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죄 피의자인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9일 오전 3시경 서울서부지법은 무법천지가 됐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구속영장 발부에 항의하며 유리창과 외벽을 파괴하고 법원 건물 안으로 난입해 기물을 파손했을 뿐 아니라 영장을 발부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찾아다니는 등 폭력행위를 벌였다. 시위대가 헌법기관인 법원을 공격한 것은 처음이다. 그동안 윤 대통령이 법치를 부정하고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며 지지자들을 선동해 온 결과다. 극우세력의 준동이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고 뿌리부터 흔드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찰은 이날 집단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른 윤 대통령 지지자 89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이날 새벽 서부지법에서 폭력행위를 벌인 46명, 전날 저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사와 수사관이 타는 차량 파손과 수사관 폭행 혐의 등 40명, 이날 오후 헌법재판소 울타리를 넘어 무단 침입한 3명이다. 경찰은 불법 행위자 전원을 구속 수사할 방침을 세웠다.
윤 대통령은 변호인단을 통해 지지자들에게 평화적인 방법으로 의사를 표현할 것을 촉구했고,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도 불법 폭력 행위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 물리적 충돌과 폭력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경찰과 갈등을 빚던 지지자 일부는 헌법재판소 앞에 모여 경찰이 봉쇄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폭력의 책임을 시위대에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폭력사태를 일으킨 자들을 옹호하고 오히려 '경찰의 과잉대응'이 문제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지지자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123 내란사태 이후에도 수사기관과 법원의 정당한 권한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해 사실상 내전을 선동해 온 윤 대통령이 가장 큰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윤 대통령 측과 여당은 내란을 고충이 가득한 결단이라고 우기고 윤 대통령을 무고한 피해자로 규정하는 메시지를 지지자들에게 계속 보냈다"며 "언제든 집단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 돼 있었다. 윤 대통령 변호인단과 여당, (윤 대통령 지지 시위를 주도하는 한 사람인 전광훈 목사 등) 일부 기독교 세력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선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새해 첫날부터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있는 시위대에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동하는 메시지를 냈다. 이후 자필 편지와 동영상, 변호인단 등을 통해 "공수처에는 내란죄 수사 권한이 없다" 「서부 지방 법원의 구속 영장 발부는 무효」 등의 주장을 반복해, 사법 체계의 신뢰를 대통령 스스로 무너뜨려 왔다. 여당도 이에 동조해 왔다.
윤 대통령이 체포된 뒤에는 폭력을 불사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부추기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단인 석동현 변호사는 17일 서울구치소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한국 우파의 장점이자 약점인 것은 폭력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나 그 나쁜 사람들처럼 경찰을 폭행하고 경찰차를 뒤집을 수 없었는데 정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우리도 저항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전날 서부지법 앞에서 일부 시위대가 법원 담을 넘다가 경찰에 체포되자 (경찰) 관계자와 얘기했으니 아마 곧 훈방될 것이라고 지지자들에게 설명했다. 야당에서 "폭력 사태를 부추겼다"는 비판이 일자 윤 의원 측은 "18일 밤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된 학생들에 대한 발언이다. 폭력사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부정선거나 정당한 비상계엄, 사기탄핵 같은 음모설을 유포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극소수가 공유하는 듯한 주장이 대통령을 필두로 공개석상에서 버젓이 난무하고 집권여당이 이를 뒷받침하면서 극우세력이 폭력적인 행동까지 나선 것은 단발적인 현상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헌정체제의 근본적인 위기로 볼 우려가 크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날 페이스북에 "한국 극우가 파시즘과 텔로리즘의 성질을 띠기 시작했다. 앞으로 심각한 문제는 사회 저변의 극우 대중과 그 배후의 조직적 실체라며 이미 한국의 극우는 (마지막 단계인) 폭력과 반란 수준에 이르렀다"고 글을 올렸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앞으로 윤 대통령 탄핵이 기각되면 기각됐고 인용되면 인용돼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흐름이 생길 것"이다. 대선을 치르더라도 당선자를 받아들이지 않고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계속 나올 것이라며 그렇게 해서 심리적 내전이 일상화되고 심각한 수준까지 가속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서부지법 습격은 2021년 1월 미국의 'QAnon'으로 불리는 온라인 음모론 집단이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패배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회의사당을 무력 점령한 것과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이 극우 유튜브와 밀착할수록 과격한 주장과 폭력이 난무하게 된다. BBC 출신 언론인 가브리엘 게이트하우스 기자는 "지난해 미국인 4명 중 1명이 QAnon의 음모론을 믿고 있다. QAnon 논의의 핵심 교리가 미국 주류정치에 완전히 파고들었다"고 주장했다. 한국 여당 의원들이 중국인들이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국가폭력을 상징하는 백골단을 자칭하는 극우청년조직에 국회에서 기자회견장을 마련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기반이 극우 음모론과 폭력에 의해 이미 위험할 정도의 타격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정치권이 어떻게든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통령이 (사법부의 결정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을) 시작한 것이고, 국민의힘도 수단을 가리지 않고 버티겠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에게 동조한 결과가 폭력사태로 이어졌다"며 "공권력이 폭력사태를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