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북녘땅 개성이라는 곳이 그 옛날 고려조에서는
500년 도읍지 였는기라.
그 당시에는 이름을 개경이라고도 하고 송도라고도 하였다.
황진이가 살던 조선시대에도 송도는 그 옛날의 명성에 걸맞게
주변의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고을이 번화하여
물류인심이 넘쳐나고 있었다.
특히나 호걸남아들의 풍류가 가는 곳마다 묻어나고
기생들의 거문고 소리가 끊이지 아니하니
송도는 가히 색향이다.
황진이가 40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 할 때까지
몸담아 살아온 곳이 이곳이다.
천한 신분이라 기생이 되어 신분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양반 사대부와 천하의 호걸들을 두루 섭렵하며
타고난 재주를 십분 발휘하여 그들을 조롱하고
황진이라는 이름 석 자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그녀의 나이 삼십을 넘어서자
인생에 차츰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기생도 삼십을 넘어서면 퇴기에 속한다.
이때부터 마음에서 이 풍진세상을 벗어나
뭔가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바로 인생 수양이다.
이생이라는 정승 아들과 금강산 유람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부쩍 마음이 설렌다.
누구를 스승으로 삼아 내 인생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른 인물이 있었다.
지족선사였다.
언젠가 송도의 길거리에서 천도 재를 올리는 광경을
옆에서 직접 본적이 있었다.
그때 본 모습은 가히 생불로 소문이 자자했던 스님답게
얼굴이 맑고 동안처럼 고왔으며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엿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지금 과연 그분은
내가 스승으로 삼을 만큼 도력이 있을 까?
그러하다면 내 방식대로
그분을 알아봐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나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아니하면
나는 그분을 평생의 스승으로 모실 것이다.
내가 유혹이란 말을 쓰는 것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기생의 몸으로 뭇 남성들을 상대하면서 느낀 것은
아랫도리가 해픈 넘들은 하룻밤 풋사랑거리는 되어도
일생의 반려자는 안되겠더라는 것이다.
색에 미친넘들 치고 맑고 참된 인생의
고귀한 인품을 가진 자들은
내 일찌기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비록 천기로 살아가고 있지만
언젠가는 진실한 사람을 만나
그분과 남은 여생을 안분지족하며 살고 싶다.
한번 받아온 목숨 언제가지나 천기로 살아 갈것이냐.
첫댓글 천기나 평인이나 사람은 마찬가지
요즈음 같으면 사내 싫어하는 기생이 있던가요
돈이 있어야 먹고살지요
여자가 이쁠때가 나이 삼십이지요