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싯다르타)
석가(釋迦, BC 563-BC 483)
원래 부처는 종교의 창시자가 아니다
부처는 그 당시 인도의 자칭 많은 신들을 숭상하며
사람이 신이 되는 거라며 수행하던 사람들 중 뛰어난 언변가요 수행자였을 뿐이다.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목적없는 고달픈 인생길이었을 뿐이다.
“석가”(Sakya)는 민족의 명칭이고 “모니”(muni)는 성자라는 의미로,
“석가모니”(釋迦牟尼)는 “석가족(族)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본래의 성은 “고타마”(Gotama:瞿曇),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悉達多)인데, 후에 깨달음을 얻어 붓다
(Buddha:佛陀), 즉 “부처”라 불리게 되었다.
“부처”라는 말은 “깨달음을 얻은 자”라는 의미이다.
소위 어리석은 세상이 말하는 석가모니는 공자, 소크라테스,
(주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상사람들이 세계의 4대 성인이라 불리는 인물이다.
싯다르타의 출생
현재의 네팔 남부와 인도의 국경부근인 히말라야산(山) 기슭의
카필라성(Kapilavastu:迦毘羅城)을 중심으로 샤키야(석가)족의 작은 나라가 있었다.
석가모니는 그 나라의 왕 슈도다나(uddhodna:淨飯王)와 마야(Maya:摩耶)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전설에 따르면 석가모니가 태어났을 때, 히말라야산에서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찾아와
“집에 있어 왕위를 계승하면 전세계를 통일하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며,
만약 출가하면 반드시 부처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싯다르타의 삶
석가모니는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이모에 의하여 양육되어 왕족의 교양에 필요한 학문과 기예를 배우며 성장하였다.
당시의 풍습에 따라 16세에 결혼하였고, “라훌라”라는 아들도 얻었다.
왕자로서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을 하던 싯다르타는 어느 날 우연히 성문 밖으로 나갔다가
병든 사람이 괴로워하는 모습과 죽은 사람이 실려나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후 그는 삶의 허무함과 고통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싯다르타는 29세가 되던 해에 왕자의 지위와 가족들을 다 버리고 성을 떠났다.
그는 어떻게 하면 이 땅의 고통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고자 하였다.
먼저 그는 남쪽으로 내려가 갠지스강(江)을 건너 마가다국의 왕사성으로 갔다.
여기에서 “알라라칼라마”와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2명의 선인(仙人)을 차례로 찾아 가르침을 받았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통일에 의하여 하늘에 태어나 보려는 것이었는데,
석가모니는 그들의 방법으로써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탈할 수 없다고 깨닫자
그들로부터 떠나 부다가야 부근의 산림으로 들어갔다.
여기에서 그는 당시의 출가자의 풍습이었던 고행(苦行)에 전념하였으나,
신체가 해골처럼 되었어도 해탈을 이룰 수는 없었다.
고행은 육체적인 면의 극소화를 통하여 정신의 독립을 구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금욕주의”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6년 간의 고행을 중단하고, 다시 보리수(菩提樹:Bodhi-tree) 아래에 자리잡고 깊은 사색에 정진하여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여기서 그는 “부처”(깨달음을 얻은 자)라 불리게 되었다. 이 깨달음의 내용은 차후에 살펴보도록 하자.
싯다르타의 죽음
중부인도(印度) 각지를 45년의 긴 세월에 걸쳐 설법․교화(敎化)를 계속한 석가모니는, 80세의 고령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의 중병에도 불구하고 교화 여행을 계속하였다. 이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여러 가지 유언을 하였다고 한다.
“교주(敎主)의 말은 끝났다. 우리의 교주는 없다고 생각하여서는 아니 된다.
내가 설한 교법(敎法)과 계율이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내가 언제나 말하지 않았느냐. 사랑하는 모든 것은 곧 헤어지지 않으면 아니 되느니라.
제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말하리라. 제행(諸行)은 필히 멸하여 없어지는 무상법(無常法)이니라.
그대들은 중단 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니라”고 설한 후 눈을 감았다.
[정리와 평가]
석가모니는 훌륭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참진리 창조주 하나님을 전도할 수 없던 세상의 신을 따른 사람일 뿐이었다
보통 사람들 이상의 뛰어난 인내와 수행은 통과한 사람이다.
그는 왕자이면서도 그것을 포기할 만큼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그는 다만 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한번 태어나서 인생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한 한 사람에 불과했다.
다만 삶이 조금 특별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을 구원할 수도 없었고 다른 이들도 구원할 수 없었다.
그는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죄의 본성을 가진 죄인에 불과했다.
석가모니 스스로도 자신이 신이라거나, 신의 아들이라거나, 구원자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세상의 신 사탄의 마음을 받는 후대 사람들이
석가모니를 신?의 반열이나 숭배대상으로
로마가톨릭이 마리아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듯 만들어 놓았을 뿐이다.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은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처형하였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온전하여져서 너희 앞에 서게 되었느니라.
이 분은 너희 건축자들이 쓸 데 없다고 제쳐 놓은 돌이었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다른 이에게는 구원이 없나니,
이는 하늘 아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이름을
인간에게 주신 적이 없음이라."고 하더라. (사도행전 4장중)
첫댓글 석가모니는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기원전 7 ~ 8세기 경부터
스리랑카 지역에
팔리어로 쓰인 원시 경전들이 있었는데
고타마 싯다르타 이름을 내어
대입시킨 것이 불교 경전들입니다
실제 불교 경전들은 주후 1~2세기
여러 사람들의 생각들로
편집 된 것입니다 ~ !
자기들 좋은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