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는 2m, 날개는 20㎝ '날지 못하는 새'… 아빠가 알 품고 키워요
에뮤
▲ 타조에 이어 지구상에서 둘째로 큰 새 ‘에뮤’. /호주 박물관
얼마 전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조류 보호소에서 귀여운 아기 새들이 부화했어요. 긴 회색 깃털이 덥수룩한 엄청난 몸집의 아빠 새가 새끼들을 살뜰하게 보살피고 있었죠. 얼핏 타조와도 비슷하게 생긴 이 새는 에뮤(emu)입니다. 타조처럼 날지 못하고, 타조에 이어 지구상에서 둘째로 큰 새랍니다. 다 자라면 두 발로 섰을 때 키가 2m 가까이 됩니다. 농구·배구 선수랑 맞먹을 정도예요. 캥거루·코알라와 마찬가지로 호주에서 볼 수 있어요. 원래 사는 곳 밖에서 번식에 성공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 이번 부화 소식을 더욱 반기고 있대요.
에뮤라는 새 이름의 기원은 커다란 새를 뜻하는 포르투갈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타조와 아주 닮았지만, 분류학적으로는 열대우림에 사는 또 다른 날지 못하는 큰 새인 화식조와 더 가까워요. 에뮤는 우람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날개 길이가 20㎝에 불과하답니다. 커다란 몸집을 들어 올리기에 터무니없이 작은 '무늬만 날개'인 거죠.
이렇게 날지 못하는 새들은 대개 튼튼한 두 발을 가진 멋진 육상 선수랍니다. 새들은 보통 앞쪽에 발가락이 세 개 있고, 뒤쪽에 발가락이 한 개 있는데요. 에뮤는 앞쪽으로만 발가락 세 개가 있어서, 앞으로 전력질주하기 수월하답니다. 달릴 때는 최대 시속 50㎞까지 속도를 낼 수 있어요. 천적을 마주치는 등 궁지에 몰리게 되면, 두 발과 발가락 여섯 개가 호신용 무기가 되어주죠.
에뮤는 새끼를 부화시키고 키우는 과정이 매우 독특합니다. 짝짓기할 때가 되면 수컷은 나뭇잎과 풀, 나무껍질로 정성스럽게 둥지를 만들어요. 그러면 암컷이 어두운 청록색을 띠는, 마치 아보카도와 비슷하게 생긴 알을 많게는 열 개 넘게 낳아요. 그런데 암컷은 산란이 끝나면 둥지를 떠난답니다. 그리고 다른 수컷이 만들어놓은 둥지를 찾아가서 다시 짝을 짓고 알을 낳아요. 이런 식으로 수컷이 지키는 둥지에는 여러 암컷이 낳은 알들이 겹겹이 쌓여요.
이 알들은 부화할 때까지 50여 일이 걸리는데, 그동안 수컷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오로지 알을 품는 일에만 힘을 쏟습니다. 그래서 수컷은 번식철을 앞두고 최대한 많이 먹어서 살을 찌운답니다. 알을 품고 있는 동안 수컷의 몸무게가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죠. 새끼들이 부화하면 수컷은 길게는 1년 반 가까이 데리고 있으면서 먹이 찾는 법 등을 가르쳐주며 자상한 아빠 노릇을 한답니다. 미아가 돼 헤매는 다른 수컷의 새끼를 발견하면 자기 새끼보다 덩치가 크지 않으면 함께 돌보기도 한대요.
호주에만 사는 야생동물들은 농경지 개간과 개·고양이 등의 공격으로 생존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하지만 에뮤는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서 지금도 호주 곳곳에서 많이 살고 있대요. 또 고기와 가죽을 얻기 위해 농장에서 가축으로 길러지고 있기도 합니다.
정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