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에 들어간 부품에 따라 ‘이 PC가 어느 정도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때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프로세서다. 0과 1이라는 디지털 신호로 모든 것이 판가름되는 컴퓨터에서 성능을 수치로 간결하게 재단해버려, 지금까지 컴퓨터의 발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의 역할을 해왔다. PC를 구성하는 부품의 수는 여럿 되지만, 이중에서 중요하기로는 프로세서만한 것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프로세서 시장은 인텔과 AMD의 경쟁 사이에서 유지되고 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갈라져 나온 이 두 기업은 PC의 대중화를 이끈 x86 규격 프로세서를 내놓아 일반인들이 컴퓨터를 생활에 접목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이 둘이 판매하는 프로세서들은 모두 성능이 일정 수준 이상이므로, 일단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해 따로 고민할 필요 없이, 다나와에 나온 정보와 가격을 보고, 자신에게 맞는 프로세서를 선택하면 된다.
양자택일. 말은 간단한데, 정작 선택하자면 고민만 깊어지기 딱 좋다. 특히 나름대로 저렴하다는 보급형 모델을 살펴보면, 듀얼코어 펜티엄과 애슬론64 X2가 딱 눈에 들어오는데,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처럼, 그게 그것인 것 같아 상당히 고민된다. 조금만 눈을 올려다보면 코어2 듀오나 페넘이 눈에 아른거리긴 하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유저에게는 보급형 프로세서 중에서 가장 좋은 게 무엇인지 그게 더 궁금할 노릇이다.
보급형 시장의 절대강자 E2160 VS 4200+
현재 시장에서는 듀얼코어 펜티엄 E2160과 애슬론X2 4200+가 보급형 PC용으로 가격대성능비가 가장 우수하다고 보고 있다. 예전에 나온 기술이고, 예전에 나온 제품이라곤 하더라도, 시스템에서 제 역할을 우수하게 이어나가고 있다. 특히 요즘 나온 어지간한 소프트웨어를 쓰기에는 큰 부담이 없는데, 캐주얼 게임이나 각종 인터넷 서비스들을 주로 쓴다면 지금부터 살펴볼 프로세서만으로도 충분하다.
카드현금동일가를 기준으로 본다면 AMD 쪽이 1만원 가량 적게 보인다. 인텔이 약간 비싸게 보여 단가에 민감한 소비자라면 AMD에 혹할 수 있다. 이 정도 가격에 판매되는 프로세서들은 대개 그래픽, 사운드, 네트워크 등이 메인보드 하나에 모인 통합 메인보드를 쓰는 시스템에 주로 쓰이는데, 만원 한 장이면 다른 곳에도 신경 쓸 수 있어 일선에서 조립하는 입장에서는 꽤 크게 느껴질 금액이다.
그런데, PC를 구입할 때 부품 가격만이 선택의 전부가 아니다. 프로세서는 플랫폼을 나누는 하나의 기준이기도 하다. 인텔 프로세서가 약간 더 비싼 대신, 메인보드 선택의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다. 특히 펜티엄 브랜드 프로세서는 LGA775 소켓을 단 초기 메인보드부터 최신 메인보드까지 가용성이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이다. 때문에 LGA775 소켓이 있는 메인보드가 이미 있다면 바이오스 업데이트 등을 통해 바로 재활용이 가능하다.
인텔 펜티엄 E2160
인텔 펜티엄 콘로 E2160 정품 : 64,000 원
가격 외에 동작 클럭과 L1 캐시 메모리 크기 정도가 다르다. 프로세서를 구성하는 마이크로아키텍처가 서로 다르므로, 클럭과 같은 수치보다는 테스트를 통해 산출되는 정보를 보는 것이 알맞을 것이다. 또 클럭은 오버클럭에 의해 그 산출이 판이하게 달라지므로, 정규 클럭에서의 성능을 알아두는 것이 더 유용하다. 사실, 오버클럭을 따진다면 코어 마이크로아키텍처를 채택한 인텔이 훨씬 유리해진다. 만원의 핸디캡은 금새 날아간다.
오버클럭을 하게 되면 코어에 부하가 늘어나 내구성과 수명이 약해진다는 것은 상식이다. 때문에 오버클럭은 그리 권장할 일이 못된다. 무엇보다, 오버클럭으로 고장이 나면 그건 사용자 책임이므로, 아까운 부품을 버릴 일이 생긴다. 이런 핸디캡을 감수하고 오버클럭을 한다면 코어 마이크로아키텍처를 채택한 인텔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인텔과 AMD 사이에서 우왕좌왕했지만, 이제는 오버클럭하려면 뭘 사야 되는지는 정해져 있다.
AMD 애슬론64 X2 4200+
AMD 애슬론64-X2 브리즈번 4200+ 정품 : 54,000 원
플랫폼 베이스로 보급형 시장공략
펜티엄 E2160이 애슬론64 X2 4200+에 비해 가격이 약간 높긴 하다. 그러나 비싸다고 해서 꼭 불리한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대로 메인보드 가용성과 오버클럭 성능이 워낙 강세여서, 이 부분에 무게를 둔다면 인텔 플랫폼으로 손이 갈 것이다. 메모리건 하드디스크건 다른데 아무리 돈을 써봤자, 프로세서 하나 바꿔서 얻는 성능에 비하면 초라하기만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AMD가 꼭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AMD는 작년에 인수가 완료된 ‘ATI’라는 히든카드가 있다. ATI 브랜드로 최근 출시된 780G 칩셋 메인보드는 강력한 내장그래픽 성능으로 별도의 애드온 그래픽카드를 사지 않으려는 유저에게 적합하다. 아니면 애드온 그래픽카드를 사서 달되, 게임을 하지 않을 때에는 그래픽카드를 쉬게 해 약간이라도 전기요금을 아끼려는 알뜰한 소비자에게 적당하다.
똑같은 프로세서고, 성능도 엇비슷할 것으로 보이는 두 부품은 쓰이는 데는 같으나, 정작 시장에서 마케팅되는 그 순간에는 그 입장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앞서 본대로 각각 우세를 보이는 부분이 극명하다보니, 인텔은 성능과 브랜드 파워를 중심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보급형 PC 시장에 대한 인텔의 공세는 매우 매섭게 일어나고 있다. 반면, AMD는 페넘 X4, X3의 연이은 발표로 미드레인지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AMD가 무게 중심을 보급형 시장에서 트리플코어, 네이티브 쿼드코어가 배치된 중급형 시장으로 옮겨감에 따라, 그동안 AMD 점유율을 유지해 온 셈프론, 애슬론64, 애슬론64 X2 제품군은 그 포지션이 약간 애매해진 측면이 있다. 인텔의 공세에 맞서 대폭 가격인하가 필요한 시점인데, 펜티엄 브랜드 제품군의 가격이 턱 밑까지 치고 들어왔는데도 요지부동이다. 이번에 비교해 볼 펜티엄 E2160이 애슬론64 X2 4200+보다 ‘10000원’ 가량 비쌈에도 브랜드, 가용성, 오버클럭 등 프리미엄을 생각하자면 비싸게 안 느껴지는 게 문제다.
미니 벤치마크
이제, 두 프로세서의 성능 비교해보자. 프로세서와 메인보드 외에는 모두 같은 조건으로 맞췄으며, 프로세서 성능만을 알아보는 애플리케이션들을 중심으로 실험했다. 메인보드의 수준이 맞지 않으나, 이번에 프로세서의 성능만을 알아보는 차원에서 제한을 걸어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 부분이다. 이 외에 오버클럭을 하지 않았는데, 이는 프로세서의 정격 클럭 상태에서의 차이만 알아보기 위해서다.
낮은 가격이 모든 것을 용서해주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만원 가량 비싸다는 E2160 프로세서가 기본 성능에서 지속적인 우세를 이어나가는 부분은 가격 차이를 어느 정도 용인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키텍처 특성상 부동소수점 연산이 나은 AMD의 부분적인 우세가 있긴 하나, 통상적으로 쓰이는 애플리케이션들이 대개 정수 연산 기반임을 감안하자면 일반적인 환경에서의 우세가 엿보인다.
프로세서의 산술 성능을 알아보는 산드라 XII SP1으로 두 프로세서를 비교해봤을 때, 한 가지 주의할 부분은 프로세서 멀티미디어 테스트에서 정수 부분 성능이다. 인텔 프로세서가 보다 발전된 인스트럭션 명령어 세트를 지원함에 따라, 상당한 성능 격차를 보여주긴 하는데, 여기에 쓰이는 단위 기준이 다르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나 특정 인스트럭션 명령어 세트를 쓰는 애플리케이션에서 유독 유리해진다는 점은 명확해 보인다.
PC마크05에서 제공되는 CPU 테스트는 총 여덟 가지 테스트를 수행해 수치로 프로세서의 성능을 뽑아낸다. XP Startup처럼 단일 작업만 하는 경우도 있고, 여러 쓰레드로 동시에 여러 애플리케이션을 구동하는 경우도 있다. 앞서 본 산드라처럼 프로세서 성능만을 도출해내는 것은 아니고, 시스템 요소를 감안해서 프로세서의 작용을 파악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런 배경을 감안해 보면, 총점 기준으로 130점 가량 인텔이 앞섬을 알 수 있다.
프로세서 특징에 따라 부분적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슈퍼파이는 원주율 값을 소수점 단위 별로 추출 연산해 나가는 사이클을 시간(초) 단위로 알아보는 애플리케이션이다. 여기서 'M'은 소수점 이하 백만자리까지의 단위수를 뜻하는 것으로 1M이면 소수점 백만 자리까지 연산하는 것을 뜻한다. 테스트는 단일 코어만을 쓰므로, 코어 자체의 성능 격차를 알아보기 좋은 구성이다. 단위는 '초'로, 작은 값을 나타낼수록 빨리 연산을 끝냈다는 뜻이다. 여기에서도 인텔 프로세서가 우수함을 뽐냈다.
가격대성능비는 인텔, 절대가격은 AMD
인텔이 코어2 브랜드로, AMD가 페넘 브랜드로 시장을 몰아가고 있다고는 하나, 시장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것은 보급형 시장을 겨냥한 저렴한 프로세서들이다. 축구에서는 미드필드가 강해야 된다지만, 시장에서는 뿌리가 튼튼해야 판촉이 제대로 되는 법. 따라서 보급형 시장을 잡는 프로세서 제조사가 천하를 움켜쥐게 된다. 지금까지는 셈프론과 애슬론으로 AMD가 우세였는데, 인텔이 철지난 이름 같던 ‘펜티엄’으로 권토중래(捲土重來)를 천명한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인텔 이름값이랄까, E2160과 4200+를 비교해보자면 인텔이 약간 더 비싼 상황이다. 그러나 프로세서의 내외를 고루 따져본다면 이게 단가 측면에서 그다지 문제가 되질 않는다. 쓸 수 있는 메인보드가 넘쳐나고, 오버클럭은 기본 기능처럼 되는 프로세서다 보니 돈 만원 더 못쓸 이유가 없다. 그러나 단돈 만원이 아쉽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어쨋건 AMD 프로세서도 부팅은 잘 되니까 그 쪽에 손이 갈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4200+가 가격을 확 내려 E2160과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아직 AMD에서 가격 인하를 시장에 빨리빨리 반영하지는 못하고 있어, 인텔에게 추격의 빌미를 줬다. 게다가 인텔은 ‘오버클럭’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품고 있어 폭 넓은 메인보드 제품군과 조합했을 때 어떤 시너지를 낼지 모른다. 이런 사정을 두루 감안하자면 현재로선 ‘가격대성능비는 인텔, 절대가격은 AMD’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