어갔는가.
나는 보고 싶었다. 뉴욕-필라델피아-워싱턴 D.C.-피츠버그-클리브랜드-시카고-스프링필드-세인트루이스-캔사스시티-가든시키-앨부퀘키-산타페-플래스스탭(윌리엄스)-그랜드 케년-LA로 이어지는, 동부-중부-서부로 이어지는 미대륙 심장부(오겹살)를 관통하면서 1865년부터 시작된 서부개척시대의 사진적 무대를 볼 것이고 수족, 샤이안족, 모히킨족, 아라파호족, 코만치족, 나바호족, 아파치족과 같은 인디언들의 땅을 볼 것이고, 그리고 와이드 빌, 케리 버틀러와 같은 와일드 웨스트 서부 총잡이들의 땅을 볼 것이고, 그리고 오늘의 아메리카를 일군 철강업자 카네기, 금융업자 J.P 모건, 철도업자 스텐포드, 정유업자 록펠러와 같은 대도(大盜)들의 땅을 볼 것이다.
철도는 단호한 존재감이다. 나는 그 길을 드로잉 할 것이고,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사진에 담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래전에 닿았던 그곳들에 대해서 말할 것이다. 당신과 함께 했던 그 시간들, 서로를 그렸던 그곳에서 각자의 시간들을 새겼다고....
어떤 사람은 책을 보고, 또 어떤 사람을 잠을 자고, 또 어떤 사람을 상념에 잠기고....앞좌석의 꼬마가 승리의 V를 그려 보인다. 곧 뉴욕이다.
Luc Baiwir - Ocean de Lumiere
글:진동선(사진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