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는 자본주의의 숙명과 같다.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에 불현 듯 떠오른 말입니다.
영국이 가장 번성하고 산업혁명으로 전세계를 주름잡던 19세기 영국 런던은 빈민의 소굴이었습니다. 템즈강은 오염물질로 시궁창 냄새가 났고, 아동 노동 노동착취 등 노동자들은 가장 열악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스피넘랜드법을 만들어 최저임금을 보장하려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습니다.
그후, 기계파괴 운동인 러다이트 운동 노동자 참정을 요구한 챠티스트 운동으로 1900년 겨우 영국 노동당이 창당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주의 천국 미국과 영국과 한국에는 노숙자 거지들이 넘처납니다.
자본주의 특성상 빈부의 격차가 있는건 어쩔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왜 갑자기 양극화라는 표현을 했을까요?
자본주의 천국, 미국에도 양극화라는 말이 있을까요? 물론 물리학적 용어로는 존재하겠지만, 어쩌면 경제학자나 정치학자들의 논리에 지금까지 쓰여진 말일지도 모르지만, 느닷없이 나타난 양극화라는 단어에 주목을 해야 할 거 같군요.
양극이라함은 북극과 남극, 극과극,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너무나 멀어서 서로 섞일 수 없는, 그래서 화해나 이해조차도 할 수 없는, 어쩌면 슬프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절망적인 단어가 아닐까요?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무엇인가 할려고 합니다. 사회주의자 분배주의자들이 손 놓고 그냥 있지는 않겠지요.
어거지로 일자리를 만들려고도 합니다. 복지예산을 늘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 민생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고도 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요?
제 판단으로는 절망적입니다. 현재 한국의 현실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획기적인 복지 정책이 아닌다음에서야 이 사태를 막을 수 없습니다.
획기적인 伏地政策이라함은, 북유럽 처럼 사람들이 먹고 자고 교육받고 병원가는데는 어떤 불안도 없는 사회를 만듬을 말합니다.
사람들은 삼성과 현대가 수출을 많이해서 돈을 많이 벌어오면, 그 돈들이 풀려서 배고픈 사람들도 구제될 거라는 환상에 빠집니다. 그것이 경제활성화의 기폭제가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사상최고의 수출과 주가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실이 국민들에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배가 고팠습니다.
왜?왜?왜?
IMF 이후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들이 말하듯이 뼈를 깍는 구조조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올바른 구조조정이 아니었습니다. IMF 조차도 국제투기자금에, 세계화를 부르짓던 무식한 김영삼이가 당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과정에서도 우리정부는 또 당했습니다. 막대한 공적자금을 쏟아부으며 알짜배기 기업들을 구조조정이라는 이름하에 외국에 팔아넘기고 사원들을 길거리에 내몰았습니다. 온통 피해는 서민들의 것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절대 빈곤층이 생겨나게 되었고 양극화라는 말이 대두되게 이른 것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는 본부만 우리나라에 있을 뿐이지, 이제는 우리나라 기업이 아닙니다. 주주들의 절반이상이 이미 외국인입니다. 작년에 국제 투기자본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 79조를 벌어갔습니다. 우리 소액 주식 투자자들은 깡통만 찹니다. IMF 해결과정에서도 막대한 공적자금이 외국으로 사라저버렸습니다.
그 결과를 서민들이 뒤집어 쓰고 있는 꼴입니다.
원인은, 바로 세계화입니다. 저도 한때는 세계화 무한경쟁에 취해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니었습니다.
세계화는 자본주의가 팽창한 형태일 뿐입니다. 무한경쟁에 뒤처지는 기업이나 사람들은 빈곤층으로 급격하게 추락을 합니다. 미국의 투기 펀드나 환율조작에 우리나라 경제가 놀아납니다. 주가도 미국의 입맛대로 당할겁니다. 모든 것이 미국의 주도하에, 미국의 논리대로 질서가 잡혀갈 것입니다.
과연, 이 상태로 양극화가 해소가 될까요? 갈수록 양극화는 멀어집니다. 극과 극은 갈수록 멀어지고 손을 잡을 수도 이해나 화해를 할 수도 없어질 겁니다.
양극화, 답답합니다.
이 체제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